새해 다짐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새해 첫날, 남편은 뜨는 해를 보겠다며 아침 일찍 뒷산에 갔다. 뒤이어 깬 아이들이 아빠가 산에 갔다고 하자 따라가겠다고 한다. 잠에서 덜 깨어 눈은 반 밖에 뜨지 못한 채, 머리는 붕 떠 ‘까치집’을 지어놓은 채, 잠옷 위에 대충 잠바를 걸치고 나선다.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자 상쾌한 공기가 온몸 구석구석까지 들어찬다. 평소 같으면 정상에 가기 전에 만나게 되는 운동장이 있어 아이들이 쪼르르 옆으로 새었을 텐데, 아빠를 찾아 정상까지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중턱까지 나와있는 아빠를 보자 한 번 더 힘을 내어 달려간다.
아이들은 집에서 입고 나온 잠바는 벗어 버린 지 오래고, 정수리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숨도 돌릴 겸 풍경이 잘 내다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가기로 했다. 벤치 옆에 헬로키티 캐릭터로 꾸며진 분홍색 아기 의자와 하늘색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가족이 앉았다 간 모양이다.
우리 가족이 올 것을 알았던 것처럼 각자 키에 맞게 준비되어 있는 의자에 예기치 못한 기쁨을 누린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창공을 멋지게 나는 독수리를 보고 있자니 마음씨 좋은 주인의 집에 초대받아 '환대'를 받은 느낌이다. 나도 내가 만나는 이들을, 내게 주어지는 모든 일상을 더욱 따뜻하게 환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산에 오르며 누리는 ‘생명력’에 흠뻑 젖어 올 한 해는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해본다.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 흔들려도 단단히 뿌리내려 버티고 선 나무처럼,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아도 자기의 꽃을 피워내고야 마는 들꽃처럼, 흙바닥에 미끄러워지지 않도록 오고 다니는 길에 디딤돌 되어주는 작은 돌멩이들처럼 이전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존재로, 마땅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하고 싶다.
생명력 있는 존재가 되어, 빼곡하게 생명을 품고 있는 솔방울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삶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글감들을 마음에 품고 결국에는 싹을 틔워내고 싶다. 나의 글을 읽는 이들에게 잠시 쉬어갈 만한 그늘을 내어주고 싶다. 한여름 산들바람처럼, 시기적절하게 옷을 갈아입는 나뭇잎처럼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때에 맞는 글을 쓰고 싶다.
올 해는 보다 자연스럽게 글을 썼으면 한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억지로 하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담긴 이 말 뜻을 ‘자연’ 속을 거닐며 곱씹어 본다. 나는 여전히 ‘오늘의 할 일’에 ‘글쓰기’를 적어 놓지 않으면 빼먹고 지나가는 날들이 수두룩하다. 쓰고 또 쓰다 보면, 본래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 자연스레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힘든 오르막길도 함께 걷는 이가 있으면 힘을 내어 갈 수 있듯이, 올 해도 함께 쓰는 이들과 더 깊은 연대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정상에 올라서는 기쁨보다도, 걷는 모든 여정에서 함께 본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서 볼 수 있음에 더 풍성한 여정이 되리라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