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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해공 Dec 20. 2020

기르는 게 아니라 쌓는 것


꾸준한 운동으로 힘을 쌓습니다. 다시 달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몸의 변화를 확실히 느끼기 때문입니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노력한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를 확실하게 보여주지요. 물론, 그 성과를 얻기까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비용과 시간, 그리고 고통을 감수하는 인내심이 바로 그것이지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약했습니다. 미숙아로 8개월 만에 태어나 엄마 아빠의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해요.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태어나자마자 몸의 크기를 재어보니 아빠 손바닥 만했다고. 집안 어르신들은 '애가 너무 작아서 얼마 못 살고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닐 땐 또래보다 체구가 작았습니다.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하던 초등학교에서 1,2번은 늘 나의 것이었지요. 이렇게 약한 내가 야근에 철야까지 한다고 하니 집에선 걱정이 참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엄마의 기도제목 1번은 바로 '큰 딸이 과로하다가 쓰러지지 않는 것, 좋아하는 일을 건강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엄마의 기도 덕분인지 나는 예상외로 오랫동안 광고일을 했습니다. 힘든 스케줄을 2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했는데 놀랍게도 2년이 지나 5년이 되고, 7년이 지나 10년을 훌쩍 넘기더군요.


 아, 내가 얼마나 약골인지 설명하느라 글이 길어졌습니다. 여하튼 내가 이런 몸으로 10년 넘게 일하면서 지켜온 하나의 원칙이 바로 '운동'입니다.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해도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을 했습니다. 주중에 못하면 주말에 시간을 내어 몸을 단련시켰지요. 그런데 문제는 조금의 여유 조차 허락되지 않는 환경으로 들어왔을 때 생겼습니다. 물론, 쉬는 시간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운동은 할 수 없었습니다. 밀린 잠을 몰아서 자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자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으니까, 짬이 나면 급한 대로 잠부터 잤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여러 가지 병이 몸에 찾아왔습니다. 제일 먼저는 역류성 식도염이 생겼고, 이어서 천식이 나타났습니다. 그걸로 멈추나 싶었는데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더니 방광염, 목디스크, 근육 떨림까지 연타로 찾아왔습니다. 몸의 장기와 근육들이  '더 이상 못해먹겠다! 멈춰라! 제발!' 시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버텨야 했습니다. 지기 싫었거든요. '내 옆에 동료들은 더한 환경도 이겨내는데, 나는 왜 못해? 버틸 거야. 쪽팔려서라도 해낼 거야!' 라며 버텼습니다. 물론, 이런 오기는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육체 없이 정신만 가지고는 일할 수 없다는 걸 병원에 입원하는 날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퇴사 후에 '내가 언제부터 망가졌을까?'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일만 하느라 내 몸은 아끼질 못했구나, 운동을 멈춘 그때부터 몸이 이상해졌구나!


 저축은 돈만 하는 게 아닙니다. 체력 또한 저축해야 합니다. 흔히 '체력을 기른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것을 틀린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체력은 꾸준히 쌓아야 합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다고 자만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방심하다가 나 같은 꼴이 되기 십상이거든요. 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열악한 환경이 주는 고통을 끝까지 버텨내기 힘이 듭니다. 체력을 쌓지 않고, 버티기만 하다가는 파산하게 됩니다.


  요즘엔 다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예전처럼 피트니스에 갈 수 없지만 대안을 찾아 노력하고 있습니다. 케틀벨과 아령, 매트리스를 방에 들여놓고 틈 날 때마다 몸을 움직입니다. 날씨가 좋을 땐 가까운 한강에 나가 달리거나 빠른 속도로 걷습니다. 겨울이 되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한두 번 등산을 갔습니다. 험한 바위와 봉우리들을 넘어 정상에 섰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란!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면서 뿜어져 나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 몸의 이상한 증상들도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번아웃되었던 몸이 회복되고 있는 거겠죠?


 나는 다시 광고 일을 하게 될까요? 아니, 할 수 있을까요?

종종 앞 일을 알 수 없어 불안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엔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몸의 힘을 쌓고 달려 나갈 채비를 하는 것. 고장 난 자동차를 정비하는 태도로 몸 구석구석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며 관리하는 것.

이런 준비들을 마친 후에 나는 또다시 달릴 것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달리기만 하진 않을 거예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니까! 꾸준히 힘을 쌓으며 더 길게, 더 멀리 가보겠습니다.

이런 다짐으로 오늘 밤엔 한강에 나가봐야겠어요. 추운 날씨 때문에 땀구멍이 열리진 않겠지만, 내일을 위해 오늘 해야 하는 건 해야겠죠? 다시 시작할 그 날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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