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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준 Feb 26. 2020

축구보다 깊은 상처만 준 너

설익은 지역 이해도, 축구팬과 지역에게 남긴 아픔


프로축구 5년 차를 맞은 1987년, 전국을 순회하던 리그 대신 홈&어웨이가 자리 잡았다. 실업팀으로 참가하던 한일은행은 1987년 리그에서 이탈한다. 홈&어웨이에 더해, 진짜 프로팀만 참가하는 순도 100% 프로리그로 꾸려졌다. (원래 프로리그는 프로팀만 있는 게 정상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유공(인천 경기), 현대(강원), 럭키금성(충남북), 포항제철(대구경북), 대우(부산경남)에게 각각 연고지를 배정했다. 홈&어웨이 방식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연고지를 '배정'하는 단계였다. 연고지를 배정받은 지역은 하루아침에 지역에 축구팀이 생겨버렸다.


3년 후인 1990년, 유공과 LG(럭키금성)가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쓰겠다며 이사를 간다. 당시 축구는 제 멋대로 왔다가 자기 맘대로 떠나갔다. 동대문운동장은 1989년 창단한 일화가 사용하고 있었다. 프로리그 6팀 중 3팀이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쓰게 됐다... 1987년 연고지를 ‘배정’ 받으며 갑자기 팀이 생겼던 지역민들은 졸지에 팀을 잃었다. 




5년 후 1995년 말, ‘서울 공동화(空洞化)’ 정책으로 동대문운동장을 쓰던 3팀이 전국으로 흩어진다. 동대문운동장을 연고로 ‘사용’ 하기 위해서 서울에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일개 구단이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조건, 나가라는 이야기였다. 결국 구단들은 왔을 때처럼,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갔다. 세 팀 모두 서울에서 멀리 가긴 싫었나 보다. 유공은 부천으로, 럭키금성은 안양으로, 일화는 천안을 거쳐 성남에 자리 잡았다. 

     

서울 공동화 정책은 지금도 프로축구 발전을 저해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서울공동화정책을 두고는 여러 설들이 나온다. 2002 한일월드컵 유치에 앞서 지방 활성화를 위해서라거나 일본 프로축구 J리그가 초창기에 도쿄를 비우는 것을 보고 벤치마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연고 이전 지침을 프로축구연맹에 하달해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청와대 개입설'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지방을 활성화한다’, ‘정부가 개입한다’는 내용들은 '지역'을 철저히 중앙의 관점에서 아래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지역은 저마다 자기 색을 갖춘 공간이 아닌, 중앙이 채워줘야 할 공백지대 혹은 낙후한 곳이었던 듯하다. 


동대문운동장. 프로리그 참가팀 절반이 홈구장으로 사용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동대문운동장 자리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자리해 있다. 




축구계 역시 지역이해도가 낮긴 마찬가지였다. ‘지역 연고와 홈&어웨이’는 축구계가 프로축구 초기 정부에 꾸준히 요구했던 방식이었다. 바라던 방식이 자리 잡았지만 '지역'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결국 2004년과 2006년, 안양은 서울로, 부천은 제주로 옮겨가는 두 차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이 두 차례 사태는 축구팬들에게 아주 민감한 주제다.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보다는, 축구가 아닌 '지역'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역'은 전국순회, 연고지배정, 서울공동화, 연고이전으로 이어지는, 프로축구 역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축구클럽은 지역에 발 딛고 있을 때 존재가치가 있다. 당대 결정권자들에게는 지역공동체, 지역정체성 개념이 희박했다. 축구는 알았는지 몰라도 지역은 몰랐다. 이게 문제다. 


결국 사태를 일으킨 건 지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결정권자들의 결정 때문에, 아무런 책임 없는 팬들만 고스란히 그 피해를 입었다. 일부는 서로의 생채기에 소금을 뿌린다. 결정은 높으신 분들이 하고, 서로 헐뜯고 싸우는 건 시민들이 하는 꼴, 축구 말고도 어디서 본 듯하다. 당대 결정권자들을 탓해야 할까? ‘지역정체성’이 미비했던 사회의 미성숙을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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