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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준 Feb 28. 2020

하슬라를 꿈꾸며(Dreaming of Haslla)

강원이 강릉을 옥죈다.

'강원'의 틀에 갇혀 있기엔 '강릉'이 너무나 아깝다. 강원의 틀을 깨고 나오자.




강릉에서 만난 오륜기


강릉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함께 기억난다. 올림픽 기간 경포대 바닷가에는 오륜기가 설치돼 있었다. 검은빛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하얗게 빛나고 있는 한밤 오륜기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강릉에서 올림픽이 열리다니!! 경포대 한편에서는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횃불을 피우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대는 없었다. 지역주민들끼리 계승해 오고 있는 축제랄까? 정확한 이름을 모르니 지칭할 수 없다. '한마당'이라고 하자.    

  

경포대 해수욕장과 오륜기를 배경 삼아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올림픽이니 만큼 한마당을 즐기는 외국인 관광객도 더러 보였다. 한마당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즐기는 외국인부터, 신기한 눈으로 박수를 치는 외국인, 쭈뼛쭈뼛 거리는 사람과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하는 친구까지. 올림픽을 맞아 강릉을 찾았을 이들에게는, 올림픽 경기 못지않게 로컬에서 했던 이 체험들이 오래 기억날 듯하다. 세계적인 축제의 현지화,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글로컬리즘?!    


경포대 해수욕장에 자리하고 있던 오륜기. 검은빛 바다와 하얗게 빛나는 오륜기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한마당. 집회가 아니라 축제 현장이다.
올림픽 기간이었던 만큼, 외국인 관광객들도 한 데 어울렸다.


높은 산과 깊은 바다, 강릉단오제


강릉은 지형이 독특하다. 광활한 동해 바닷가에 감탄하면서도 뒤를 돌아보면 높은 대관령 산줄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다. 도시가 극복해야 할 바다가 깊고, 산이 높아서였을까? 강릉 단오제는 5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문화는 인간이 자연과 투쟁하며 얻은 산물이라고 한다. 500년이란 긴 시간은 도시가 마주한 자연의 준엄함을 말해주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투쟁하며 이어온 단오제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이름 올리고 있다. 


자연 앞에서 사람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협력과 교류를 배우게 된다. 해서 강릉단오제는 통합의 축제다. 단오제는 지역주민, 관청, 무당, 유교 제관 등 지역 당사자 모두가 참가한다. 특정 종교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단오제가 모시는 주신 범일국사는 스님이다. 지역과 종교, 모두를 아우른다. 500년 단오제 역사에서 행사가 없었던 기간은 일제가 단오제를 막았을 때뿐이라 한다. 일제는 단오제를 통해 시민들이 만드는 통합의 힘이 두려웠을 테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 동해바다, 동해바다 파도는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경이롭다.
경포호 뒤로 눈 덮인 대관령 산맥이 보인다.
강릉단오제. 2005년 11월 25일에 '유네스코 세계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에 등록되었다.


강릉단오제의 꽃


'강릉단오제의 꽃'이 있다. 축구다. 강릉 정기전 축구는 중앙고와 제일고, 제일고와 중앙고가 맞붙는다. 500년 역사의 꽃이 유럽에서 건너온 축구라니. 이 역시 단오제가 가지고 있는 통합과 포용성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2019년 강릉 정기전을 보기 위해 1만여 시민들이 경기장을 찾았다고 한다. 서울, 안산, 울산 등 타지에 정착한 동문들도 버스를 대절해 강릉으로 모였다고 하니, 단오제의 꽃이라 할만하다.


단오제로 상징되는 강릉은, 지역 정체성이 확고하다. 독특한 축구문화 강릉 정기전 역시 다른 지역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강릉 정체성과 문화가 이렇게나 명확하기 때문에, 강원 FC는 강릉 축구에 치명적인 독이다. 


강원 FC는 창단 후 강릉과 춘천을 주 연고로 두고 있다. 이 외에도 평창, 속초, 원주에서 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지금은 강릉과 춘천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프로축구 초창기 연고지 없이 떠돌던 유랑극단이 전국에서 강원도로 축소된 듯 한 건 과한 해석일까? 도민구단의 태생적 한계다. 


대관령 산맥은 강원도를 동과 서로 가른다. 산과 강, 바다를 경계로 마을이 생기고 문화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강릉과 춘천은 산으로 갈린다. 한국에서 가장 높다는 산맥으로 갈린다. 문화가 다르다. 지역 정체성도 다르다. 강원 FC는 강릉에 클럽하우스가 있다. 춘천에서 경기하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산맥을 넘어간다. 이게 홈경기인가? 자연스럽지 않다. 강원 FC는 강릉 축구를 옥죄고 있다.    


강릉 정기전은 강릉단오제의 꽃이라 불린다. (출처 : 일요신문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03821)




강원 축구전용구장에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


대구 DGB파크가 전국에 일으킨 축구전용구장 바람은 강원도에도 닿았다. 강원 FC는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강원’ FC기 때문이다. 축구전용구장은 공항이나 도로를 내는 작업과 다르다. 입지에 따른 효율성, 경제성 등 사회경제적 가치를 따짐과 동시에 ‘지역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야 한다. 어쩌면 축구전용구장을 어느 규모로, 어떻게 지을지 보다,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전용구장은 역량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 문제다.


'강원'은 관할 지역 내 도시 간 이해관계를 조정한다. 지역을 대표해 중앙정부와 마주한다. 광역단체 '강원'은 정치행정이다. 강원은 춘천과 강릉을 품고 있다. 춘천 정체성과 강릉 정체성이 명확히 다르다. 이 중 어떤 게 낫다고 말할 수 없다. 프로축구 단위에서 '강원'을 지역 정체성이라고 하기 힘들다. '강원'은 전용구장이 담기에는 층위가 높이 있다.


강원도 축구전용구장은 지역 축구문화 발전은 고사하고 관내 이해관계 충돌과 정치적 갈등으로 지역사회에 생채기만 낼뿐이다. 정치행정 ‘강원’이 강릉과 춘천 중 어느 한 곳을 택한다면, 정치적 판단이다. 전용구장에 지역 정체성을 담는 일이 아니다. 강원 FC가 춘천과 강릉 중 한 지역에 전용구장을 짓고, 이 곳에 강원을 투영하면, 다른 지역은 강원이 아니게 되는 건가? 강원도 축구전용구장을 어디에 지을지 논의하기 전에, 정치행정 단위 '강원'이라는 관점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 


강원FC(왼쪽)와 강릉FC(오른쪽).



하슬라를 꿈꾸며


해서, 강릉이라는 도시가 참 아쉽다. 강릉 정체성이 강원 FC라는 틀에 갇혀 있다. 강릉은 자신들을 옥죄고 있는 ‘강원 FC’가 아닌, 강릉을 담은 축구문화를 이어가야 한다. 단오제와 강릉 정기전이 보여주듯, 강릉은 문화를 쌓아 올릴 줄 아는 지역이다. ‘정치행정 틀’ 강원도를 벗고, 대관령 동쪽, 영동 강릉 ‘지역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 

'하슬라'는 어떨까? 정치행정 ‘강원’이 주는 딜레마를 확인했다. 강릉시 '행정' 경계도 지워버리자. 하슬라 이름 아래 양양, 동해, 속초 등 ‘영동지방’을 모두 품자. 하슬라는 강릉 옛 지명이다. 해와 밝음을 뜻한다. 대관령 산맥 동쪽 땅에 서린 정체성을 대변하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팀 하슬라 FC. 500년 넘게 이어온, 강릉 단오제 통합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하슬라 FC. 언젠가 하슬라 FC가 프로축구 무대에서 뛰는 날을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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