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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준 Mar 01. 2020

총소리가 멈춘 철원에 울리는 소리

오직 그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있다.


강원도 철원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이 있다. DMZ Peace Train Festival. 2018년 6월 처음 열렸다. 2020년 3회를 준비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페스티벌 기획자다. 마틴 엘본. 30년 넘게 세계적인 락 페스티벌 영국 글래스톤베리 기획을 맡고 있는, 음악 축제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2017년 한국을 찾아 관광차 들렸던 DMZ가 눈에 들었다. DMZ가 보존한 자연경관, 서울에서 가까운 입지, 평화 기원이란 범인류 메시지까지. 삼박자가 들어맞았다. 페스티벌 이름 ‘Peace Train’은 철원 월정리역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페스티벌 이름 '피스 트레인'은 영국 가수 캣 스티븐스 노래 제목이기도 한데, 마틴 엘본이 직접 연락해 사용 허락을 구했다고 하니, 제대로 꽂혔다.


DMZ는 철원에만 있지 않다. 북한과 땅을 맞대고 있는 경기도와 강원도 전역에 DMZ가 펼쳐져 있다. 철원은 어떻게 페스티벌 개최지가 될 수 있었을까?

   

철원군 월정리역을 보고 '피스트레인'이란 이름이 떠올랐다고 한다.





분단된 국가, 분단된 도시


답은 쉽다. 철원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철원이 있다. 철원은 도시 분단을 겪는 중이다. 대부분 국민들이 분단을 국가단위로 이해할 때, 철원은 지역단위에서 분단을 받아들인다. 철원군민들은 휴전선 너머 철원을 '북철원'이라고 부른다. 철원은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도시 중 같은 이름이 북에도 있는 유이한 도시다. 다른 한 곳은 강원도 고성군.


과거 베를린이 동서로 갈린 적 있었다. 동독에 둘러싸인 서베를린, 어떻게 평화로울 수 있지? 국가단위 분단이 익숙한 내게, 도시가 분단된 베를린은 무척 신기했다. 알고 보니, 그런 도시가 한국에도 있었다. 


베를린은 지금 하나가 됐다. 철원은 아직 아니다. 철원은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그중에서도 도시 분단까지 겪고 있는, 세계에서도 독특한 지역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DMZ를 맞댄 여러 지자체 중 철원인 이유일 테다. 처지가 같은 강원도 고성군은 접근성에서 차이가 났을 거고.


이런 정체성 위에 생겼으니, 당연히 페스티벌은 '음악을 통해 국가, 정치, 경제, 이념, 인종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를 모토로 한다. 마틴 엘본은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을 기획하며 ‘아시아의 글래스톤베리’를 꿈꾼다고 말했다. 


가능할까? 


그는 말한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게 자기 업"이라고.




DMZ에 꽂힌 마틴 엘본. 세계 최대 페스티벌 영국 글래스톤베리 기획을 30년 넘게 맡고 있다.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가 철원에서 휘날렸다. 중국엔 비밀. 아니다. 중국 국기도 같이 휘날리자. 축제니까.
접근성과 도시 분단이라는 지역 정체성은 페스티벌을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다.

               




내게 철원은 군사, 최전방, 민간인 통제구역 등 무게감 있는 단어와 동의어였다. 음악을 매개로 직접 가본 철원은 자연이 아름답고, 생각보다 볼거리도 많은 도시였다. 이런 철원을 채우는 음악소리... 철원에 태봉국을 세웠다는 궁예도 "누가 기타 소리를 내었는가?" 하면서 어디선가 방방 뛰고 있을 것 같았다.


철원은 현무암 협곡 하천, 한탄강 지질공원 등 자연경관이 독특한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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