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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준 Mar 01. 2020

브뤼셀에서 만난 잉글랜드 사람들.

브뤼셀에서 만난 영국인 가족. 가끔 생각나는 사람들.



벨기에 브뤼셀, 내 유럽 첫 도시다. 이른 아침 브뤼셀 공항에 도착했다. 2016년 폭탄 테러가 일어났던 거기다. 브뤼셀은 유럽의 심장으로 불린다. 유럽연합 정치, 행정 기구들이 대거 브뤼셀에 있다. 유럽연합 본부, 유럽 의회,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등이다. 


근데 그건 너희 심장이고, 난 아니다. 아시아 국가들만 여행했던 내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던 유럽, 그 시작이 머릿속에 테러 이미지밖에 없던 브뤼셀 공항이라니. 참 적응하기 힘들었다.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순찰을 돈다. 흠칫. 무장군인 주위로 오가는 시민들 표정이 너무나 평화롭다. 이게 더 무서웠다. 공포의 일상화. 브뤼셀에서 받은 첫인상이었다.

 

얼른 공항을 빠져나와 벨기에 도심으로 향했다. 오후 기차를 타고 파리로 넘어가는 일정. 낮 시간을 브뤼셀에서 보내야 했다. 미디어가 보여줬던 ‘테러’와 달리, 브뤼셀은 생각보다 아름다운 도시였다. 


관광명소 하나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섰다. '그랑플라스'가 제일 유명하네, 그럼 여기 가자. 구경을 하는 건지, 길을 헤매는 건지 모를 발걸음을 이어갔다. 길눈 밝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인데, 처음 만난 유럽 골목길은 정말 다 똑같이 생겼었다. 어디가 어딘지... 길을 헤매다 발견한 건 그랑플라스가 아니라 감자튀김 식당이었다. 길게 늘어선 줄, 줄 서 있으면 맛집이겠거니, 배도 고팠겠다, 줄 뒤에 스윽 합류한다.


아침을 맞이하기 전 유럽 하늘.
헤매다가 발견한 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
유럽에서 처음 만난 한국.

    



앞에 서 있던 백인 여성과 대화를 나눴다. 잉글랜드에서 가족들과 여행 중이라고. 브뤼셀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음식을 사 건너편 펍에서 먹을 수 있다고. 일행이 없는 나를 보더니 같이 가자고 한다. 당장 휴식이 필요했던지라, 음식을 사서 함께 식당으로 갔다. 자연스레 남편, 딸과 합류. 예정에 없던 영국 가족 초청을 받아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딸은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나름 영국 밴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금방 대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래저래 좋아하는 밴드들과, 노래를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 버릇 하나가 보였다. 내가 특정 밴드 이야기를 꺼내면, 딸과 엄마는 꼭 그 밴드가 어디 출신인지 부연했다. 어떤 경우에는 밴드 출신을 놓고 자신들이 맞다며 우기고, 검색을 해서 확인까지 한다.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밴드 출신 지역을 놓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기억이 없었다. 물론 다 홍대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지역을 따지는 건 정치판 정도 있나? 아무튼, 이들에게 뮤지션이 출신지역인지가 꽤나 중요한 요소인 듯했다. 



아빠는 밴드 이야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아버님은 음악을 안 좋아하시나 봐요?” 

엄마가 대신 답했다. 


“직업이 뮤지션인데?”      


“아... 원래 휴가 와서는 일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ㅎㅎ;;”

           

아빠랑은 축구 이야기를 했다. 뉴캐슬 골수팬이라는 그는, 기성용이 참 좋은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한국의 축구선수는 국내로 돌아오ㄹㅕㄷ.. 읍읍.


음악과 축구는 내 일상에 행복을 주는 중요한 두 축이다. 이 두 축으로, 유럽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문화의 힘?

     

가족은 그날 오후 기차로 브뤼셀에서 브뤼헤로 가는 일정이었다. 그랑플라스를 못 가봤다고 하니, 가는 길에 나를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함께 따라나섰다. 골목길 하나 지나니까, 바로 나왔다. 그랑플라스. 바로 옆에 두고 헤매다가 감자튀김 줄에 섰던 거였다...

  

유럽에서 만난, 사무가 아닌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첫 로컬, 첫 현지인. 이야기도 잘 통했던지라 이 가족이 가끔씩 생각난다. 인스타그램, 아니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 걸 그랬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펍은 이들이 찾는 단골집이라고 했다. 매장 주인과도 서슴없이 안부를 주고받더라. 다음에 이곳을 찾으면, 어쩌면 다시 만날 수도 있겠다.


벨기에 그랑플라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얼마나 가봤다고?
그랑플라스 광장. 벨기에에 있지만 내게는 영국인 가족이 먼저 생각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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