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된 남자

내 남자가 달라졌어요

육아는 단순히 아이를 잘 키우는 결과를 얻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하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최고의 부부가 되는 방법입니다. 진정한 인생 동반자를 만드는 일이지요.
- <아빠 육아로 달라지는 것들>, 이상범

남편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굉장히 과묵하고, 무뚝뚝하며,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스타일입니다. 사실 저도 처음 남편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사적인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서 발견하게 된 새로운 모습과의 차이가 크다는 매력(또는 함정)에 마음을 열게 되었던 것 같네요.

한 남자가 한 사람의 남편이 되고, 한 사람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자신이 자란 것보다 넉넉하고 좋은 환경에서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죠. 게다가 남편은 12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동생이 크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관념이 강하게 박혀있었습니다.

내 남편이 달라졌어요

예상치 못하게 와이프 뱃속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당황스러워했으나, 그 당황스러움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심장소리를 듣고 왔는데도 아이에게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준다고 아직은 평평한 배에다 대고 이야기하고 노래를 불러대더라고요. 배가 점점 불러오고, 태동이 시작되니 매일 밤 더욱 신나게 태담을 했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가끔은 좀 힘들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병원에서도 수유실에 들어가서 본인 목소리를 들려주라며 노래를 녹음한 파일을 보내주기도 했고요. 제가 수술로 아이를 낳은 터라 일주일 만에 조리원에서 아이를 처음 안아보게 되었는데 아이를 안은 남편의 표정은 2년 연애, 4년 결혼생활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에게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와 표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아이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목소리를 대여섯 번이나 바꾸어가며 동화책을 읽어줍니다. '예쁘다', '사랑한다'는 말을 저에게는 그렇게나 아끼더니 아이에게는 무한 방출하더군요. 쳇.

인터넷 쇼핑도 잘 안 하던 사람이 아이의 장난감을 검색합니다. 장난감을 구매하고서는 하나하나 직접 정성스럽게 닦고 소독까지 합니다.

아이가 장난감에 싫증을 내면 집 안 구석구석에 있는 도구들로 장난감을 만들어 줍니다. 주걱, 국자의 머리, 냉장고 자석, 페트병, 실리콘 냄비 뚜껑 등을 활용해서 새롭고 재미있게 함께 놉니다.

저는 빨래, 청소, 이유식들 만드는 등 아이의 주변을 챙기느라 늘 분주한데 아이와 그렇게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끔 셈이 나기도 해요. 본인을 챙기느라 늘 분주해서 자기와 많은 시간을 함께 놀아주지 않는 엄마보다 집안이 엉망이 되어도, 자신이 조금 꼬질꼬질해지더라도 신나게 놀아주는 아빠를 더 좋아할 것 같기 때문이에요. 그럴 땐 남편에게 심술이 나기도 합니다.

 

잠이 들면 업어가도 모르던 사람이 이제는 아이의 작은 소리에도 벌떡 일어납니다.

주말이면 뒹굴거리며 미드를 보기 좋아하던 남편이 TV 근처에도 잘 가지 않습니다.

본인은 책을 잘 안 읽는데 아이에게는 40분 넘게 책을 읽어줍니다.

아이가 잠들면 아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또 웃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더 재미있게 놀아줄지 정보를 검색하고, 연구합니다.

아이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이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냐는 말을 합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남자도 아빠라는 이름으로 최선을 다해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늘 서로에게 고맙다고, 고생이 많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어느새 남편에게 짜증내고 성질을 부리는 횟수가 훨씬 더 많아지는 듯하네요. 화와 짜증이 점점 많아지는 와이프 받아주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하는 것은 정말 서로를 이해하는 최고의 부부가 되는 방법인 듯 합니다. 이렇게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가나봅니다.

당신.

아이에게 100점 아빠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와이프에게는 99점 남편이라고 해둡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