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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Nov 29. 2020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브라질 분식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 노래 '어른들은 몰라요' 중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브라질 분식'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방영했던 tvN '응답하라1988'에서도 브라질 분식이 나왔었죠? 어찌나 반갑던지요.


브라질 분식에는 떡꼬치와 왕떡꼬치를 팔았습니다. 떡꼬치는 떡볶이 떡 6-7개를 꼬치에 꽂아서 튀긴 후 양념을 발라주는 거였고, 왕떡꼬치는 길이가 10cm, 지름이 4cm 정도가 되는 큰 가래떡 하나를 떡볶이와 같이 만들다가 꼬치에 꽂아서 주는 형태였습니다. 모두 한 개에 100원이었죠. 주로 엄마에게 용돈을 받아서 사 먹었어요.


관심 있었던 남자아이가 친근하게 어깨에 손을 얹고 "떡꼬치 먹을래? 왕떡꼬치 먹을래?"하고 물었을 땐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질문이 "응" 또는 "아니"의 답을 할 수 있는 "떡꼬치 먹을래?"가 아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네요. 저는 그때 왕떡꼬치를 먹었을 걸요. 지금 표현으로는 '심쿵'한 가슴을 붙잡고 말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브라질 분식은 유년시절의 즐겁고 기분 좋은 기억과 연결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하루는 아빠, 엄마, 동생과 함께 브라질 분식에 갔습니다. 엄마도 떡볶이가 드시고 싶으셨나 봅니다.


보통 친구들과 브라질 분식에 갈 때에는 분식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게 앞에 서서 떡꼬치만 한 개 사서 먹을 때가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그 날은 분식점 안으로 들어가서 테이블 하나를 잡고 앉았습니다. 즉석 떡볶이를 주문했고요.


저는 그 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분식집에 가니 즉석떡볶이에 먹고 싶은 사리를 다 넣을 수 있었거든요. 평소에는 100원짜리 떡꼬치만 사 먹을 수 있는데 부모님과 함께 가니 쫄면 사리, 어묵 사리, 라면사리, 만두 사리 등등 각종 사리들을 모두 넣어서 즉석떡볶이를 먹었습니다.


배도 많이 불렀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정말 불렀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고, 정말 행복했죠.


가족 외식으로 다른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들도 많이 먹었었고, 그 기억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브라질 분식에서의 외식은 외식 of 외식, top of the 외식, the best 외식, my favorite 외식으로 제 마음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브라질 분식은 제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없어졌지만요.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도, 원하는 것들을 잘 채워주는 것도, 현명하고 지혜로운 부모가 되는 것도 모두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고, 위의 생각과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를 보며 이전엔 없던 감사와 행복을 누리면서도, 현실을 생각해보면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SNS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보며 다른 아이들만큼 장난감이나 책도 많이 사주지 못하고, 일하러 다닌다고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도 못하는 것에 깊은 아쉬움이 생깁니다. 늘 시간에 쫓기고 쉽게 채워지지 않는 에너지 때문에 포기하는 것들도 많아집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대략', '눈대중으로', '적당히', '에이, 모르겠다.', '상관없어', '괜찮을 거야'라는 단어들이 자꾸 치고 들어오게 되네요.


그럴 때마다 브라질 분식에서의 외식을 떠올려보고자 합니다.


소박한 동네 분식점에서 저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과 부모님의 사랑과 나를 향한 관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그 기억은 저를 따뜻하고, 행복하고, 풍성하게 하죠. 


브라질 분식에서 먹은 사리 가득한 즉석 떡볶이 한 끼가 제 삶 속에서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게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부모님도 의도하지도 않았을테고요.  


물론 아이를 키우는 데에 객관적으로 좋은 것은 참 많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교육을 받고 새로운 경험들을 더 많이 해야할 때면 더 좋은 것들을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커지겠죠. 객관적으로 좋은 것은 많을 수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없다고 믿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절대'가 아님을 늘 염두에 두며 때로는 힘을 얻고, 때로는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자 합니다.

아이에게도 '절대'가 아닌, 어떤 형태의 '브라질 분식'이 커가는 지점마다 새겨지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아이에게 객관적으로 좋은 것들도 최대한 경험할 수 있도록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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