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만 출근하겠습니다 <희망퇴사>, 박정선
나 더 이상은 못하겠어!!
올해 들어서 일을 하며 부쩍 많이 하게 되는 말이다. 물론, 밤늦은 시간 혼자 모니터를 바라보며,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조직에서는 "그래도 어쩌겠니. 해야지"라는 말만 하고 있고, 나는 그저 맨땅에 헤딩하며 열 번 찍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 상반기는 이미 지났고, 7월도 반이 지나고 있지만, 성과는 여전히 제자리다.
내가 어쩌다가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조직에선 뒷짐 지고 서서 개인의 열정과 노력만 바라고 있다. 그리고 혼자 고군분투한 결과는 패배감과 자존감의 하락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직장에 다닌 지 6년째, 직장생활 3년, 6년, 9년마다 위기가 찾아온다고 하는데 나에게도 위기가 찾아온 것일까?
"나 더 이상은 못하겠어."라고 말하지만, 나는 왜 시원하게 사직서를 내지 못할까?
먼저, 이렇게 회사를 그만두기엔 뭔가 아쉽다. 내가 지는 것 같고, 회사라는 거인의 어깨를 밟고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다. 한편으론, 열정 없이 그냥저냥 시간 때우며 회사 다니는 월급루팡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회사를 다니는데, 뭐라도 해보려고 혼자 바둥대다가 혼자 지쳐서 혼자 퇴사하는 건 너무 억울하다.
또한, 지금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마음 편히'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신이 없다. 퇴사하면 두세 달 정도 운동하면서 몸을 만들고 싶기도 하고, 이곳저곳 여행하며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재충전하고 싶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밥벌이에 대한 고민과 불안정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내겐 아직도 '더 이상'이란 것이 남아있나 보다.
이 시점에서 @madamesnoopy 님이 선물해주신 박정선 작가의 <희망퇴사>는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한 답을 주었다. 늘 퇴사를 꿈꾸지만, 막상 퇴사할 용기도 없고, 의외로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 내게 어떻게 하면 회사를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다닐 수 있을지, 또 그 안에서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주는 책이었다.
왜 출근하기가 싫을까?
아침에 알람을 5분 간격으로 맞춰놓고, 결국 마지막 알람에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일요일 밤만 되면 괜히 말이 없어지고 우울해진다. 방으로 들어가 쭈그리고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잠이 든다. 얼마 전, 직장 동료들과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규칙적인 사무직 직장생활을 해낸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SNS를 보아도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는 직장인은 별로 없어 보인다. 늘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조직과 상사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일만 하는 것도 힘든데 정기적으로 있는 회식과 워크숍은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기는커녕 개인 시간을 빼앗아가는 업무의 연장선일 뿐이다. 월요일 출근길에서부터 금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삶은 언뜻 봐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삶의 3분의 1 이상을 보내는 직장생활이 이렇게 싫은 존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출근이 하기 싫다면
출근 자체가 싫은 것인지
출근해서 가야 하는 회사가 싫은 것인지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가 싫은 것인지
회사에서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이 싫은 것인지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싫은 것인지
이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것이 미래가 없을 것 같아서 싫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회사 가는 걸 타성적으로 싫어하고 있는 것인지
등 출근하기 싫은 이유를 제대로 고민해보라고 한다. 최소 '출근하기 싫다'면 왜 출근하기 싫은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조금 더 버틸지, 동종 업계로 이직할지, 타 업계로 전직할지, 아니면 아예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그만둘 것인지 분명히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출근하기 싫은 이유 5가지를 꼽아 보았다.
출근은 원래 힘든거다
나는 왜 이렇게 출근하는 것이 힘들까? 저자는 출근, 그리고 직장생활은 인간의 본성의 맞지 않는 것이라 한다. 10년 내내 일관성 있게 출근이 힘들었던 내가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라고, 지극히 정상인 것이라고 이야기 해준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애초에 지금의 기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처음 생긴 게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동인도회사를 만든 17세기 초 무렵이라고 한다. 400년 정도밖에 안되니 것이다. 출근이나 시간 개념도 마찬가지다. 끽해야 300년이다. 생겨난 지 300년~400년도 안된 '회사'에 '출근'하는 하는 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상사라는 포식자에게 인간의 DNA가 그렇게 빨리 적응할 리가 없다. 출근은, 그리고 직장생활은 어차피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 <희망퇴사> p.113
이 회사를 선택한 것은 '나'다
올해도 매출 목표는 더 높아졌다. 작년에 겨우겨우 매출 목표를 달성했고, 상황은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올해 성과의 담보는 구성원 그중에서도 아랫사람들의 의지와 노오오오력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에도 누구 한 명 나서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다. 중간 관리자들은 뚜렷한 대책 없이 "들었지? 어떻게 목표 달성할 것인지 대책을 세워봐"라는 말로 대안을 찾고자 한다. 신기한 것은 어떻게든 쥐어짜면 때론 목표가 달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을 그렇게 쥐어짜 지다가 터져버리고 만다.
또한, 조직은 개인의 성장 따위는 관심도 없다. 그저 목표만 달성하면 끝이다. 구성원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조직이 때로는 너무 밉다. "그래도 어쩌겠어, 해야지."라는 말만 하는 상사도 밉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미운 우리 회사를 과감히 박차고 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 회사를 선택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다. 입사할 때의 간절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권태와 회의감으로 흐릿해지고, 조직의 불합리함에 대한 불만이 또렷해진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은 어떤 조직이든 불합리함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회사가 불합리하다고 불평하기 전에 그 불합리함이 내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만약,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다른 구성원들을 위해서라도 빠르게 퇴사하는 것이 옳다. 더불어, 불합리함을 견디고 조직에 남아있기로 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개선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회사에서 남 탓만 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조직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업무보다는 역량
실제로 현재 내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작년부터 조직에서 기존에 해오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었고, 올해는 고전을 면지 못하고 있다. 가끔씩 내가 왜 이 일을 하면서 고생해야 하는지, 이 일을 함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잘 하지 못하는 일을 하다 보니 좌절감만 느끼게 되고, 자존감은 계속해서 바닥을 친다.
저자는 '자신의 업무와 역량을 혼동하지 말라'라고 한다. 직장인들은 보통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를 중심으로 자신의 능력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역량을 하나의 '업무 덩어리'가 아닌 하나하나의 레고 블록으로 생각해서 역량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재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잡지 기자를 예로 들자면, 잡지 기자가 지닌 능력은 그저 '잡지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그 안에는 트렌드를 찾아내는 능력, 콘텐츠를 기획하는 능력, 글을 쓰는 능력,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능력, 사람을 섭외하고 촬영하기 위해 팀을 꾸리는 능력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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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파악 능력 -> 시장분석
취재 능력 -> 자료 조사 및 취합 능력
글 쓰는 능력 -> 보고서 작성 능력
- <희망퇴사> p.184
주어진 업무를 그저 하기 싫다고, 또는 해보지 않은 업무라고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역량이라는 레고 블록을 모으고, 새롭게 덧대면서 자신만의 작품들을 만들어가는 기회로 삼아보는 것을 어떨까?
회사가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일이 별로 힘들지도 않고, 야근도 거의 없기는 한데 이 회사에 계속 있다간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회사도 있다. 무난히 정시퇴근이 가능하며, 굳이 전투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무난하게 다닐 수 있는 회사. 이런저런 환경이 적당히 나쁘지 않아서 굳이 이직에 대한 생각도 없지만, 크고 작은 불만은 조금씩 쌓여가는 조직이 있다.
저자는 이런 회사를 다닐수록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준비하든, 옮기고 싶은 직군에 대해 공부를 하든 무언가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회사의 특징은 그런 준비를 하기에는 딱히 나쁘지 않은 구조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건 결국 개인의 탓이다. 따지고 보면, 회사는 개인을 성장시켜줄 의무 또한 없다.
그리고 회사에 다니는 것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직장이 나쁜 것인지, 단순히 직장생활이 권태로운 것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 이를 혼동하면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환경의 회사로 이직하는 과오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인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그런데 블랙 기업은 직장인의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감퇴시킨다. 체력과 정신력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그렇다. 체력적으로만 힘든 게 아니라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니까 돈을 버는 것 같지만, 지속적으로 노동력을 생산할 수 있는 기본 자산을 까먹고 있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탈출하는 게 차라리 낫다.
- <희망퇴사> p.102
저자는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온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돈과 시간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내가 그 조직에서 얼마나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느냐가 직장인으로서 건강함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가 조직에 제공하는 것은 노동시간과 노동력이고, 월급은 그것에 대한 대가이므로 월급을 받는 만큼 성과를 낼 필요도 없다. 또한 성과라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과 함께 조직의 업무 프로세스, 물적 인프라 등등이 모두 시너지를 내어야 가능한 것이므로,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은 내 잘못만은 아니다. 더불어, 우리가 받는 월급은 성과에 대한 것이 아니다. 월급은 인생의 기회비용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자존감을 잃을 필요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조직이라는 거인 앞에서 주눅 들어 피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힘든데 의미를 찾을 수 없거나,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다 보니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상사에게 매일 혼이 나거나,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한 회사의 평가가 낮은 연봉으로 드러나거나, 자존감의 한 축인 자기 효능감이 현저히 떨어질 때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회사일이라는 것이 늘 내 뜻대로 풀릴 수는 없다. 회사에서 인정받지도 못하고,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지도 못할 때도 많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다. 보통 회사에서는 'OO기업 OO팀장 아무개'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 그리고 그 안에서의 지위가 정체성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은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마련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업무'여야 한다.
'회사 업무'를 내가 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픈 '업'으로 재정의 할 필요가 있다.
A(내가 재정의한 업의 본질)을 하는데,
지금은 그것이 B(그 업의 구체적인 현재 형태)인 직업
- <희망퇴사> p.263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기준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업무 환경, 타인의 평가나 눈에 보이는 성과들로 인해 자존감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회사형 페르소나'가 나의 정체성을 잠식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출근하기 싫은 이유 5가지를 꼽아보고, <희망퇴사>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매칭 시켜보니, 그래도 회사라는 거인이 나를 짓누르는 것보다, 내가 그 거인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일을 하며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해답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다만, 내가 구르는 이 곳, 우리 회사를 개똥 밭으로 만들 것인지, 냄새는 나지만, 자연에서 거저 얻는 거름 밭으로 만들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퇴사 신드롬의 핵심은 자신만의 삶을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출근하기가 이리도 싫지만, 직장생활도 내 삶의 일부분이고, 업무들도 내 생활의 일부분이다. 또한, 함께 일하는 동료들, 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 상활들 또한 내 삶의 한 페이지다. 저자는 <미생>에 나온 조치훈 9단의 "그래 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그래도 내 바둑이니까"를 떠올리며 "그래 봤자, 회사일"이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라고 말한다.
직장인들이 가장 우울해하는 일요일 밤이다.
저자인 박정선 작가는 직장인으로 살 수밖에 없지만, 직장인으로만 살고 싶지 않은 그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직장인으로 살 수밖에 없어서, 동시에 직장인으로만 살지 않기 위해 이른 아침 몸을 일으켜 일터로 나가는 나를 포함한 모든 직딩들을 응원한다.
어쩌면 우리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나약함과 비루함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 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고 닦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연봉이나 적성 같은 것과 무관하게 직장 생활 자체가 주는 유의미함 일지도 모르겠다.
- <희망퇴사> p.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