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는 한국, 찍는 중국
중국인들이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이 것'
2002년, 2005년, 2013년, 2014년, 2016년, 2018년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1년간 중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던 해입니다.
2002년에 처음으로 중국에 간지 16년이 지났고, 2016년 중국으로 여행 간 이후 2년 만인 지난주에 다시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매번 방문했던 지역은 대부분 다르지만 16년 전이나, 2년 전이나, 며칠 전이나 동일하게 눈에 띄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지갑'을 잘 안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2005년, 저는 중국어 어학연수를 위해 중국 대련에서 1년간 생활했습니다.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중국 땅에서 그나마 가장 손쉽게 중국어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은 식당, 시장, 마트였습니다. 게다가 중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일단 먹어야 하고, 필요한 물건도 자주 구매했어야 했기에 위의 세 곳은 거의 매일 방문하던 곳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 한참 동안이나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밥을 먹고 나서, 물건을 고르고 나서 계산을 할 때마다 받게 되는 거스름돈이었습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거스름돈이 늘 새로웠던 이유는 그 돈이 매우 지저분했기 때문입니다. 꾸깃꾸깃하다 못해 너덜너덜하고, 더러운 거스름돈을 도저히 제 지갑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물건값을 지불하는 중국인들을 보니 그들 또한 주머니 속에서 질서 없이 뭉쳐져 있는 지폐와 동전들을 쏟아내더군요. 물론, 제가 살던 동네가 도심이 아니었고, 제가 돈을 쓰던 곳이 큰 단위의 돈이 오가는 곳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중국인에게 지갑은 별로 필요 없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지갑이라는 물건은 중국살이에서 필수품이 아니며, 그저 돈을 넣고 다닐 주머니만 있으면 되겠다고 여기며 그렇게 1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3년이 흐른 2018년 겨울 상하이 여행 중, 역시나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중국인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달랐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지갑 속에 넣어둘 현금이나 카드가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승전 QR인 나라 중국
2년 전인 2016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올해 중국에 가보니 모든 상점의 계산대에 파란색과 초록색의 QR코드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중국이 현금 없이 알리페이나 위챗 페이와 같은 QR로 모든 대부분의 상거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렇게나 보편화되어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올해 1분기 조사 결과 중국에서는 오프라인에서 휴대폰을 사용해 결제하는 비율이 70%를 넘어서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시장 규모는 작년 1경 7000조 원을 기록했다고 하네요. 1 경이라뇨...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입니다. 지난 11월에는 중국 위챗 페이 사용자가 6억 명을 돌파했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중국 뉴스 포털인 텐센트는 28일 정보기술(IT) 조사기관 `머천트 머신`을 인용해 "위챗 페이가 지난해 말 기준 이용자 6억 명을 넘어서며 세계 1위 모바일 결제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라고 밝혔다. 2위는 앤트파이낸셜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로, 전 세계 사용자 4억 명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3위에는 미국 페이팔(2억 1000만 명)이 이름을 올렸으며 애플 페이(8700만 명), 삼성 페이(3400만 명), 아마존 페이(3300만 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2018.11.29. 매일경제)
QR코드가 사용되는 곳은 결제뿐만이 아닙니다.
길거리 곳곳에 세워져 있는 공유 자전거,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목, 지하철 플랫폼, 쇼핑몰 곳곳에 놓여 있는 공유 배터리, 공유 우산, 벽에 붙어 있는 광고판,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 식당에서 받은 대기 번호표, 결제 후 받은 영수증 곳곳에 모두 QR코드가 들어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든 정보의 시작과 끝, 그리고 발걸음이 닿는 곳곳마다 QR코드가 대기하고 있었고, 중국인들은 QR코드 찍는 것을 전혀 번거롭지 않게,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QR은 중국인의 소비 습관을 포함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데이터로 축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이 가진 또 하나의 거대한 자산이 되겠지요.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2017년에 진행한 '국가별 핀테크 활용도'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69%로 1위를 기록했고, 한국은 32%, 일본은 14% 그쳤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QR결제는 보편화되어있지 않습니다. 비단, 결제뿐 아니라 QR코드를 스캔하는 것 또한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입니다. 얼마 전 국가 차원에서 소상공인 간편 결제 서비스인 제로 페이를 시행했지만, 생각보다 그 반응은 미지근한 실정입니다. 제로 페이를 도입하는 소상공인들이 결제 시스템에 대한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신용카드 하나면 모든 결제가 가능한 상황이라 굳이 휴대폰 결제 서비스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일본은 모바일 결제는커녕 신용카드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5%에 육박하는 데다 상점들이 의무적으로 카드 결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에 많은 상점들이 카드 결제를 거부하기 때문이죠. 또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출을 하며, 빚을 지기 싫어하는 일본의 국민성 때문에 일본은 현금 결제율이 81.2%에 달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중국에서 가장 먼저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되었을까요?
현재 중국인들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되는 QR코드가 보편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위챗'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챗은 대한민국의 카카오톡과 같이 중국의 대표적인 모바일 메신저입니다. 중국어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한어병음을 하나하나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죠. 위챗에서는 이러한 불편함을 발견하여 상대방 스마트폰의 QR코드를 스캔해서 친구를 등록하는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이 방식은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편리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이러한 편리함으로 QR코드 사용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낮추었습니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QR코드로 결제하기 이전에 이미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메신저에서 QR코드 사용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복잡한 중국어 때문에 생겨난 QR코드 시스템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던 짬이 있었기에 QR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결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위조지폐라 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생길만한 이슈라는 생각이 듭니다. 80-90년대에 뉴스에서 위조지폐가 유통되었던 사건들을 가끔 보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까지도 위조지폐와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중국에 갔을 때도 100위안짜리를 지불하면 그 지폐를 받은 점원들은 반드시 허공에 지폐를 비추어 보고, 손으로 톡톡 치면서 위폐 여부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못 만드는 것 없는 나라 중국에서는 위조지폐를 만드는 일은 정말 일도 아니겠죠. 이런 상황에서 현금이 오가지 않는 모바일 간편 결제는 위조지폐 문제를 한 번에 없애버릴 시원한 해결책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당 신용카드 보유 수가 0.02장으로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14년이 지난 2014년에도 1인당 0.33장으로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2014년 신용카드 보유비율 88.7%과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중국은행 지점 수와 현금 자동입출금기의 수가 14억 명 인구수를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점이 중국이 모바일 결제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중국 정부 또한 물리적인 인프라가 많이 필요한 전통적인 금융 서비스 대신 핀테크 사업에 우호적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중국 상하이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굉장히 큰 기대감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중국이 급변하고 있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중국의 변화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굳이 일부러 변화를 찾아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 내리는 순간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연 하늘이 나를 맞아 주었고, 특유의 중국인 냄새도 여전했습니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있는 떡진 머리의 중국인들도 어색하지 않았던 모습입니다. 중국에 갈 때마다 찾았던 맛있는 음식들도 반가웠고요. 큰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비 오는 날 건물 1층에서 우산 비닐을 나눠주는 사람이 따로 있을 만큼 인력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모든 것이 여전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분명히 변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QR코드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곳곳에 놓인 자판기가 놓여있었고, 그 자판기에서는 음료수부터 화장품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길거리를 다니는 오토바이의 90% 이상은 전기 오토바이 이더군요.
길거리를 다니는 자전거의 90% 이상이 노란색, 주황색의 공유 자전거였습니다.
메뉴판을 태블릿으로 사용하는 식당이 많았으며, 태블릿에서 주문하면 바로 주방으로 주문이 들어가 별도의 요리가 필요 없는 음식은 미처 다른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택시에서 내릴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기사님이 묻더군요. 모바일이냐 현금이냐?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의 삶의 템포가 빨라졌습니다. 제가 이번에 경험한 중국이 상하이라는 대도시 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하게 변화에 대응하고 있고, 부지런히 시도하고 있으며, 또한 앞서 준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네가 알던 내가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