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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Feb 24. 2019

결혼을 하고서 비로소 알게 된 것들

3년어치만큼의 깨달음

2016년 2월 20일 11시 30분


결혼식 성혼선언에서부터 우리의 결혼생활이 시작됐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서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결혼이라는 문을 지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죠.


내 나이 35세, 결혼을 하는 시기를 절대적으로 이르다거나 늦다거나 구분 지을 필요는 없지만, 사회에서는 이미 늦었다고들 하더군요. 이미 늦은 결혼인데 뭘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두 달만에 결혼 준비를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상견례 후 결혼 준비를 하는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그 기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최대한 군더더기 없이 실속 있게 결혼 준비를 하자는 양가의 뜻이 맞아서 별다른 갈등도 없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을 수 있는 때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축복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결혼 생활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날들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설렘 또한 컸고요.


남동생이 하나 있는 나는 자매들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같이 잠자리에 누워서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수다를 널어놓다가 잠드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결혼생활의 로망이었습니다. 소박하기도 하여라. 로망은 그것이었고, 무엇보다 결혼이라는 관문을 지나며 나에게 주어지는 관계의 자유를 누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결혼할 이 남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과 장소의 자유, 즉, 따로 약속시간을 정해서 만나 오늘은 뭐할까? 오늘은 어디 갈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데이트 후 헤어지지 않아도 되며, 그리고 마음껏 스킨십할 수 있는 자유. 그 기대감으로 하루라도 더 빨리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결혼식을 한 그 순간부터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첫 출근을 하기 전까지 약 2주 동안 화장실에 들어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 순간도 남편이라는 사람과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늘 함께였고, 내가 원했던 관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으며 결혼 생활이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결혼 준비를 빠듯하게 하는 바람에 결혼식 4일 전에 전셋집 계약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신혼여행을 떠나 있던 중 간단한 집수리가 진행되었으며, 살림살이들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우리가 앞으로 살 집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그 장면과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 이제 진짜 결혼 생활이 시작이구나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신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신혼의 기간이 얼마냐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 새로움이 사라질 때까지가 신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사는 사람, 사는 곳, 생활하는 방식 등 결혼 직후에는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싱크대 수세미와 욕실 신발까지도... 그러나 새로움은 어느새 익숙함이 되어버리고, 익숙함 안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모습과 나의 민낯을 볼 수 있게 되었죠.


신혼 초 퇴근 후 8-9시에라도 소꿉놀이하듯 꽁냥꽁냥 만들어 먹었던 한 끼의 저녁 식사도 익숙해진 이후에는 하루의 고단함에 뒤로 밀려 밖에서 사 먹는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본능과 본성이 상대방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저절로 살아지는 게 아니더라


3년간 결혼생활을 하며 느낀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저절로 살아지는 게 아니더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먼저, 결혼생활을 해보니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에 직면하게 되더군요.

살 집을 구하는 것,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것, 삼시세끼 챙겨 먹는 것, 입을 옷들을 챙기는 것 등 기본적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조차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자취하는 친구들은 이미 경험한 것이었겠지만, 부모님의 울타리가 얼마나 컸는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되는 주말이면 아침 먹고 치우면 또 점심시간, 점심을 만들어 먹고 뒷정리하면 곧 저녁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먹는 것이 정말 '일'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해도 티 안 나고 안 하면 티 나는 집안일, 손바닥만 한 집을 청소하는 것도 '일'입니다.


부끄럽지만, 결혼한 것을 가장 후회할 때가 남편의 남방을 다릴 때입니다. 남편과 저는 굳이 각자의 역할을 나누지 않아도 집안일을 잘 분배해서 하는 편입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은 주로 끼니를 챙기고, 청소를 좋아하는 저는 집안 청소를 합니다. 빨래를 제가 했다면, 빨래를 개는 일은 남편이 하고요. 다만, 남편은 다림질은 절대 못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남편의 남방을 다리는 일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다림질을 많이 해보지 않은 터라 일주일에 최소 5개가 나오는 남방을 다리는 일은 주말에 2시간은 투자해야 하는 일입니다. 에너지가 많을 때는 상관없지만, 힘들고 바쁠 때는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애써 감정 조절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뭐, 어찌 되었든 먹고사는 문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습니다.


정성껏 다린 남방 입고 즐겁게 직장생활 하길 바라요. 그리고 돈도 많이 벌어오세요ㅋㅋ


또 한 가지 저절로 되지 않았던 것은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결혼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한 부분에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내 기준에 상대방의 생각을 맞추기 위해 끌어당기기만 했고, 그럴수록 상대방은 점점 더 멀어져 감을 느꼈습니다. 나와 함께 사는 상대방도 어떤 부분에서는 나와는 생각이 전혀 다를 수 있으며 내 생각이 무조건 맞는 것이 아니고, 또한 어떤 부분에서는 서로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내 안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심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로 좋아하고, 아끼는 사이에서라도 생각과 뜻이 저절로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아니, 그보다 더 어려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는 해보지 않았던 전혀 다른 애씀과 고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런 시간을 겪으며 단지 결혼 생활에서 뿐 아니라 삶 전체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활 속 크고 작은 말다툼 속에서도 느낍니다.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 또한 거저 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 그리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게 해 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신데렐라처럼 12시가 되기 전에 꼭 자야 하는 남편, 반면에 올빼미형 인간인 저는 생각보다 함께 잠자리에 드는 날이 많지 않아 결혼생활의 로망이었던 하루 일과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잠드는 시간은 기대했던 것만큼 확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결혼 이후 제 삶이 훨씬 더 나아졌다고 느낍니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퇴근 후 집에서 만나는 남편이 참 반갑고, 출장으로 집을 비우게 되는 날은 보고 싶습니다. 가끔씩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이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욕하며 한끼의 맛있는 음식으로 훌훌 떨쳐버릴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가 한 명 더 생겼습니다. 양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감사하고요.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발걸음을 맞추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혹자는 10년은 되어야 부부가 정말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결혼 3주년이었던 지난 수요일.

미리 계획되어있던 야근 일정으로 특별한 이벤트 없이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보냈지만, 함께 지난 결혼 생활을 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는 3년어치만큼의 가족은 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관계와 삶이 부쩍 안정적이 된 것 같지?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 이정록 '더딘 사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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