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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Mar 17. 2019

동네 친구가 있습니까?

동네 친구 만드는 법 5가지

따옴표를 치고, 큰 글씨로 쓸 만큼 내세울 일은 아닙니다만...


저는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폭넓게 만나기보다는 취향이 비슷하고 마음이 맞는 몇 명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입니다. 좋게 말하면 사람을 깊게 사귄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편협한 인간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몇 명 없는 친구들이 진학, 취업, 결혼, 출산 등과 같은 인생의 특정한 점들을 거치며 내 곁에서 한 명씩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친구 그만하자'라고 선을 그은 것은 아니지만, 삶의 환경과 패턴이 서로 달라지면서 삶이 포개어지는 면적 또한 줄어들어버렸습니다.


물론, 아직도 친구이긴 합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더라도 어제 만났던 것처럼 익숙하고 즐겁습니다. 비록, 얼굴에 주름도 많이 생겼고, 몸에는 나잇살이 붙었으며, 머리숱도 부쩍 없어졌지만 "너는 왜 하나도 안 변했니"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 SNS로 공유되는 친구의 일상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댓글을 달기도 하며, 가끔씩 전화를 걸어 수다도 떱니다. 그러나 늘 가까운 거리에서 붙어 다녔던 우리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와 서로 다른 생활 패턴, 떨어져 있던 시간들로 인해 무중력 같은 느낌의 공간이 생겨버렸습니다. 어떠한 긴장도 하지 않고 편하게 마주 앉을 수 있는 친구가 어느새 없어졌습니다.


물론, 새 친구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기도 합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만난 언니, 동생, 친구들도 있고, 취향을 즐기기 위해 참여하게 된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둘도 없는 남편이라는 친구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친구 같은 남편이지만 남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친구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에게는 남편 욕을 못한다는 걸까요? 완전 농담입니다.(ㅋㅋㅋ)


친구 말고, 동네 친구


결혼을 하고 이 동네에서 3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릅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침에 집을 나가면 저녁 늦게나 들어오게 되는 일상을 살다 보니 동네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는 일도 드뭅니다. 설사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동에 사는 사람들을 마주쳐도 가볍게 목례만 하거나 어색해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게 됩니다. 출근길 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그 사람은 그냥 8층에 사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 사람도 저를 8층보다 위층인 어딘가에 사는 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요.


최근 들어, 동네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마음이 부쩍 커집니다. 언제까지 이 동네에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맘 편히 점퍼 하나 걸치고, 가방 따윈 필요 없이 주머니에 핸드폰과 지갑을 넣어 걸어서 만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그립습니다.


(출처 : 응답하라 1988 트위터 @reply_tvn)


위의 사진들처럼 누구의 집에 모여 조촐하지만 맛있는 음식 차려놓고 생일 파티도 하고, 같이 라디오도 들으며 놀 수 있는 동네 친구. 이 모습이 좋아서 '응답하라 1988'을 5번도 넘게 봤나 봅니다.


제가 동네 친구를 고파하는 것은 그들을 만나서 단지 긴장을 풀고 맘 편히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동네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기 시작한 것은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제현주 작가'의 <일하는 마음>을 읽고 나서입니다. 이 책에서 '범서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범서파는 ‘범서대문구 모임’을 줄인 이름으로, 서대문구와 그에 인접한 마포구와 은평구에 사는 2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까지의 여성 6-7명으로 이루어진 모임입니다.

이 모임이 나에겐 대나무 숲이다. 일하는 여성이 부딪히는, 어디 가서 말하기 뭣한 소소한 짜증부터 심오한 문제의식을 자기 검열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장소다. 섹터에 대한 애정 어린 불평불만도 이곳에서 얘기하면 안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임에서 나는 동네 친구를 만난다. 차 타고 15분 걸리는 동네이긴 하지만, 넓디넓은 서울에서 뜻 맞고 맘 맞는 친구를 15분 만에 소집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위안이다. 실은 현실 접속보다는 카톡 수다가 훨씬 빈번하지만, 직업인으로서의 짜증과 피로를 다음 날로 넘지 않고 아침을 맞는 데 범서파 카톡방이 큰 역할을 한다. 나에게 공감해줄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 제현주 <일하는 마음> 중


책을 읽으며 동네 친구 모임인 범서파가 어찌나 부럽던지요. 사는 동네 만으로 여기에 낄 수만 있다면 이사를 가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물론 범서파 모임은 물리적 거리 이전에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 핵심이지만요.


이처럼 동네 친구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만날 수 있고,

이해관계가 없이 생활 패턴, 취향을 중심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가까워지기 쉬우며,

근거리에 있어서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어려울 때 손쉽게 힘이 될 수 있다.

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동네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저도 동네 친구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동네 친구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봤습니다. 다섯 가지 정도의 방법이 떠오릅니다. 한편으로는 예전엔 그냥 같이 뛰어놀고, 학창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가 되었는데, 이제는 굳이 동네 친구를 만드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이것이 또 하나의 글감이 된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01. 취향을 중심으로 모임 만들기


제가 참여하는 '가양33'이라는 독서모임이 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오명석 님(@oms1225)님의 주도로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가양동과 차나 대중교통으로 15분 내의 거리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한 달에 한번, 주말 오전에 책 한 권을 함께 읽습니다.


처음에는 주말 아침 집에서 빈둥거리며 보낼 바에 나가서 책을 읽자는 생각으로 모임에 첫 발을 들여놓았지만, 함께 책을 읽으며 현재 삶의 키워드를 공유하고, 책 속에서 얻는 인사이트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해서 8개월째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나는 분들을 모두 친구라고 하기엔 솔직히 아직은 조금 서먹합니다. 그러나, 이해관계없이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게 또 다른 형태의 '쉼'으로 다가옵니다. 주말 아침 간단히 씻고, 간단히 옷을 걸치고, 간단하게 책을 들고 만나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이 동네 친구가 아닐까요?


동네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와 케이크와 함께하는 독서모임은 더욱 즐겁습니다. 사진이 조금 어수선하지만... 현장감을 위해!!



02. 지역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 활용하기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민이 스스로 계획을 수립, 제안, 직접 실행하는 주민 주도 사업으로 주민 3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고, 주민의 준비 정도에 맞추어 주민모임 형성, 실행, 마을계획 수립 지원 등의 단계를 통해 맞춤형 지원을 실행한다고 합니다. 자발적으로 모인 주민들이 동네의 문제점을 고민해서 해결 방안을 찾기도 하고, 나눔을 실천하기도 하며, 취미를 즐기는 등의 소모임 활동을 지원하여 지역 공동체를 형성을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지원한다고 다 승인이 되지도 않고, 세금을 쓰는 것이다 보니 지원 절차나 지원을 받은 후 활동 상황을 보고하는 것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동네 친구들을 만들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 친구를 만드는 것과 동시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떤 형태로든 공헌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마을 공동체 사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제가 살고 있는 강서구에서도 공모를 받고 있네요.



03. 온라인 네트워크 활용하기


이유야 어떻든 동네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건 저뿐만이 아닌 듯합니다. 최근 다톡, 위피와 같은 친구를 찾는 모바일 서비스가 생기기도 합니다. 동네를 기반으로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사고팔며 나눌 수 있는 당근이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고요.


포털사이트에서 동네 친구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면, '동네 친구 만들고 싶어요', 가끔 커피 한잔 할 동네 친구 만나고 싶네요', '동네 친구 어떻게 사귀나요?', '동네 친구가 하나도 없네요ㅜ', '동네 친구 구해요', '동네 친구 찾아요', '동네 친구 다들 어찌 만드시나요?', '토요 모임 할 동네 친구 찾아요'와 같은 제목의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습니다. 주로 지역 이름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동네 친구를 만들고자 한다면 온라인 채널을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온라인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리스크는 좀 있겠지만요.



04. 함께 운동하기


취향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드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함께 운동하며 동네 친구를 만드는 것은 조금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아침 수영을 다니고 있는데 수영장 풍경, 엄밀히 말해 수영장 탈의실과 샤워실 풍경을 보며 동네 친구는 바로 여기 다 모여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일단,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납니다. 게다가 알몸으로 같이 샤워도 합니다. 친밀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제가 다니는 수영장은 정말 동네 수영장입니다. 아침반 수강생의 85%가 50대 이상의 여성이며, 나머지 15%가 20-40대 여성, 고른 연령대의 남성입니다. 6시부터 시작하는 수영강습을 위해 탈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와글와글한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샤워실에서는 물소리와 함께 소리가 울려서 더 크게 들립니다. 잠도 다 깨지 않은채 겨우 몸만 일으켜서 가는 수영장인데 아주머니들의 수다로 잠이 다 깰 정도입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다양합니다. '오늘 반찬은 뭘 해먹을 것인지', '돌보고 있는 손주하는 귀여운 행동', '옆집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이 1박 2일로 낚시를 가서 느끼는 홀가분함', 지난 주에 다녀온 해외여행에서의 에피소드' 등 소소한 삶을 공유합니다.


이들이 진정한 동네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넉살이 그다지 좋지 않은 저는 그 분들이 저에게 말을 걸고, 저에 대해 물어볼까봐 늘 겁이 나긴 합니다.


수영장 뿐만 아니라 헬스장, 요가원 등 동네에서 이처럼 정기적이고 꾸준히 찾는 장소는 없는 듯 합니다.

함께 운동을 하며 동네 친구를 사귀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05.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연락해보기


꼭 새로운 친구를 찾으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학창 시절을 보냈던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용기내어 연락해보는 것도 동네 친구를 만드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저 또한 2년 전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편집부라는 동아리에서 함께 교지를 만들며 활동했던 친구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대학에 입학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20대 때 가끔씩 안부는 주고 받았지만,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얼굴은 보기 힘들었죠. 다행히, 둘 다 오랫동안 번호를 바꾸지 않았기에 핸드폰에는 서로의 번호가 남아있었고, 2년 전 스마트폰 메신저에서 친구의 프로필 사진이 결혼 사진으로 바뀐 것을 확인했습니다. 10년 가까이 연락을 하지 않았던 터라 친구도 저에게 결혼을 한다고 선뜻 연락을 하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친구도 다시 만나고 싶었고, 결혼도 축하해주면 좋겠다 싶어 친구에게 톡을 보냈습니다.


"달땡아, 결혼해?"


그 일을 계기로 이 친구 뿐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으나 연락이 끊어졌던 다른 친구들도 함께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모두 차로 15분 이내의 거리에 살고 있더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가까이 되었지만, 만나면 그 때처럼 깔깔대고 웃으며 삶을 공유합니다. 오는 4월 초에는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것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잃었던 동네 친구를 되찾았습니다.


마침 친구 중 한 명이 동네에 카페를 오픈했습니다. 부담없이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어서 넘 좋습니다.




일과 삶을 넘나들며 다종 다양한 대화를 이해관계의 얽힘 없이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자리, 현재의 밥벌이 바깥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함께 작당해 볼 수 있는 자리, 나는 그런 자리 덕에 다음 날 다시 우아한 얼굴로 일터에 간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내 일의 다른 가능성, 지금과는 다른 사회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 제현주 <일하는 마음> 중


동네 친구라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현주 작가의 말처럼 일과 삶을 넘나들며 다양한 대화를 이해관계 없이 안전하게 나누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도모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관계. 내가 만들고 싶은 동네 친구의 모습입니다.


저랑 동네 친구 하실 분 안 계신가요?


참고로 저는 이런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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