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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Apr 07. 2019

운동하러 가기 전에 드는 오만가지 생각

운동을 하러 가기 싫을 때 이 생각을 꺼내먹어요

오전 5시 30분, 휴대폰 알람이 울립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좀 더 세게 감고 더듬더듬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알람을 끕니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다시 잠에 듭니다. 5분 후에 알람이 또 울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5분 후에 어김없이 알람이 또 울립니다. 이 때는 끄응 소리와 함께 발끝까지 온몸을 쭉 늘이고 몸을 비틀며 알람을 끕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불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올해 1월부터 출근 전에 아침 수영 강습을 받고 있습니다. 6시부터 시작하는 강습 시간을 맞추려면 늦어도 집에서 5시 40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알람이 울린 후 이불속에서 꾸물거리는 3분여의 시간 동안 제 머릿속을 오가는 오만가지 생각 빼기 사만구천구백구십 가지들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자로 옮겨봅니다.




처음에는 운동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될 구실을 찾습니다.


먼저, 바깥 날씨를 살핍니다.

빗소리가 들리는지, 바람이 많이 불지는 않는지, 춥지는 않은지... 아쉽게도 대부분의 날들이 맑습니다. 최근에는 해도 길어져서 심지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의 색깔이 검정이 아닌 남색입니다. 밖이 캄캄할 때 집을 나서야 하는 서글픔 또한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다음은 내 몸 상태를 살핍니다.

그리고 구석구석에서 핑곗거리들을 발굴해냅니다.

어제 회사 일이 많아서 늦게까지 일했는데.

독서모임, 영어 스터디 등으로 귀가 시간이 늦었는데.

뭔가를 하느라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는데.

그리고 오늘 하루 엄청 바쁠 예정인데.

그래서 나는 매우 피곤한데.

이런, 생각보다 운동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될 합리적인 구실이 없습니다.


더 이상 핑계를 댈 것이 없을 때 내가 운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떠오른 생각들이 이불속에서 몸을 비비 꼬고 있는 나를 일으켜 수영장으로 등을 떠미는 힘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혹자는 운동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운동화를 신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말이죠. 일단 시작하면 계속하는 것은 덜 힘들고, 하고 나면 상쾌하고 뿌듯한 것이 운동임을 아는데도 말입니다.




운동을 하러 가기 싫을 때 꺼내먹고, 힘을 내어 운동화 끈을 묶을 수 있는 생각들이 여기 있습니다.



첫 번째 생각

어차피 씻어야 하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있는 나를 가장 먼저 일으키는 생각은 '어차피 씻어야 하는데'입니다. 특히, 수영은 하기 전에도 씻어야 하고, 하고 나서도 씻어야 하는 운동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차피 씻어야 하는 절차를 겸사겸사 처리할 수 있는 최적의 운동입니다.



두 번째 생각

더 자봤자 한 시간이다


다음에 드는 생각은 '더 자봤자 한 시간'입니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후면 어차피 몸을 일으켜야 합니다. 지금 한 시간 더 잔다고 해서 눈이 번쩍 떠지고, 정신이 매우 맑아지며,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나, 한 시간 이후에 일어나나 더 자고 싶은 생각은 여전합니다. 어차피 일어나야 할바엔 지금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생각

오늘 안 하면 내일은 더 하기 싫다


운동은 물리 시간에 배웠던 마찰력과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합니다. ‘운동을 하기 싫은 마음’이라는 마찰력을 극복해내고 나면 쭉 할 수 있는 관성이 작용합니다. 관성이라는 것으로 인해 하기 시작하면 계속하고자 하지만, 멈추어버리면 계속 멈추고자 합니다. 또다시 마찰력이라는 힘을 넘어서고 나서야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내일 하지 뭐'

관성과 마찰력 모두를 이겨야 실현할 수 있는 한마디입니다. 자신 있으십니까?



네 번째 생각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의 맛


수영장은 물론 수영복 근처에도 안 갔던 제가 호텔 수영장에서 우아하게 평영을 하던 한 여성분의 모습에 반해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내 삶의 5할 이상이 수영이라고 할 정도로 수영에 푹 빠져 있습니다. 틈만 나면 머릿속으로 배웠던 수영 자세들을 복기하거나 유튜브로 수영 동영상을 보기도 합니다. 특히 지난달에는 제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평영을 배우게 되면서 수영하는 시간이 더욱 재미있어졌습니다. 물론, 수영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들고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지만, 수영은 요즘 제 삶에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수영이지만, 매일 아침 수영장까지 가는 길은 심리적으로 만리 길입니다.

이불속에서 생각합니다. 지금 일어나서 수영장까지 가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행복이 있지만, 일어나서 바로 출근을 하게 된다면 내 하루의 시작은 지옥철이 되겠지?



다섯 번째 생각

퇴근 후 운동 대신 할 수 있는 일


아침에 수영장에 가지 않으면, 저녁에 가도 됩니다. 저녁에 가면 강습을 받지는 못하지만, 자유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따 저녁에 가면 되지"

가장 큰 유혹입니다.

그때마다 당장 오늘 저녁 퇴근 후에 하고 싶은 일, 운동가는 대신할 수 있는 일들을 떠올립니다. 저녁 시간을 추가로 선물 받은 기분이 듭니다.



여섯 번째 생각

나는 왜 운동을 하려고 하는가


매우 당연하지만, 많이 간과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운동을 하면서 구체적인 목표를 만드는 것은 꾸준히 운동을 하기 위한 중요한 원동력이 됩니다. 단순히 살 빼자가 아닌, '3개월 내에 체지방 5킬로그램 감량하자'처럼 손에 잡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목표가 필요합니다.

저는 수영을 배우는 목표를 2가지로 세웠습니다. 하나는 자유자재로 평영 하기, 또 하나는 2년 후에 철인 3종 경기에 나가기입니다. 수영, 사이클링, 달리기로 구성된 철인 3종 경기에 나가려면 수영을 배우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체력도 길러야 합니다. 운동이 하기 싫어질 때면 ‘2년 후 철인 3종 경기’를 떠올립니다. 더불어 호텔 수영장에서 유유히 평영을 하는 내 모습도 함께 떠올려봅니다.



일곱 번째 생각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


각자 운동을 하고 단체 창에 인증을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몸을 움직입니다.

여기에 인증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일으킵니다.



여덟 번째 생각

운동은 내 숙명


운동이라는 것은 오늘 하루 안 한다고 평생 안 할 수는 없습니다. 한해 한해 시간이 흐르면서 건강과 체력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체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제현주 작가는 자신의 근육이 모든 것의 원동력이므로 열심히 운동을 한다고 했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글을 잘 쓰기 위해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한다고 합니다.

운동은 선택이 아닌 숙명이라는 것,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결정적인 생각입니다.




이렇게 5분을 흘려보낸 후 허겁지겁 수영장으로 갑니다.

좋아하는 수영을 하며 몸을 움직이고 시작한 하루는 역시 즐겁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다음 날이 되어 운동을 갈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하기 싫은 내가 또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오만가지에서 사만구천구백구십개를 뺀 위의 10가지 생각들을 한 후 겨우 몸을 일으킵니다. 만약, 위의 여덟 가지의 생각을 꺼내 먹어도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면 그냥 안 하면 됩니다. 


저는 내일 아침에도 서랍에서 이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서 먹고 수영장으로 가겠지요.(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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