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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Jun 16. 2019

취향이 흐릿한 사람

나는 취향이 흐릿한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입니까?

어떤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선호하십니까?

이상형은 어떤 스타일입니까?

어떤 여행지로 여행하시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취향이 흐릿한 저는 누군가가 위의 질문을 던질 때 한번에 바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런 스타일도 괜찮고, 저런 스타일도 나쁘지 않고,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멋있고,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멋있고…


최근 ‘개취, 취저, 취존’등의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 ‘취향 저격’, ‘취향 존중’을 줄인 신조어인데 그만큼 개인의 취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취향의 사전적 의미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입니다. 취향이라는 단어는 좋아하는 것, 선호하는 것, 성격, 라이프스타일 등의 단어를 통털어 일컫는 말이라도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취향의 영역은 무궁무진 합니다. 음식, 여행, 휴식의 방법, 책, 스타일, 색깔, 영화, 만나는 사람 등이 모두 취향이 반영될 수 있는 분야입니다.


톨스토이는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취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취향이 흐릿할 뿐이겠죠.


사실 과거에는 취향이 개인의 삶에서 그리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기에 개인의 취향 따위는 어쩌면 사치로 여겨졌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취향이라고 이름 붙여서 누릴 수 있는 생활과 문화의 범위 또한 매우 좁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더이상 삶의 커다란 이슈로 여겨지지 않게되자 사람들은 개인의 취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취향’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소비 패턴,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비즈니스 영역, 마케팅 방식 등도 취향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서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것들을 먼저 추천해주는 비즈니스들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성별, 연령, 살고 있는 지역, 어떤 콘텐츠에 얼마나 머물렀는지'와 같은 콘텐츠 소비 성향 등을 파악해서 다음에 볼 콘텐츠를 사전에 추천해 주는 넷플릭스가 대표적입니다. 아마존의 경우 구매기록, 쇼핑카드, 평점 등을 분석해서 상품 추천을 제공하는 추천엔진을 활용한 매출이 전체 매출의 35%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의 집 거실에서 집 주인의 취향을 나누는 거실 여행이라는 콘셉트의 ‘남의집’이라는 비즈니스가 눈길을 끌고 있으며 취향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 여가에서는 취향을 중심으로 모이는 살롱문화 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개인의 취향에 맞게 소비자의 니즈를 제안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런 것도 괜찮은데 당신은 어떤가요?”라며 취향을 먼저 제안하는 비즈니스 방식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취향이 뚜렷한 사람은 매력이 있습니다. 그들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죠.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마음이 향하는 곳에 매료되어 그것을 즐기는 모습은 때론 섹시하기까지 합니다.


취향이 뚜렷한 그들을 바라보는 취향이 흐릿한 저는 그냥 그렇게 “평범한 누구"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그 존재마저 흐릿하게 여겨지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습니다.
다만, 흐릿할 뿐.


앞서 밝혔 듯이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습니다. 다만, 흐릿할 뿐.


취향에는 남녀노소를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 조카들만 보아도 그들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 조카는 7살, 5살의 여자 아이입니다. 언뜻 보기엔 둘 다 비글미 넘치는 유치원생들이지만, 그들의 행동을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취향이 확실이 다르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7살인 첫째 조카는 주말에 밖에 나가 사람 많은 곳에서 야외활동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막상 나가면 잘 놀지만, 집에서 그림그리며 노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작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호텔에서 TV본 것이라고 대답할 만큼요. 반면 5살 둘째 조카는 어디로 놀러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단순 성격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즉 취향이 다른 그들이 자라면 이러한 취향의 차이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지겠죠.


억지로 취향을 찾고, 있어보이는 취향에 나를 맞추며 살 필요는 없지만 좋아하는 쪽으로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취향을 따르는 것이 소비 생활과 연결되고,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면서 일부에서는 이러한 취향이 계급문화를 조성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이 사실이 취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취향은 오리지널리티이고 개인 회복 공간이다.
- 무라카미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쪽이나 마음가는 쪽과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고용주에게 담보 잡혀 살고 있는 직장인들은 더더욱 그렇겠고요.


어쩌면, 취향 마저도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르죠. 큐레이션이나 트렌드라는 미명 하에 지나치게 외부에서 제안하는 것들에 의존하고, 애써 그것들을 따르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혹시 취향이 없다고, 혹은 흐릿하다고, 이런걸 취향이라고 하기엔 별 볼일 없어서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취향이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대답이며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고상하거나 우아할 필요도 없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며, 굳이 독특하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바빠 죽겠어도 꼭 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바빠 죽겠는데도 이걸 해야 마음이 편한 것. 그것이 당신의 취향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 개의 선택지가 있을 때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에 집중해 보세요. 그것도 당신의 취향입니다.

SNS에서 팔로우 하고 있는 사람, 또는 해시태그에 주목해 보세요. 그 안에 당신의 취향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아무런 보상도 없지만 계속 눈길이 가는 것, 힘들 때 찾게 되는 것 그것이 당신의 취향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취향은 누군가를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취향은 한 순간에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발견하는 과정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것입니다.


내 안의 취향을 찾고자 한다면 취향을 찾는 과정에서 나를 찾아보세요.

흐릿한 취향에 뚜렷하게 선을 그려 넣어보고 싶습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마음은 매일 흔들리며 어딘가에 닿고, 우리는 그것에 지갑을 열거나 시간을 쏟는다. 그 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때론 절망, 때론 후회다. 하지만 운 좋게도 몇은 나에게 남는다. 나에게 꼭 어울리는 형태로. 나에게만 꼭 어울리는 색깔로. ‘나의 취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마침내 생긴 것이다. 반갑게도, 기쁘게도. 그렇다면 나에겐 그 취향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유행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 취향을 기준점으로 삼아 하루를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식량으로 삶아 나의 취향은 오늘도 나를 나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취향'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고 앉아 오래도록 생각했다. 왜 그 때 나는 저것이 아니라 이것에 마음이 끌렸을까? 이것은 또 나의 어떤 마음을 닮았을까? 이 취향은 얼마나 오래 나에게 머물게 될까? 하루하루의 취향이 모여 결국 나는 어떤 색깔의 사람이 되는 걸까? 그 고민 속에 만져진 수많은 마음의 결에 ‘하루의 취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일 내 마음은 또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는 이 취향 덕분에 나다울 수 있었으니까. 근사하지 않아도, 우아하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바로 그 취향이 오늘, 가장 나다운 하루를 살게했으니까.  
- 김민철, <하루의 취향>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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