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버리는 삶을 살 것인가? 제대로 쓰는 삶을 살 것인가?
지난주 금요일, 6월 21일은 제가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으로 참여하고 있는 '성장판 2주년 기념 파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2년 가까이 성장판에서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삶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성장판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성장의 열정을 함께 나누는 “성장판 이글나이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성장판을 통해 읽은 책과 다양한 온/오프 모임 참여를 통한 삶의 변화 스토리를 '이그나이트' 형태로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이그나이트란, '불을 붙이다'라는 의미로 5분 동안 20장의 슬라이드를 넘기면서 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발표 방식입니다. 각 슬라이드는 15초 동안 보이며,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넘겨집니다. 300초의 시간 동안 “누구든지", “어디서나" 자신의 생각과 스토리를 말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 파티입니다.
이그나이트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성장판 온라인 글쓰기를 2기부터 10기까지 참여하며 경험한 변화를 공유하기 위해 참가를 결심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함께 공유했던 내용을 글로 옮겨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시간, 돈, 머리, 에너지, 마음... 여러분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6월 23일이라는 시간도 이미 22시간이 흐르고 이제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교통비를 쓰고,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식비를 썼습니다. 각자의 일터와 생활 속에서 머리와 몸을 쓰며 에너지도 함께 썼겠죠. 뜻하지 않게 마음이 쓰이는 일들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여러분들과 똑같이 이런 것들을 쓰면서, 즉 소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써버리기만 하던 어느 날, 내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내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유독 회사 일이 잘 풀렸던 2017년이었습니다. 매우 바쁘게 한 해가 지나갔죠. 좋은 성과로 회사에서는 박수를 받았지만, 한 해의 끝에는 모든 것을 다 써버리고 껍데기뿐인 제 모습만 남아있더군요.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써버리는 삶이 아닌 제대로 쓰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삶을 제대로 쓰기 위해 글쓰기라는 도구를 선택했고, 페이스북에서 '글쓰기 코칭반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용기 있게 신청했죠. 회사생활 외에 외부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성장판 2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성장판 글쓰기반은 1 기수 당 8주간 운영되는데 총 8개의 글을 모두 쓰게 되면 주당 만원씩 8만 원을 돌려받고, 한 번 빠질 때마다 만원이 깎이게 됩니다. 게다가 돌려받지 못한 금액은 글을 다 쓴 분들이 n분의 1로 나누어 가집니다.
저는 2기에 몇 개의 글을 썼을까요? 겨우 4번밖에 쓰지 못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글을 써보겠다고 시작해놓고, 4번 밖에 쓰지 못한 내 모습도 그랬지만, 저는 참가비 12만 원 중 4만 원 만을 돌려받았는데 8주간 성실히 글을 쓴 분들은 12만 원이 넘는 금액을 받아가셨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글쓰기반 2기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똑같은 시간과 기회, 그리고 참가비를 썼는데 제게 남은 것은 4편의 글과 4만원인 반면에, 다른 분들은 8편의 글과 12만 원이 넘는 돈을 다시 얻었다는 사실에 머리가 띵 했습니다.
그리고, 전 오기가 생겨서 3기에 다시 도전했죠. 제가 정말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2기에 글을 4번밖에 쓰지 못한 후 안 되겠다 포기하지 않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주일에 한 편씩 계속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를 1년 넘게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삶을 제대로 써보려는 노력을 시작하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주 1회 쓴 글이 때론 고슬고슬하고 맛있는 밥이 되기도 하더군요. 글을 쓰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이 제게 일어납니다.
작년 3월, 3전 4기의 도전 끝에 작가로 승인된 브런치라는 플랫폼 안에서 제가 쓴 글을 구독하는 분들이 1100명을 넘어섰습니다. 독자이기만 했던 ㅍㅍㅅㅅ라는 온라인 매거진에 제가 쓴 글이 큐레이션 되면서 필자가 되기도 하고, 많은 글들이 다음 메인에 올라가기도 했고요.
어리숙하고 부족하기만 한 글을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하고, 공유해주신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삶을 써버리기만 했던 제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생긴 삶의 변화를 딱 3가지만 공유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삶이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순간들을 글감으로 건져 올리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라면, 국물, 주변 사람들은 싫어하지만 저는 좋아하는 한 입만 뺏어먹는 것, 이게 뭐라고 여기는 것들의 가치 등… 모든 것이 글감이 되었습니다. 일을 하는 중에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설거지를 하며, 샤워를 하며, 제가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글감들을 건져 올리는 것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이 눈에 보이는 글이라는 형태로 쌓여간다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두 번째, 삶이 더 여유로워졌습니다. 늘 회사일에 허덕이고, 일을 우선으로 살고 있었는데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이것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지난 4월, 작년 말부터 열심히 준비하던 사업이 론칭하기 일주일 전에 무산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괜찮아, 다른 거 하면 되지 뭐”하며 쿨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저에겐 글쓰기라는 나만의 퀘렌시아이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는 대나무 밭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글을 쓰는 것 자체에서도 스트레스는 받습니다.(ㅋㅋ)
마지막으로, 삶을 정말 제대로 살고 싶어 졌습니다. 글쓰기를 하다 보니 삶을 너무 단조롭고 좁게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글 한 편을 써 내려가기엔 제 경험도, 지식도, 감정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늘 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써버리는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제대로 쓰는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