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직딩 Aug 11. 2019

운전면허를 딴 지 16년 만에 잡은 운전대

장롱면허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 드리는 작은 팁


2003년 5월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을 손에 얻은 날입니다


도로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자동차들, 아빠도 하고, 엄마도 하고, 동생도 하는 운전.

저도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기능시험 2번 만에, 도로주행시험 3번 만에 겨우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었습니다. 정말 꾸역꾸역 운전면허를 딴 셈입니다. 그래도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운전은 운동신경과 크게 상관이 없어 보였습니다.


진짜 문제는 운전면허를 딴 이후였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가는 순간, 마치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거리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앞뒤 양옆으로 쌩쌩 달리는 차들 속에서 머리는 하얘지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그동안 받은 교육은 실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저 쪽 라인이 어깨에 오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두 바퀴 반 돌리세요.”

“천천히 뒤로 가다가 저 표지판이 거울에 보이면 핸들을 왼쪽으로 세 바퀴 돌리세요”


도로에는 어깨에 맞출 선도 없었고, 내가 핸들을 몇 바퀴 돌리고 있는지 셀 여유도 없었습니다. 비상시 대신 브레이크를 밟아 주거나, ‘여기서 이렇게 가세요 저렇게 가세요’  말해주는 조수석에 계시던 선생님도 안 계셨고요. 그냥 두렵기만 했습니다.


“나는 운전 못하겠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절대 운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운전=두려운 존재’로 포지셔닝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운전 못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찍었죠.


운전면허증 취득 후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10시간 정도 운전 연수를 받긴 했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딱히 운전을 할 기회도 없었고 필요성도 그다지 느끼지 못해서 운전이라는 존재는 제게서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그렇게 운전면허증은 지갑 속으로 들어가 가끔씩 신분을 확인하는 용도로만 빛을 보았고, 그 사이 운전면허증 갱신도 2번이나 하게 되었죠. 바뀐 건 운전면허증 속 나이 들어가는 제 모습뿐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운전을 합니다.


운전만큼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때는 작년 11월이었습니다. 경기도에서 업무 관련 행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행사장은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콜택시를 불러도 한참이 지나서야 오는 곳이었고요. 행사를 운영하며 쓰레기봉투를 사야 했습니다. 차로 움직이면 간편하게 사 올 수 있었지만, 제 눈에 띄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모두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깟’ 쓰레기봉투를 사러 가기 위해 행사 진행으로 바쁜 다른 직원을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굉장히 무력감이 느껴지더군요. ‘적어도 필요할 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지난 16년 동안 운전을 못해서 불편했던 적이 한 번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고,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그 작은 계기가 저를 운전대 앞으로 불러들인걸 보니 때가 되긴 했나 봅니다.


고수는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운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차가 한대 필요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차 없이 연애하고 결혼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크게 불편한 것도 없고, 차가 필요할 땐 차량 공유 서비스를 활용해서 움직였고요.


작년 6월에 이런 글도 썼네요.


운전을 1도 못하는 제가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차가 꼭 필요했기에 지난 2월 500만 원을 들여 중고 경차 한 대를 장만했습니다.


2019년 5월 18일 처음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2003년 초 운전면허증을 딴 이후 꼭 16년 만입니다.


원래는 비용을 들여 일정 시간 동안 운전 연수를 받으려 했지만, 주말만 시간을 내어 연수를 받기에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남편을 옆에 태우고 일단 집 근처 마트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운전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옆에 탄 남편 덕일까요? 집 앞 마트에서 시작해서 점점 거리를 늘려갔습니다.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친정집도 가보고, 교외로도 나가보았습니다. 퇴근 후에 집에 갔다가 운전 연습을 위해 다시 회사로 와보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운전을 시작한 지 3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자차를 타고 출퇴근도 별 무리 없이 할 만큼 서울 시내 운전도 가능해졌고, 가까운 교외로 나가는 것뿐 아니라 왕복 4시간 거리의 지방에도 다녀올 정도로 익숙하게 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전을 그동안 왜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운전을 하니 좋더군요. (씨익)


먼저 자유롭습니다. 내가 움직이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운전을 해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렇게 큰 자유를 줄지 몰랐습니다.


생활 반경도 넓어졌습니다. 집에서 30분만 차를 타고 나가도 주위에 보이는 풍경이 달라집니다. 서울 서쪽 끝에 살고 있는 저는 주로 파주나 인천, 강화도 쪽으로 드라이브를 갑니다. 카페에서 같은 커피를 마셔도 풍경이 달라지니 기분도 달라지더군요. 서울 근교 맛집도 찾아다녀 봅니다. 삶이 좀 더 풍성해진 기분이 듭니다.


자출(자동차 출근)의 매력도 느꼈습니다. 출근시간 도심으로 차를 가지고 간다는 것은 별로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요즘 같이 더울 때 차를 가지고 출근하니 지옥철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끼어있지 않아도 되고, 출근길 소모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어서 하루가 더 가볍습니다. 독립된 공간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조용히 출근을 하니 마음도 덩달아 차분해집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돈을 쓰게 됩니다. 차량 보험료, 관리비는 물론 주차비와 주유비까지… 기존에 가끔씩 탔던 택시비는 아끼게 되었지만, 결국엔 지출이 커졌습니다. 차가 있으니 쉽게 가지 못했던 곳을 가게 되고,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게 되더군요. 마트에 가더라도 운반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부담 없이 물건들을 카트에 담습니다.  


그리고 몸을 덜 움직이게 됩니다. 단적으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할 경우에 기본적으로 하루에 7,000걸음은 걷게 됩니다. 차로 출퇴근을 한다면 그중 70%는 덜 걷게 됩니다. 예전에는 마트도 산책할 겸 걸어 다녔는데 그마저도 오른발만 까딱까딱 움직이는 것으로 대체되었고요.


장롱면허인 분들께
16년 만에 운전을 하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팁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직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을 못하면서 무슨 조언을 한다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16년의 공백을 깨고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합니다.


운전면허는 땄지만 운전대 앞에 앉기 두려우신 분들

아직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지만 시도해보고자 하시는 분들

초보운전자의 운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계신 분들

누군가에게 운전을 가르치고 계신 분들

옛날 초보시절을 떠올려보고 싶은 분들

가볍게 읽어주세요.



1. 두려움 극복하기


처음 운전을 시작하시는 분들은 운전대 앞에 앉아서 차를 도로로 가지고 나가는 순간의 기분을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약간의 설렘이 섞인 두려움 한 덩어리를 무릎에 얹은 기분 말입니다. 운전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운전하는 것 자체에 공포를 느낀다면 절대 운전할 수 없습니다. 도로는 너무 두려운 곳이지만 일단 차를 몰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처음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갈 때의 두려움, 처음으로 동석자 없이 혼자 차를 운전할 때의 두려움, 그 두려움에 과감하게 부딪혀보세요.


저는 “괜찮아, 침착해, 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운전하곤 합니다.



2. 계속 운전하기


많이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과 경험이 두려움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차선 바꾸기, 핸들 돌리기, 야간 운전, 주차 등은 주행 경험을 쌓으며 자연스럽게 몸에 익을 것입니다.


저 또한 운전을 시작한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때 시부모님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습니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여행하는 3박 4일 내내 드라이버를 자처했습니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제주도의 도로라고 할지라도 4일 내내 500km 정도를 운전했더니 운전 실력이 한층 향상된 듯합니다. 어쩌면 운전 실력보다 용기와 배짱이 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왕초보 며느리가 운전하는 차를 믿고 타주신 시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3. 도로에 관심 갖기


운전은 도로를 타는 행위입니다. 초보운전자가 운전이 더욱 두려운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에는 내비게이션이 잘 되어있어서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초보운전자들은 내비게이션을 봐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200m 후 좌회전이라고 하는데 200m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가다가 내가 탄 차선이 갑자기 없어집니다. 로터리에서 두 번째 출구로 나가라고 하는데 어디가 두 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 휴.


운전을 시작한 이후로 생긴 버릇이 있습니다. 출발하기 전 스마트폰을 이용해 내가 갈 길을 미리 예습합니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어떤 길로 가는지, 어떻게 운전하는지 관심 있게 살펴봅니다. 그리고 내가 운전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시뮬레이션해봅니다. 자주 가는 길이라면 도로를 외웁니다. 가령, 이쯤에서 미리 차선을 변경해두어야 나중에 편하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만약 길을 잘못 들었을 경우 그냥 가세요. 길을 잘못 들었다고 인식하는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행위는 사고를 자처하는 행위입니다. 길을 잘못 드는 것에 대해 절대 조바심을 내지 마세요.



4. 상황을 쪼개기


도로는 무서운 곳입니다. 앞뒤 양옆에서 차들이 쌩쌩 지나갑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경적을 울려댑니다. 그런 도로에서 덩달아 조급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슬로모션으로 상황들을 쪼개서 보세요.


끼어들기는 초보운전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끼어들기를 할 때에도 슬로모션으로 구간을 구분해서 볼 수 있습니다. 깜빡이를 미리 넣고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통해 공간을 확인하고, 여유공간이 생기면 과감하게 핸들을 틀어 차선을 변경합니다. 물론, 말은 쉽습니다. 그러나 ‘끼어들기’라는 상황을 ‘깜빡이 넣기, 공간 확인하기, 공간 사이로 들어가기’와 같이 상황을 쪼개서 한 단계씩 보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도 어디에서 경적소리만 들려도 ‘나한테 하는 건가?’ 싶으며 뜨끔하지만 유리멘탈 초보운전자는 오늘도 차를 몰고 거리로 나갑니다.


대한민국 도로교통법 제2조 25장에 따르면 ‘초보운전자’는 처음 운전면허를 받은 날부터 2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사람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초보운전 시기를 경험해보지 않은 운전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롱면허를 가지신 분들, 초보운전자분들. 용기를 냅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