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 연구는 면담이나 참여 관찰과 같이 깊은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상적인 만남과 연구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둘 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구자는 자신이 연구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연구 상황에 매몰되어 버릴 수도 있고, 연구자의 태도나 여러 상황에 따라 연구참여자를 불편하게 한다거나 비윤리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것이 더 어려운 것은, 질적 연구의 출발 자체가 사실은 연구자와 연구참여자(당시는 연구대상자로 보았을 것이다.)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 즉 식민주의적 환경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오는 차치하고, 1979년 미국 생명의료 및 행동 연구의 대상자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Subjects of Biomedical and Behavioral Research)에서는 더 이상의 피험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벨몬트 보고서(Belmont Report)’를 발표하며 인간 대상의 연구에서의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는 존중의 원리이다. 인간 피험자가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연구에 참여해야 하며 연구 참여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선행의 원리로, 위해를 가하지 말고 발생할 수 있는 위해를 최소화하고 혜택은 최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의의 원리로, 연구의 혜택과 부담이 공평하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가 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질적 연구자의 윤리적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의 특성에 따라서 연구참여자의 자발적 동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나, 연구참여자가 연구참여의 사실을 몰라야만 연구가 의미가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연구참여자에게 위해성이 없다는 점을 현재 시점에서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연구참여자에게 아무리 좋은 점이 주어진다고 보더라도, 연구참여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이 연구자와 완전히 공평하게 주어지도록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다 보면 질적 연구자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 어떤 공격도 받지 않기 위하여 연구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적연구자는 훌륭한 연구자로서 자신에 분야에 있어서 보다 나은 세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연구를 수행해 나갈 의무도 있을 것이다. 일말의 피해도 끼치지 않는 완벽한 연구자가 될 수는 없더라도 최대한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면담자가 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면담자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연구자’라고 Glense(2017)는 말한다. 그러한 연구자는 연구에 학습자로서 임할 수 있게 된다. 가장 낮은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연구참여자들이 나타내는 의미들을 속단하기보다는 그들로부터 더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연구를 통해 연구자는 연구를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는 데에 연구나 연구참여자들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연구참여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추후 연구참여자들이 연구결과에 대해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요’라는 컴플레인을 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겸손한 태도는 감사한 마음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연구를 수행한 후 연구 참여자들에게 반드시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 연구자는 ‘좋은 사람’이기 이전에 ‘연구자’의 입장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는 연구참여자들과 아무리 친밀한 관계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들의 등뒤에서는 학문 시장에서 평가받아야 하는 연구물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Glense(2017)는 ‘우정이 아닌 라포를 발전시켜야 하고 동정이 아닌 열정을, 신념이 아닌 존중, 동일시가 아닌 이해, 사랑이 아닌 존경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무엇을 통해서라도 ‘거리두기’는 꼭 필요하다고 한다. 연구자가 모든 연구참여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필요는 없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연구자는 연구참여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지만 한편으로는 용기 있고 덤덤한 스탠스를 취할 필요도 있다. 다만 어떠한 공격이 혹여라도 있을 때 준비가 된 듯이 순수한 연구의 의도와 최선의 노력을 잘 설명함으로써 부드럽게 수비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Glesne, Corrine(2017). 질적 연구자 되기. 아카데미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