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뮌헨
5월 11일, 일기장을 하루 밀려서 폈다. 그러니까 5월 10일 자 페이지에 쓰고 있는 것. 아우크스부르크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다. 엄마는 혼자서 박물관엘 갔고 나는 숙소에서 좀 더 쉬기로 했다. 혼자의 시간이 주어져 좋았다. 발코니에서 이불을 싸매고 책 필사를 하고 결국 일기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서 쓰기로 했다. 커피를 한 잔 더 내렸다. 숙소에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커피가 있느냐 없느냐가 숙소의 만족감에 차이가 꽤 크다.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일기를 쓰는 데 할애하는 이런 시간은 낭비스럽거나 부담스럽기보다는 오히려 합법적인 휴식을 제공한다.
엊그제는 뮌헨, 어제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있었다.
Immenstadt에서 Augsburg까지는 약 1시간 10분 만에 직행으로 올 수가 있었다. 그래, 이렇게 편리한, 드디어 바이에른이다! 기차도 제 때 오고 기차의 퀄리티나 시설도 더 좋다. 차창 밖에는 동화적인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날씨가 신기하게도 하루는 좋음, 하루는 나쁨의 규칙적인 반복이다. 아우크스부르크역에 도착하니 역사 여기저기가 공사 중이다. 계단만 있던 역에 에스컬레이터도 설치하고 있었다. 동네가 많이 발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겨우 역에서 숙소 가는 길 정도만 오갔는데, 공사 중이거나 혹은 7년 전에는 없던 새로 생긴 미국식 카페(스타벅스)와 쇼핑몰이 즐비했다.
숙소는 환상적이었다. 호스트에게 양해를 구해 일찍 체크인도 했다. 방이 너무 예쁘고 뷰도 좋아 또 감탄을 연발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숙소를 고를 때 주 관심사는 "뷰"였다보다. 눈에 담기는 것에 뭐 그리 집착했는지. 그러나 만족감이 참 크기는 하다. 나는 여행 중에 방 안에서의 시간도 즐기고 싶기 때문에. 그런데 방만 예뻐서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방 안에서도 이 도시를, 그리고 자연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욕심쟁이 집순이의 기질은 이렇게 여행 중에도 발현되나 보다.
바이에른 티켓을 끊은 김에 짐만 두고 바로 뮌헨으로 향했다. 시골마을에 있다가 문명 내지는 속세로 향하니 그것은 내게 시원한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나는 어느새 어쩔 수 없는 도시 여자가 다 된 걸까.
가장 먼저 빅토리아 시장(Viktualienmarkt)에 가서 하얀 소시지와 프레첼(Weisswurt mit Brezeln), 그리고 카레소시지와 감자튀김(currywurst mit Pommes)을 먹었다. 왠지 그 시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또 가고 싶었다. 아마도 내가 7년 전에 이곳에 와서 무언가를 가장 먼저 사 먹었던 곳이었던 것 같다. 시장에서 엄마는 원하던, 이곳 시장 분위기에 어울리는 라탄 장바구니도 구입했다.
다음으로는 전혜린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뮌헨을 여정세서 뺄까, 하다가 빼지 않았던 것은 전혜린에 대한 나의 예의였다. 그녀의 흔적은 슈바빙(Schwabing) 지역에 있다. 전혜린을 모르던 당시 나는 뮌헨에 무려 한 달간을 머물면서도 그곳에 갈 생각을 안 했다. 오데온 광장(Odeon Platz)에서 레오폴드(Leopold) 가를 쭉 따라가는 길. 넓은 길을 따라 권위 있어 보이는 건물들이 질서 있게 이어지고 그 건물들에는 대학 강의실, 연구실, 도서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뒤쪽으로는 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학생들이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공부를 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의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마리엔 광장(Marien Platz)에는 노인들과 관광객들이 주로 있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찬란해 보이는 젊은 눈동자들과 살짝씩은 조급해 보이는 발걸음들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어떤 블로거의 말을 빌리자면 뮌헨 사람들이 관광객들을 마리엔 광장으로 몰아내어 놓고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곳이 바로 이 슈바빙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그곳은 아무리 해가 쨍쨍했어도 어딘가 시원한 느낌이었다.
발이 아파 중간에 버스를 탔다. 버스는 영국공원을 가로질렀는데, 영국과의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조성된' 정원이 영국식이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잔디와 물가에서 생의 고단함들을 씻어내고 있었다.
공원 가까이에 이름 그대로인 ‘제에로제(Seerose)’ 음식점이 나왔다. 구글에 불친절 후기가 꽤 있어 좀 긴장을 했지만 우리에겐 괜찮은 편이었다. 전 좌석 예약이 되어 있다며 우리에게 ‘마실 것’으로만 30분의 시간만을 허락해 주었다. 녹슨 의자들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전혜린도 여기에 앉았을까? 주택 골목가에 자리하여 자리에 앉아 주변 주택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느 방에 머물렀을까? 그녀가 몹시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의 생이 그녀의 마음에 드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녀의 책은 아니지만(원래는 그녀의 책을 여행 중에 읽으려 했지만 여행에 채 오기도 전에 다 읽어버린 탓에) 얼마간 책을 읽었다. 예약석을 비워준 데에 대한 보답으로 팁을 주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레오폴드가를 걸었다.
걷다가 ‘예술과 놀이(Kunst und Spiel)’이라는 가게에서 예쁜 동화 모티브의 엽서 세트를 하나 구입했다. 첫 기념품이다.
생기 넘치는 학생들의 뺨. 수업이 끝나고 모두 거리로 나왔나 보다. 끝없이 펼쳐지는 노천카페에 혼자, 혹은 여럿이 앉은 사람들. 세련된 옷차림이 성실한 하루를 보냈음을 나타내주었다. 그들은 누구도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열심히 토론을 하거나 사색을 했다. ‘수다를 떨거나 멍을 때렸다’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심각한 표정에 있다. 그들은 대화를 많이 하지만 좀처럼 ‘박수를 치며 깔깔거리지’는 않는다. 그들의 토론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어쩔 수 없는 관광객이기에 그곳에 동화되지는 못하고 그렇게 구경만 하고 부러워만 하다가 관광객에게 허락된 자리인 마리엔 광장으로 돌아왔다. 호프브로이(Hofbräu)는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땐 그냥 그곳밖에 몰랐어서 몇 번 왔었다. 그냥 추억의 자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왜 그랬는지 인터넷이 없는 시대도 아니었음에도 좀처럼 ‘검색’이라는 건 잘하지 않고, 여행책자 한 권을 아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1년 간 곱씹었다. 여행책자에서 소개하는 곳은 단연 호프브로이. 그러나 당시 나는 혼자 어디 앉아 맥주 한 잔 할 용기도 없었다. 아마 그래서 선택한 곳이 ‘혼밥레벨’의 하수 격인 빅투알리엔 시장이었던 것일 거고, 어학원에서 친구를 한 명 사귀자마자 나는 걔한테 호프브로이에 함께 가자고 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우리 가족이 방문했을 때 호프브로이에 자리가 없어 대신 앉았던 식당도 그대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