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으로 착한 딸만 될 수 있다면

(7) 아우크스부르크

by Lanie

하루 종일 수영장에서 놀고 온 날 잠을 자기 위해 누워 눈을 감으면 물속에 있는 것처럼 울렁울렁하다.


네 번째 도시, 아우크스부르크는 개인적으로 그 울렁울렁함으로 남아버린, "어느 날 밤의 꿈"으로 되어버린 도시이다.


누구나 자기 머릿속에 스쳐 다니는 어렴풋한 꿈과 기억의 그림들, 영상들이 있을 것이다. 정말로 꿈을 꾸었던 것이거나, (진짜 기억인 건지, 남아 있는 사진이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재구성한 것을 기억으로 착각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나, 현실에서 지속될 수 없없던 일탈이나 모험, 책과 영화 등에서 비롯한 상상의 장면들. 이들의 속성은 거의 유사한 것 같다. (이루고 싶은) 꿈이란, 결국 이 어렴풋한 (간밤에 꾼) 꿈과 같은 영상들을 현실로 가져오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그래서 (간밤에 꾼) 꿈과 (이루고 싶은) 꿈은 동음이의어가 아니라 동음동의어이다. 전 세계적으로. 각각이 Dream과 Dream이고 또 독일어로는 Traum과 Traum이 아닌가.


아우크스부르크는 내가 교환학생으로 1년을 살았던 도시이다. 교환학생은 이 시대 대학생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 같은 시기가 아닐까. 현실에서 벗어나 이방인으로서의 자유를 꽤 장기간 사회문화적으로 합법적으로 보낼 수 있는 시기. "학교"라는 공식 기관에 소속이 되어 안정과 보호를 보장받으면서 "학생"이라는 신분과 정체성도 부여받았지만 그 생활이라고는 사실상 학업보다는 여행과 문화체험에 치중된.


그렇게 나는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 그 꿈속에 다시 한번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실로 큰 축복이라고 생각되었다.


학기 중이라 정오부터 오후 3시(한국 시간으로 저녁 7-9시)에는 온라인으로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탐방은 오전과 오후 3시 이후, 이렇게 2차례로 나누어하게 되었다. 오전엔 대학과 기숙사, 오후에는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를 탈까도 했으나 어김없이(‘하루 쨍, 하루 비’의 그간의 규칙에 맞추어) 비가 왔고 나는 칙칙한 바람막이를 입고 나가 시내 교통 종일권을 끊었다.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은 그대로였다. 나는 학생 카페테리아에서 내가 좋아하던 요거트를 먹고 싶었는데 그건 없었고 비슷한 것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거기서는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학생증에 돈을 충전하고 학생증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가능이란 없는 한국 아주머니인 우리 엄마는 나에게 카페테리아 아주머니와 딜을 하도록 했다.


나는 정녕 학생증으로만 구입이 가능한지 물었다.

“학생증으로만 구입할 수 있나요(Kann man mur mit der Studentenkarte kaufen)?”

답은 당연히 “그렇지(Ja).”


“안 된대!”

“그래도 다시 물어봐 현금되냐고.”


약간의 민망함을 참고 다시 물었다.

“현금으로는 지불할 수 없나요(Kann man nicht mit dem Bar bezahlen)?”

“너 학생이 아니니(Bist du nicht Studentin)?”

“학생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Ich war, aber jetzt nicht).”

“그런데 내가 현금이 없어서 거스름돈을 줄 수 없어. 큰돈을 주면 안 되고 작은 돈을 맞춰 주면 돼.(이런 긴 문장은 원어로 기억할 수 없음.)”


나 혼자라면 못했겠지만 엄마의 부추김에 성공했다. 동전을 털어 가격을 정확히 맞춰 요거트와 쿠스쿠스샐러드를 샀고 아주머니는 자신의 직원증으로 결제를 해 준 뒤 우리의 현금을 가져갔다. 덕분에 아침을 원하던 곳에서 잘 먹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캠퍼스를 산책하는데 갑자기 스스로가 한심하게 생각되었다.(나는 이런 생각을 꽤 자주 하는 편이다.) 한창 앞으로 치고 나아가야 할 시기에 과거 추억팔이나 하고 있다니. 게다가 이런 생각에 동의를 얻을 것이 두려워 입밖으로는 꺼내지 않고 있는 참에, 엄마가 내가 20대를 성찰하고 있노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그때 그 장소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여기서는 누구와 무얼 했는지 계속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더 튀어 오르기 위해 또 무릎을 살짝 굽히러 온 것이라고. 스물아홉을 맞이해 지난 20대를 반성하고 성찰하고 있노라고. 그때는 참으로 바보 같고 어린애였지. 그러나 그래서 무모했고 더 도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떨까?


학생증으로만 사먹을 수 있는 학교 카페테리아의 요거트와 쿠스쿠스 샐러드, 당시 수업을 (날로) 들었던 학교 건물


캠퍼스를 다 보고 살았던 기숙사도 한 번 찍고 근처에 자주 가던 아주 저렴한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다. 아니, 그전에 엄마 화장실 찾아주느라 아주 곤란을 겪은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굳게 닫힌 (주민이 아니면 입장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은) 기숙사 관리실도 열어보고, 근처 베이커리에 가서 “죄송하지만 화장실 좀 사용할 수 있을까요(Entschuldigung, Können wor Toiletten benutzen)?”를 묻고, “아니, 여긴 화장실이 없는걸(Nein, gibt es keinen).”이라는 답을 듣고, 옆 마트에서도 물어보니 처음엔 “개인용(Privat)”이라서 안 된다고 하더니, 그럼 돈이라도 내겠다고 하니 이번엔 갑자기 또 "코로나"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히, 건물 앞에 도로공사하는 곳에 공사 일하는 분들이 쓰시는 이동식 화장실이 하나 놓여있었는데, 구세주처럼 그 문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엄마… 유럽 거리 한복판에서 노모의 화장실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꽤나 곤란한 일이었다. ‘밥 찾지 않는’ 아빠를 두고 와 꽤 편한 여행이겠거니 했는데 여행을 데리고 다니기 좋으려면 ‘아무 때나 화장실을 찾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속 조건이 또 추가되었다.


물론, 이런 것은 지나가는 생각이고, 그런 것들 까지도 잘 챙겨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녀야지.


마렵지 않다는 어린아이에게 화장실이 있을 때마다 꼭 보내는 것처럼 화장실이 눈앞에 보일 때마다 꼭 엄마에게 다녀오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걷기 시작할 때 활발해지는 장운동 때문에 결국은 또 거리 한복판에서 화장실을 찾을 것이라는 거다.)


코로나 어쩌고 하며 화장실을 내주지 않은 점원이 미워서 그 마트에서 장을 안 보려 하다가 그럼 괜히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굴하지 않고 장을 보고 나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라면을 대충 끓여 먹고 온라인 수업에 접속했다. 요새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친한 두 동료들과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 카카오톡으로 수업에 대한 실시간 중계를 하며 수업을 듣곤 하는데 수업을 무사히 들은 것과, 교수님께서 내게 말을 시키지 않으신 것과, 또 동료들과의 중계 수다가 오전에 괜히 불편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내가 수업을 듣는 동안 엄마에게 혼자서 탐방을 하라고 했었는데 엄마는 드르릉 드르릉 낮잠을 잘도 잤다.


엄마와의 단 둘의 여행이 길어지면서 나는 나의 못됨을 점차 실감하고 있다. 왜 더 상냥하고 온화하고 친절하지 못한 지. 현지인들에게 막무가내인 동양인으로 보이기 싫어 많은 질문을 하지 않는 내게 엄마는 이것저것을 다 물어봐달라며 요구하는데, 사실 내가 이렇게 독일어로 이것저것을 질문할 수 있는 것도 다 엄마 덕분이 아닌가. 짐을 싸서 나가는데 남은 우유를 버리지 않고 빈 페트병에 담아서 가져간다는 엄마에게 또 신경질을 냈었다. 정말이지 더 혼나야 하는 못될 딸. 아직 10일 정도가 더 남아 다행이다. 남은 시간에는 점점 더 친절한 딸이 되기를. 그것 하나만 잘해도, 이 여행으로 내가 좋은 딸만 될 수 있다면 돈도 시간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큼 또 가치 있는 것이 없을 테니.


수업을 끝내고 빗속을 뚫고 다시 아우크스부르크 시내를 탐방하러 나섰다. 내가 들르던 가게들과 매주 다니던 교회가 보였다. 자주 들르던 가게 중 하나에서 예쁜 가방을 샀다. 너무 마음에 들고 가격도 저렴해서 엄마 것, 내 것을 노란색, 빨간색으로 커플로 하나씩 샀다. 가장 가고 싶던 식당은 문을 닫았고, 두 번째로 가고 싶던 시청식당(Ratskeller)에서 슈바인학세(Swchweinshaxe)를 먹었다. 짜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하고 세련되어 좋은 식당이다. 무식한 고깃덩어리를 앞에 두고 손에는 맥주를 들고 신나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얼굴엔 피곤이 묻어 있었다.


비오는 날의 아우크스부르크 시내
아우크스부르크의 시청 식당의 맥주와 슈바인학세. 왠지 피곤이 묻어 있는 셀카.


생각보다 글도 덜 쓰고 책도 덜 읽고 공부도 안 하고 열심히 돌아만 다니고 있다.


아우크르부르크에서는 왠지 저녁을 먹고 바로 숙소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매주 새로운 바에서 모임(Stammtisch)이 열리던 (그 바들이 어디 어디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없다. 지금이라면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을 사용해 열심히 기록해 놓을 텐데.) 때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2차로 바에 들어갔다. (사실은 또 엄마가 화장실을 찾아서 눈 앞의 가게에 들어가야만 하기도 했다.) 일찍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오니 센티 해졌다보다”고 했다. 들어간 바는 이탈리안 바였고 아페롤(Aperol)을 한 잔 주문했다. 결혼식 때도 준 그 오렌지색 음료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뮌헨 거리에서도 그 바에서도 다들 그걸 마시고 있어 요새 이 동네에서 유행인가 보다 했다. 웨이터에게 이름을 물어본 대가로 음료에 대한 후기도 남겨주어야 했다. “좋아요(Gut)!”


짐을 줄이기 위해 읽고 있던 내 소유의 책을 숙소 로비에 있는 책교환장(Buchtaschschrank)에 놓고 가기로 하여 자기 전에 책을 다 읽어버렸다. 필사는 다음 날로 미루고.


다음날 오후 2시 20분에 프라하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호스트에게 오후 1시까지 늦은 체크아웃을 부탁하여 (그의 친절에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과 엽서를 남겨두고 왔다.) 여유롭게 일기를 쓰다 중간에 쉬며 짐정리를 다 하고 이어서, 비가 쏟아지는 밖을 보며, 저 비를 뚫고 이 즘을 다 들고 또 어찌 가지, 하며 아우크스부르크에서의 일기를 마무리했다.


늦은 체크아웃으로 여유로운 마무리와 호스트에게 전하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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