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프라하는 어디에

(8) 프라하

by Lanie

5월 13일. 저녁 5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프라하까지 가던 날로부터 오늘, 프라하에서 나와 드레스덴에 들러 친구들을 만난 후 다시 기차를 타고 뉘른베르크로 가는 기차 안에서 다시 일기장을 폈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6시간 버스를 타고 달리면 프라하에 갈 수 있다. 밤버스가 아니라 내내 잠을 잘 수는 없었지만 가만히 있기도 하며 대화도 하며 가다 보니 6시간이 생각보다 괜찮게 흘렀다. 국경을 넘어오니 공산주의를 나타내는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는 차가 좋은 건지, 도로가 좋은 건지 독서를 해도 멀미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의 도착했을 때 알게 되었다.


프라하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우버 택시를 시도했다. 독일의 1/3~1/4 정도의 가격에 매우 편리한 교통수단이었다.


호텔, 아니 여행자 아파트에 내려 안내된 대로 체크인을 했다. 아기자기한 줄리엣 발코니가 있으며 거실까지 구비된, 독일에서와 비슷한 가격대였으나 훨씬 큰, 훌륭한 숙소였다. 나는 발코니에서 보이는 저녁 풍경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짐도 풀기 전에 삼각대를 가지고 발코니로 나가 사진을 찍어댔다. 바로 건너편에는 유대교 예배당이 있었는데, 어느 학생들 그룹이 가이드와 함께 그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밤마다 탈출을 시도하였는데 그 와중에 많이 죽어 아침만 되면 그 거리에 시체가 즐비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적으니 무시무시한데 어쨌든 학생들이 밤 투어를 하는 장면은 낭만적이게 보였다.


줄리엣 발코니에서 나와 엄마, 학생 투어 그룹


프라하에서 2박을 했지만 프라하를 즐긴 건 겨우 하루이다. 그런데 마치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은 것처럼 긴 하루를 보냈다.


엄마와 나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침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7시쯤 카를 교에 갔다.


나는 7년 전 밤버스를 타고 프라하에 도착해 마주했던 그 아침의 카를교 풍경을 기억한다. 새벽 5-6시쯤이었던 것 같다. 숙소 체크인 시간은 멀었고, 만나기로 한 친구가 올 시간도 멀었고, 연 카페도 없고, 나는 갈 곳이 없어 일단 제일 유명한 카를 교로 갔었다. 참 어리고 무모했을 때이다. 어떻게 무얼 찾아서 어딜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나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그 흔적을 찾고 싶었지만 막상 그러려고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프라하에서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왠지 수도원과 포도밭인데. 수도원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수녀가 돼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곳을, 내 기억 속의 그 풍경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디엘 갔던 것일까? 무심코 들어갔던 바(bar). 초코술을 마셨고 피아노 라이브 연주가 있었는데. 그건 어디었을까? 요즘에는 들렀던 곳마다 구글 지도애 다 표시를 해놓고 있는데, 그땐 그런 것도 할 줄 몰랐다.


아침 산책을 하며 Atm에서 2000 코루나를 뽑고, 일찍 연 슈퍼마켓에서 아침 거리를 샀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발코니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짐을 쌌다. 프라하에서 원래 1박만 하려고 했었는데 2박을 하게 되었고, 처음 예약한 숙소는 취소도 연장도 안 되어하는 수 없이 2박을 각각 다른 숙소를 잡아야 했다.


프라하 아침 산책


“짐을 싸고, 새로운 숙소를 낯선 길에서 찾고, 다시 짐을 풀고, 새로운 와이파이를 입력하는 데 이젠 지쳤다.”라는 최민석 에세이의 대목이 공감되었다.


다시 택시를 불러 새로운 숙소(라고 생각했던 곳)에 내렸고, 미리 짐을 맡길 수 없다는 걸 알고 근처 짐 맡기는 곳에 돈을 주고 짐을 맡겼다. 독일은 그렇다 해도 프라하, 이 체코라는 곳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이 철저히 관광객의 입장이라 가이드투어를 예약하여 만남 장소인 국립박물관 앞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오페라 극장이 있었는데, 아주 즉흥적으로 오늘 저녁에 공연이 있는지 묻고 바로 발레 공연도 하나 예매해 두었다.


우리와 함께 브라질에서 온 물리학(그러나 역사에 매료된) 학생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나는 가이드의 영어 역사 설명을 엄마에게 모두 통역해주어야 했는데, ‘아, 한국인 가이드도 있을 텐데 한국어 버전을 할 걸’ 하는 생각과 함께 몇 시간 만에 영어공부와 역사공부를 너무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의 피로는 이때 제대로 몰려왔나 보다. 그래도 가이드 아저씨 덕분에 엄마와 둘이 나온 사진도 비로소 얻기도 했다.


역사 마니아에게만 추천하는 프라하 가이드 아저씨/비로소 얻은 둘이 나온 사진

가이드가 추천해 준 식당에서 돼지고기 김치찜(양배추 굴라쉬)을 빵과 함께 먹고, 프라하 성엘 올랐다. 디저트로 굴뚝빵도 사 먹었는데 그것조차 나의 추억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화려하고 비싸졌다. 7년 전에는 딱 빵만 파는 곳이 많았으며, 그 빵의 따뜻함과 쫀득함 자체가 맛있었는데, 지금은 아이스크림과 이런저런 토핑이 과도하게 올라가 있으며 그만큼 가격도 비싸지고 빵은 맛이 없어졌다. 실망한 굴뚝빵에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빵과 함께 먹는 돼지고기 김치찜(양배추 굴라쉬)와 너무 화려해져 실망한 굴뚝빵


힘들었지만 그래도 프라하성까지만 딱 올라갔다가 숙소로 가기로 했다. 프라하성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름답기는 했지만 뭐랄까 기억 속의 나의 프라하는 아니었기에, 그리 인상 깊진 않았고 걸음 수만 쌓였다.


그렇게 숙소(라고 생각했던 곳)에 발레 공연 전 낮잠을 잘 요량으로 갔는데, 글쎄 숙소까지도 내가 생각했던 곳이 아니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savor apartment라는 곳이었다. 구글에 savor apartment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숙소의 이름일 뿐이고 주소는 다른 곳이었다. 피곤의 절정의 순간이었다. 내일 버스를 탈 중앙역 바로 옆이길래 일부러 부른 곳이었는데, 바로 앞에 오페라 극장이 있어 좋아했었는데…


화를 누르며 다시 택시를 불러 숙소로 갔다. 그렇게 짐을 싸고 풀고 숙소를 옮겨가는 데에 지쳐갈 때쯤, 그냥 뉘른베르크의 프란치네 쭉 있으면서 아우크스부르크, 뮌헨, 프라하, 드레스덴을 한 번씩 다녀올걸, 싶었다. 여행엔 두 방법이 있을 것이다. 동선에 따라 숙소를 옮겨 다니는 것과, 숙소는 한 곳에 정하고 하루하루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는 것. 이동시간만 생각한다면 전자가 나을 것 같지만 짐이 많고 뚜벅이라면 후자가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매일같이 17박 18일짜리 짐을 풀고 싸고를 반복하며 또 그 짐을 이고 지고 대중교통을 타는 것보다는 짐운반은 최소로 하고, 가벼운 몸으로 기차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유럽 여행이라면 이제 고단수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으로 치면 4번째이고 1년 거주하기도 하였으니. 그러나 기존에 2번의 여행은 한 번은 패키지였고, 한 번도 단체 여행으로 렌트를 해서 다녔으며, 내 기숙사가 여기 있을 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얘기였던 것이다. 이런 식의 여행은 또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런 현명한 여행은 하는 수 없이 다음으로. 또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또 새 숙소에서 30분 정도를 쉬고 발레 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라 실피드>라는 공연이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인테리어는 매우 고풍스러웠으나 그에 비해 목가적인 배경의 스토리와 여학생들끼리 놀러 온듯한 관객들 덕에 편안한 느낌이었다. 엄마는 중간중간 눈을 감았다. 엄마도 내색하는 것보다 사실은 더 힘들 수도 있겠지. 발레 공연을 본 것이 조금 휴식이 되었는지 피곤이 좀 가셨다. 택시 대신 살살 숙소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래도 프라하 안에서는 30분 내면 어디든 걸어갈 수 있기는 하다. 프라하 거리가 독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밤늦게까지 운영하는 구멍가게들이 주거지 곳곳에 있다는 점일 거다. 지나가다 보인 슈퍼에 들러 물과 요거트와 조식으로 먹을 라면을 샀다. 그리고 정말 “꿀잠”에 들었다.


오페라 극장에서의 발레 공연으로 마무리한 프라하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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