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드레스덴
이동이 많은 날이었으나 덕분에 많이 쉴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전날 밤 우연히 들어간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마트에서 발견하여 홀린 듯 산 신라면을 조식으로 먹고, 다시 짐을 싸고, 옷과 신발과 가방을 편안하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섰다. 택시를 잡을까 하다가 대기 시간이 길어 살살 걸어가 보기로 했다. 엄마는 가방을 잘못 선택했다고 잔소리를 슬슬 하며…
프라하의 마지막 공기를 마시며 중앙역으로 갔다. 버스 타는 위치를 점찍어 놓고,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하고, 번갈아 화장실도 다녀오고. 나는 남은 코루나를 털어 선물용 샴페인 하나, 휴대용 핸드크림 하나, (그렇게 맛있을지 몰랐던) 까눌레 2개를 샀다. 시간에 맞게 버스가 왔고 우리의 자리는 2층이었다. 체코의 마지막 풍경-정돈되지 않은 유럽 풍경 및 공산주의 건물들, 독일엔 좀처럼 없는 경사진 언덕들-을 감상하며 독일로 돌아갔다.
드레스덴에 내려 중앙역의 짐 맡기는 곳에 짐을 넣고 있을 때 Fatima가 왔다. 이 친구도 교환학생 시절 사귄 친구였다. 그때 우리는 나를 포함해 중국, 터키, 가봉, 이탈리아 출신의 5명의 여학생이서 꽤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리 연락을 활발히 하지는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친구를 다시 만날 거라는 기대감은 이번 유럽 여행을 준비하며 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친구가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나의 유럽 방문 사실을 단체 메신저 그룹에 남기기는 했는데, 나의 여행 일정을 먼저 알려 주고 그 일정 내에서 혹시 만날 수 있으면 만나자는 식이었다. 그런데 Fatima는 가장 적극적으로 나를 만나려고 한 것이다. 그 사이에 어린 딸도 한 명 있었고, 지금 드레스덴에서 살고 있는데 그 아기를 데리고 뉘른베르크에 와서라도 나를 만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다 나는 친구가 뉘른베르크로 오는 것보다 내가 드레스덴에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프라하 1박을 뒤늦게 추가한 것이었다.
나는 Fatima를 만나기로 한 뒤 그녀의 SNS를 다시 유심히 살폈다. 알고 보니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원의 대학교에도 예전에 어떤 프로그램으로 왔었고, 지금은 코치로 일하고 있는 등 나와의 공통분모가 꽤 있었다. 덕분에 우린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국적도 문화도 다른 곳에서 20대의 중후반을 보냈지만, 학부를 졸업하고 지금의 일이나 생활을 찾기까지 유사한 어둠과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지난 1년 간 학교 코칭 센터에서 일했던 덕에 코칭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수월했다.
좋은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중간에 친구의 남편이 딸을 데리고 왔고, 식사를 마칠 즈음 Olivia라는 네덜란드 남편과 결혼해서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는 중국 친구도 네덜란드에서 왔다. 7년 만에 보지만 똑같은 얼굴과 말투와 목소리. 그간의 삶의 변화들과 또 앞으로 나아갈 길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친구는 그래도 여기까지 온 우리를 위해 멋진 드레스덴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날씨나 시위대가 도와주질 않아 민망해했는데, 드레스덴의 멋진 풍경이라든지 시위 현장은 그날만큼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드레스덴에 머문 것은 4시간 남짓.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는 다음에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뉘른베르크로 향했다.
여행 덕분에 참 오랜만에 연락이 닿는 친구들이 있다. 그 당시의 추억을 함께 공유하는. 그러나 그 이후로는 서로를 기억하는지, 궁금해하는지, 인연을 유지할 의향이 있는지 솔직히 알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