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세계에서 말하는 '잘못된 교육'에 대하여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의 교육과정 이론들이 앞서 교육과정 이론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한 바와 같은 역할을 충실히 해왔는가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지금까지 교육과정 이론으로 알려져 있는 여러 이론들을 서로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하여도 각각 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다르다. 교육과정 자체의 정의도 각각 다른 듯하며 교육과정이 포괄하고 있는 범위와 대상 또한 각각 다른 듯하다. 교육 내용을 포함한 전체적인 교육 계획으로서의 교육과정(curriculum)인지, 교실 안에서 그야말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process)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다루고 있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육과정 이론과 이론화는 아직 형성적인 단계에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아직 교육과정 이론 및 이론화와 다른 형태의 저술을 구별 지어줄 만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산뜻한 준거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단지 소수의 사려 깊고 존경받는 전문가들이 이론을 만들고, 이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과정 이론이 존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실정이다(Mcdonald, 1975).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많은 교육과정 이론가들은 여전히 활동 중에 있기도 하다. (그들이 죽기 전 뭐라고 다른 소리를 할지 모른다...)
충분하고 포괄적인 교육과정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지금까지의 이론 개발에의 노력이 교실 실제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Klein, 1992)에서 교육과정학자들은 교육과정 이론이 교육과정 탐구를 위한 기초가 된다는 것 자체를 불신하기도 하였다(Fox, 1985). 이에 대해 교육과정학은 이론적인 분야가 아니라 실제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이론적 학문들이 추구하는 지식과 그 성격 자체가 달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교육과정 이론은 실제로부터 추상화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실제나 맥락 속에서 그에 적합한 지식을 추구하는 이론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소경희, 1997).
일부 교육과정학자들은 학교 교육프로그램은 누가 만들어도 만든다며, 교육학자나 교육과정학자는 그러한 실제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릴 필요나 여유가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의도는 다르지만 교육과정학 연구가 학교라는 제도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학교의 문제를 '고치는(fix)' 것도 아니며, 학교의 잘못됨에 대하여 교육과정학 이론가들이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도 한다. 정치적 혼란이 정치학의 책임이라면 정치학과는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며, 경제 불황 현상에 대하여 경제학이 책임을 져야 하다면 학과 폐쇄는 결코 충분한 처벌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분야는 결코 생활세계에서 말하는 '잘못된 교육'에 대하여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교육'이란 수천 가지의 변덕스러운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잘못을 고치는 데에 '교육학'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참으로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교육과정 분야에서 이론과 실제 간의 괴리 문제는 항구적인 논의 주제였으며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과정 이론 형성에 가담해 왔다(소경희, 1997). 물론 교육과정 이론과 실제 교육 현장 간의 차이나 갈등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원인에 기인한다. 첫째, 이론적 이상과 현실의 제약이다. 교육과정 이론은 이상적인 교육목표를 제시하지만, 자원 부족이나 정책적 제약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은 이상적 이론의 적용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교육 환경, 교사, 학습자의 다양성이다. 교육과정 이론은 일반적인 원리와 원칙을 다르기 때문에 특정 교육 환경이나 학습자 그룹에 특화된 요소를 고려하지 못할 수 있다. 즉, 다양한 교육 환경에서 적용 가능한 유연성이 부족할 수 있다. 또한 교육과정 이론은 효과적인 교사의 역할과 전문성을 가정하지만, 현실에서 각 교사의 전문성과 열의에는 격차가 존재하며, 따라서 동일한 교육과정 이론이라 할지라도 교사별로 그 이해와 적용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셋째, 기술의 발전과 사회 변화의 문제이다. 교육과정 이론은 일정 기간 동안 유효할 수 있으나,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육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이로 인한 이론과 현실 간의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교육과정 이론의 개발은 실제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고려해 보면 교육과정 분야에서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좋은 이론은 좋은 실천을 낳고, 뛰어난 실천은 뛰어난 이론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 교육과정의 학문적 탐구와 현장의 실천이 하나가 될 수 있음에 대한 이상적 희망을 버리지 않고, 또한 실제로 병행해 본 교육자들의 증언이다. 교육과정 이론을 알면서 적용력이 없으면 이론가에 머물고, 적용력은 있어도 이론을 모르면 기술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깊이 있는 이론은 현장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홍후조 외,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