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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Jun 19. 2024

데이트가 귀찮아서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그와는 고생하는 것도 좋았다. 고생하는 순간마저 그는 그 순간을 즐길 줄 알았다. 우리는 사소한 고생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당황스러운 순간들도 새롭게 해석하며 웃어넘길 수 있었다.


어느덧 그를 만난 지 6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슬플" 지경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나를 만나는 것이, 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슴 설렌다고 말했다.


월화수목금을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며 열심히 보냈다. 토요일이 그나마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하는 날인데, 주중을 보내고 피곤해진 나머지 나는 여느 때보다 편한 옷차림으로 그를 만나곤 했다. 사실 말이 데이트지 대부분 카페에서 대학원 과제 등 할 일을 해야 했다. 챙길 것도 많아 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고 데이트를 하러 갔다. 그러다 그만 카페를 찾아다니는 게 귀찮게 느껴졌다. 어떤 카페는 의자가 불편했고, 어떤 카페는 너무 추웠으며, 그나마 편안하게 있을 만한 카페는 자리 잡기가 힘들었다. 나는 정말이지 데이트가 귀찮아서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게다가 그는 데이트가 끝나면, 데이트뿐만이 아니라 내가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10시에 대학원 수업이 끝나면 매일을 본인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인 우리 집에 나를 단 하루도 빠짐없이 데려다주곤 했는데, 물론 한 번도 그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그가 데려다준 집이 "우리"의 집이라면 그도 훨씬 덜 고생하지 않을까.


이력서를 한 줄을 채우려고 버티는 직장과 요즘따라 집 같지 않은 집, 부모와의 묘한 갈등 속의 삶에서 그래도 내게 행복 그 자체인 사람이 있었다. 말 그대로 못돼 처먹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내게 해줬던 사랑의 말들이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젠 그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삶의 시간이 그와의 시간과 그와 없는 시간이 마치 다른 차원처럼 느껴졌다. 그와의 시간은 환상이고 그가 없는 시간은 현실이어서, 그와의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꿈이 되었다.


결혼만이 답 같았다. 그러나 그것을 허락받는 과정이 가장 두려운 일로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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