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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스펜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by Lanie

우리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를 교육과정 및 교육과정학의 창시자로 칭한다. 교육과정의 기본 질문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이고, 스펜서가 바로 교육이 대중화된 시점에서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원래 체계적인 교육은 모두의 것이 아니라 일부 귀족층을 위한 것이었다. 대중들의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스펜서는 교육해야 할 영역을 3가지 영역으로 나눈다. 지(知), 덕(德), 그리고 체(體)이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올바른 성품을 지니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통해 비로소 온전한 생활(complete living)을 누릴 수 있다. 교육은 모든 사람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인지적 교육에 있어서 스펜서는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의 교육법을 옹호하였다. 어린아이의 정신의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페스탈로치식 교육을 표방하는 학교가 막상 성공적이지는 않다고 하였는데, 페스탈로치의 교육법은 교육 수단으로써,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교육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도덕적 교육에 있어서 스펜서는 부모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말고 자연의 대응에 따라 도덕성이 발달하게끔 두라고 한다. 부모의 개입은 감정적이고 일관성이 없으나 자연의 대응은 일관되고 공정하다는 것이다. 만약 부모가 개입하려면 성품이 완전한 부모의 대응이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한마디로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부모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때 아이는 자연의 공정한 벌칙에 따라 올바른 도덕성을 지니고 성장할 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가 유쾌해지고 돈독해짐으로써 좋은 성품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한다.


건강한 생활에 있어서, 현대인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건강을 유독 챙기고 자주 씻고, 연례행사로 여행도 떠나며 발달된 의학의 혜택도 누리고 있는데 우리의 몸은 도리어 점차 유약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스펜서는 직장의 과중한 정신노동을 꼽는다. 우리의 삶은 압박당하고 우리가 느끼는 중압감은 점차 가중된다. 스펜서는 사범대학 학생들을 예로 드는데,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기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혹독한 시험과 악화된 제도를 강요당하고 있는데, 이를 무지의 증거로 보고 있다. 자연은 엄격한 회계사이고 우리의 생명 예산은 한정되어 있어, 자연이 세운 예산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만큼이 공제된다.


인지 발달이든, 도덕성의 발달이든, 건강한 신체든 스펜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거스르는 것은 우리의 무지에 따른 과오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자연의 이해이다. 우리의 정신과 신체와 사회적 관계와 사물과의 관계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섭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 때 우리 자신과 가정과 사회는 온전해질 수 있다.


매우 이상적으로 들리고 어느 한쪽의 올바름은 다른 한쪽의 불완전함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스펜서는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부작용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독자들을 달래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여 이상을 멀리하면 돌아갈 길은 점점 더 멀어지고 어려운 시대는 더욱 길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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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Spencer, Herbert(2016).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서울: 유아이북스.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idreamup/22069129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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