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국악부문에서 대부분의 한국창작가들이 세계화의 영향과 청중의 요구로 타문화의 음악과 협동함으로서 ‘퓨전’곡 등을 시도해왔다. 그렇다면 자국의 음악어법(idiom)으로만 만들어진 작품은 오늘날 청중들에게 어필되기에 충분치 않은가?
그림 출처 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8715
최근 창작국악의 음악가들이 세계와 대중의 요구라는 명목 하에 ‘퓨전’ 혹은 ‘크로스오버(Cross over)’를 많이 시도해왔다. 그렇지만, 자국의 음악어법으로만 만들어진 작품도 오늘날 청중들에게 어필할 매력이 충분하다. 다만 ‘접근성’이라는 측면에 있어 퓨전이나 크로스오버의 도움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국립창극단이라는 음악극 단체가 있는데 국립창극단의 움직임은 위와 같은 입장에 대한 정확한 사례를 보여준다.
창극은 판소리라는 우리 고유의 음악 어법을 사용하여 서양의 연극적 요소와 무대 형식을 결합하여 1900년대 초 탄생한 한국식 오페라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창극은 그 탄생으로부터 100년이 조금 넘는 동안 원형의 보존과 현대화의 사이에서 계속해서 갈등해왔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창극에서 원형이라는 것은 판소리를 의미한다. 1950년대 창극에서 뻗어 나온 ‘여성국극’이 매우 대중적으로 성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판소리적 원형을 무시하고 대중성만을 추구했다고 비판받으며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1962년 국립극장 직속 국립창극단이 창단되고 이후 몇 십년간 원형의 보존을 위해 애쓴다. 그러나 원형의 보존은 일부 국악인들이나 마니아층에게는 환영받을지 몰라도 대중들은 점차 외면하게 된다. 대중들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을 추구하지 현 시대와 상관없는 예술, 자기 자신과 상관없는 예술에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더욱이 통신 및 대중매체의 급속한 발달로 서구 선진국의 문화는 재빠르게 유입되어 자리 잡고 대중음악이 성행하는 가운데 지루한 옛 것에 관심을 둘 이유는 더더욱 없게 되는 것이다.
한편, 1990년대 중반부터 국립창극단의 움직임이 전환되는 양상을 보인다. 창극이 원형을 중시해야 하는가, 현대화를 추구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잠시 뒤로 하고, 창극은 어차피 개화기에 탄생한 현대적인 장르라는 입장을 기반으로 창극의 현대적 수용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판소리적 음악어법을 기반으로 하지만 현대적 기술을 사용한 다양한 무대, 반주음악의 오케스트라 및 전자 악기 사용, 뮤지컬이나 오페라 어법 수용 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2012년 김성녀 예술감독의 부임 이후 그 시도는 더욱 거침없어 진다. 아예 외국인 연출가를 섭외하여 창극을 제작하기도 하고 창극 무대에서 완전히 한복을 벗어버리기도 한다. 급기야 창극인지 뮤지컬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연들이 탄생한다. 물론 이러한 공연들은 국악인들이나 평론가들 사이에서 비판을 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대중들은 열광했다. 국악인들 눈에는 저건 국악이 아니다, 저건 창극이 아니다 라고 하지만 국악을 잘 모르는 대중들은 국악적 요소가 약간만 들어가도 창극의 범주에 넣으며 재밌고 보면 되는 것이다. 당연히 국립창극단 관객들은 늘어났고, 팬층도 생겨났다.
그림 출처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5/24/2018052400019.html
그림 출처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39
그러다가 2018년 4월, 놀라운 일이 생겨났다. 이 때 국립창극단에서는 <심청가>가 한창 공연되고 있었는데 이 심청가는 국립창극단의 최근 현대화·대중화·세계화를 위해 노력했던 실험과 시도를 모두 뒤로하고 전통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그렇지만 대중들이 다시 외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열광했다.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다. 분명 70~80년대에 창극을 외면했던 관객들이 어떻게 전통 창극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바로 타문화와의 협동 과정에서 끌어들여졌기 때문이고, 이 과정에서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어법을 접목한 과정이 없었다면 같은 시기 같은 공연은 여전히 대중들에게는 외면당하고 일부 국악인들이나 마니아층만 공연을 보러 왔을 것이다.
그림 출처 https://www.fnnews.com/news/202004120602194968
예술경영 측면에서 예술은 ‘대중예술’과 ‘고급예술’로 나뉜다. 대중예술은 저급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접근성이 비교적 쉬운 예술이다. 고급예술은 오랜 학습 과정이 필요하며 순수예술일수록 고급예술에 가까워진다. ‘퓨전’은 대중예술에 가깝고 자국의 음악어법만으로 만들어진 ‘전통’은 고급예술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대중들이 전통을 즐기지 않는 것은 전통은 순수예술 및 고급예술 쪽에 가까운데, 이를 위한 학습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지 결코 전통 자체가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중들이 전통을 많이 즐기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독일, 일본과 같이 학교교육과정에서 전통음악이나 고전극에 대한 학습이 보다 잘 되었거나, 아니면 인도나 아일랜드와 같이 전통이 ‘퓨전’을 매우 잘 수용한 경우이다. 전통음악에 대해 학교교육에서의 역할이 부족하면, 이를 보충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음악이다. 전통이 대중을 수용하거나 대중이 전통을 수용하여 대중들에게 전통에 대한 접근성을 쉽게 만들고, 그렇게 알고 학습하다 보면 점차 오로지 ‘전통’에 대한 관심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자국의 음악어법으로만 만들어진 음악도 청중들에게 어필하기에 충분하지만 ‘퓨전’이 접근성이 보다 용이하므로 퓨전이 청중들이 자국의 음악어법을 학습하고 알도록 하는 수단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