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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면서 번아웃이 왔다

by Lanie

나는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완전히 번아웃이 왔었다. 매 학기를 마치며 이번 방학은 꼭 쉬어야지,라고 결심했지만 좀처럼 한국에 붙어있었던 적이 없었고 매 학기를 시작하며 이번 학기는 딱 수업만 잘 들어야지, 했지만 대학생에게는 수업 외의 유혹이 너무나도 많았다. 항상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멋있다고 했지만 그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불안해서, 항상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못해서, 그 기회가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지 분별하지 못해서 벌인 일들이었다. 나는 일을 벌여놓고 멋있게 해내기보다는 매번 힘들어했고 눈물을 보이며 꾸역꾸역 마무리짓곤 했다. 그렇게 학부를 총 6년을 다녔다. 학부에는 4학년까지 있으니 1, 2, 3, 4, 4, 4학년, 그러니까 마지막 4학년을 시작할 때 급기야 번아웃이 온 것이다.


2번째 4학년 2학기 때 10개가 넘는 수업을 들으면서 졸업논문을 썼다. 예술대학에서 복수전공 수업을 몰아서 듣고 있었는데, 예술대 캠퍼스는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왕복 4시간 통학을 했고 4학년이지만 복수전공과 교직을 모두 채우려니 23학점을 꽉꽉 채워 들어야 했고 졸업논문도 써야 했다. 과제를 하려면 틈틈이 공연도 보러 다녀야 했다. 침대에서의 수면시간은 하루 2시간가량 주어졌다. 최고의 소화능력을 자랑하던 나는 처음으로 변비라는 것도 경험했고 머리만 대면 잠에 들던 나는 처음으로 불면증도 겪었다.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잠이 안 온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3번째 4학년, 진짜 마지막 4학년 때 나는 1 학기면 졸업을 하는 줄 알았는데 졸업 서류를 제출하러 행정실에 갔다가 1학기 졸업을 못하고 1년을 더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1학기 동안 예술기관 취업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1년 내내 예술기관 취업 준비를 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도 몇 개 없는 두 학기를 나는 좀 더 의미 있는 것으로 채워야 했다. 갑자기 나는 1년 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시공부는 그렇게 시작하는 게 아닌데. 번아웃의 시작이었다.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공부하는 법을, 집중하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애초에 학습능력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과제를 하려고 컴퓨터실 모니터 앞에 앉았는데 머리가 하얘졌다. 그 길로 학교상담센터에 상담 신청 글을 남겼다. 공부를 못하겠다고…….


그렇게 1년 동안 상담을 받아가면서 중간에 이걸 그만두네, 마네 하면서 임용고시도 한 번 보고 겨우겨우 졸업도 했다. 임용고시는 합격 할리 없었지만 나는 꼭 공립학교 교사가 되고자 했던 건 아니었으므로 이어지는 사립학교 시험을 보러 다녔다. 교육청에 공고 뜨는 것을 보고 시험 날짜를 기록해두었다가 아, 이날까지만 버티자, 했지만 공고는 계속해서 새로 떴고 도대체 언제 쉴 수 있을지 몰랐다. 당시 누가 나에게 소원을 물어보면 단 하루라도 늦잠을 자는 것, 단 하루라도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자는 것이 소원이었다. 12월~1월 초까지 사립학교 공고들이 뜨고 점차 기간제 공고도 뜨기 시작했다.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쓰고 지원하고를 반복했다. 달력을 보며 도대체 언제쯤 하루라도 쉴 수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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