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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아닌 10년 후를 위해 사는 삶

by La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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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렇게 상담을 받아가며 꾸역꾸역 겨우 대학을 졸업한 나는 우연히 첫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인맥으로 들어갔다.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관심이 많기도 했다. 가만히 있던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도대체 읽는지 마는지도 모르겠는 기간제 교사 지원메일을 계속 보내면서 졸업 후의 첫 해를 어떻게 보낼까, 임용고시를 또 준비할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그 기회를 잡았다. 소속이 생긴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나는 그곳을 방패삼아 내가 생각할 공간을 만들어놓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여유있게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지금까지 할 만큼 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사회에 내 자리 하나 없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기에 나의 "노오력"을 탓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를 했는데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은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사회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일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직장생활과 독일어공부만 하는 것은 또 뭔가 부족했다. 나는 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더이상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은 지긋지긋했다. 이번 주가 시험이라 어짜피 시험 후에 잊어버릴 것들을 갑자기 몰아쳐서 공부를 한다거나, 내일 제출하기 위해 밤을 새서 과제를 한다거나 했던 것들이 지긋지긋했다. 그러다 큰이모의 지나가는 칭찬 한마디가 내게 영감을 주었다. 00이는 피아노도 잘 치고 영어도 잘하고 좋겠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알았고, 영어를 완벽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갑자기 외국인과 대화를 하라고 했을 때 당황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밥벌이까지는 안되더라도 나름 인생에서 만족하는,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두 가지 요소였다.


이 두 가지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게 되었지, 생각해보았다. 음, 피아노는 6살 때부터 쳤고, 전공자처럼 하루에 서너시간 이상씩 연습한 건 아니지만 한 시간 정도씩은 매일 쳤다. 고3 때도 방학이나 일찍 끝나는 시험기간에는 꼭 1시간은 피아노를 치고나서 공부를 했다. 영어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일 1시간정도씩 꾸준히 공부를 했다. 시험기간이 아닐 때도 공부한 거의 유일한 과목이 아닐까 싶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어떤 구제척인 목적을 가지고 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시험이 있어서 준비한 게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직업을 갖기 위해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저 밥 먹듯이 한 것이었다. 별 생각 없이 매일 조금씩 10년 이상을 한 무언가가 지금의 내 인생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황홀했다. 지금 당장 단기로 공부해서 한국사시험 자격증을 딸 수도 있고, 운전면허를 딸 수도 있지만 갑자기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칠 수는 없다. 해커스 토익 속성 반에 등록해서 한두달 안에 토익 점수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갑자기 영어회화를 자유자재로 할 수는 없다.


나는 이제부터는 또다시 10년 후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당장 눈앞에 놓인 시험들을 해치우며 그런 생활을 잃었었다. 내가 번아웃이 왔던 건 매일 당장 내일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다. 내일 시험이 있어 벼락치기를 했다. 내일까지 제출할 과제가 있어 밤샘과제를 했다. 또 벼락치기로 한국사 자격증을 따고 한자 자격증을 따고 두어달 토플준비를 해서 토플을 보고 면접이 잡혀서 갑자기 면접 준비를 부랴부랴 하고, 자소서도 벼락치기로 쓰고. 스무살 이후로는 그런 생활만을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눈앞만 보고 멀리 보지 못했던걸까?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그런 생활도 졸업하고 나는 잠시 길을 잃었었다. 분명 열심히 달려오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리고 우선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당장 눈앞에 놓인 시험도 과제도 없으니 10년 후를 위해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기 시작했다. 일기도 매일 꾸준히 썼다. 그리고 영어 책도 매일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수능 국어영역을 유독 잘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아무리 공부(문제풀이)를 해도 늘지 않던 과목이었다. 국어를 잘 하는 애들한테 물어보면, '음...글쎄? 나는 중학생 때 책을 많이 읽어서 국어는 어렵지 않아.'라고 했다. 걔들은 그저 문학소녀였던 것이다. 내일을 위해 한 행동이 아닌 꾸준한 행동이 진짜 실력을 만든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행동은 괴롭지도 않다. 나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공부를 계속 할 거라고 생각했고, 문과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실 계속해서 읽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뭔가 많이 읽고 계속 쓰다보면 공부를 하게 될 때 덜 힘들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중학생 때 충분히 읽지 못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직장에서는 영어 논문 번역 일을 맡기도 했는데 그걸 계기로 고등학교 이후로 "활용"은 종종 했지만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는 영어도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야말로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부"로 하기는 싫었다. 내가 알던 영어 "공부"란 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시험을 정해놓고 열심히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 두가지는 하기 싫었다. 다만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므로 원서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원서로 읽기 시작했다. 책을 한 권씩 정해 매일 한 챕터씩 읽었고, 10분에서 30분은 매일 영어를 읽었다. 읽는 것은 써있는 것을 그대로 읽으면 되는 것이니 단어 외우기나 문제풀기보다 훨씬 쉬웠고 무엇보다 원하는 내용을 탐독하니 재미가 있었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어를 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일들을 10년 이상 꾸준히 하다보면 무언가 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성과는 10년이 지나기 훨씬 이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배경사진 출처: 최민석. (2018). 고민과 소설가. 경기도: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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