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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Dec 22. 2023

추운 겨울을 보내는 나의 자세.

내 시간 만들기.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다.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보일러 온도조절기에 표시된 숫자도 하루하루 더 낮은 온도로 갱신된다. 나는 희망온도를 특정 온도로 맞춰놓지 않고, 현시점의 실내온도보다 1도로 높여서 한두시간 보일러를 돌린 후에 다시 낮추는 식으로 해놓는다. 방바닥만 따뜻하다면 집이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절대온도에 반응하는 것들이 있다.


아침에 식사준비를 하려고 싱크대에 물을 틀었다. 찬물은 너무 차갑기 때문에 늘 약간 따뜻하게 해놓고 물을 쓰는데, 따뜻한 물쪽에 물이 쫄쫄쫄 나온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목욕탕의 물도 마찬가지다. 보일러가 있는 베란다에 가보니 입김이 나오고, 친환경보일러라 배수가 되도록 호수가 연결되어 있는데 물이 흘러나오는 곳이 꽝꽝 얼어있다.. 보일러가 작동하는 것은 천만 다행인 일이었다.


물이 안나오는 것은 아니어서 대충 아이들 먹이고 세수와 양치만 시킨뒤 옷 갈아입혀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이제 집안일을 해야할 때였다. 나는 하루에 딱 두 가지만 한다. 빨래를 널고 돌리는 일과, 아침먹은 설거지 하는 일이다. 왜 빨래를 돌린 후 널지 않느냐면, 요즘엔 전날 돌린 빨래가 세탁기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낮시간에 못널은 빨래를 아이들이 돌아오고 난 후인 저녁때라도 널어야 하는데, 낮에도 춥지만 밤이되면 더 추운 베란다 문을 열어 빨래를 갖고와서 널 엄두가 안난다. 다음날 빨래를 돌리려면 어쩔 수 없이 기존에 빨아져 있는 빨래를 널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내 몰릴 때까지 모른척 하는 것이 육아를 하는 나의 전업주부의 삶의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여튼 그리하여 설거지를 하고, 나머지 한가지 일인 빨래를 널고 돌리러 베란다로 갔다. 세탁기는 에러표시가 되어있고 어제 눌러놓은 빨래가 돌아가지 않고 그냥 있다. 다시 돌리려고 세탁기를 껐다가 켜고 오늘 빨래까지 같이 던져넣고, 모자란 세제를 채우려 세제 뚜껑을 여는데, 세제도 얼어있다. 아뿔싸. 세탁기를 작동시켜봐도 역시 물이 채워지지 않는다. 어딘가 호수가 얼어버린 것 같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매일 내가 해야할 일 중에서 한가지를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할일이 한가지로 줄었다는 것에 감사를 해야할 것인지 생각하기 전에 이 상황에 대한 생각을 정리 해야했다. 빨래가 시급한가. 이틀을 빨래가 밀리면 애들의 갈아입을 옷에 슬슬 쇼티지가 나기 시작한다. 딸램과 아들의 내복은 딱 세벌씩만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잘 씻지 않기 때문에 옷문제는 발생하지 않을테지만.) 내복이 없다해도 대체할 옷이 없는게 아니니 하루이틀 더 두고보아도 상관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문제는 현재 드러나는 두가지 현상이 - 세탁기가 안돌아가는 것,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것- 더 큰 문제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보일러에 에러표시가 뜨면서 방바닥이 냉골이 되어있을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순 없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한다. 방에서도 입김이 나는 옥탑방에 살면서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가스렌지를 한참 켜두어서 해결해본 경험이 있었다. 베란다의 세탁기와 보일러 문제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할 거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예전에 캠핑하려고 사둔 버너가 집안 어딘가 있을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우연히 오늘 연락을 하게된 이모에게 세탁기가 안돌아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전기난로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니 이모네 집에 안쓰는게 있으니 빌려가라고 한다. 고민이 시작된다. 사실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추운데 운전해서 왕복 50분을 갔다오느니.. 2만원을 쓰고 말자. 그리하여 빠른 결정만큼이나 빠르게 결제버튼을 눌러 내일 아침이면 도착할 전기난로를 주문한다. 어차피 나는 이 일을 오늘 당장 해결할 의지가 없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확보된 시간으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아니지만, 이시간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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