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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Dec 31. 2023

먹는 습관을 통해 본, 나는 왜 이럴까.

난 뭘 채우고 싶은 걸까.

 최근에 계속 속이 체한거 같고 소화가 잘 안되다가 위가 찢어질거 같은 느낌이 추가되었다. 뭘 먹지 않아도 늘 배가 부르다. 이제 임신 22주차가 시작하려는데 벌써 이럴일인가 싶다. 예전에는 출산 직전에나 느꼈던 것들이 벌써 느껴지는 거 같아서 노산이란 이런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늘 배가 부르니 뭘 먹을때가 부담이다. 이런 경우 적게 자주 먹으라고 조언을 하는 것 같은데, 난 대식가는 아니어도 끼니를 먹을 때 포만감을 느끼도록 먹는 것을 좋아한다. 먹을 것에는 은근한 집착이 있어왔다. 과자 한봉지를 뜯으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다 먹어야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지우개 같은 것을 사서 안잃어버리고 다 닳을때까지 써야 만족감이 느껴지는 것과도 같다. 먹을 것을 보면 바닥을 볼때까지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난 아주 어릴때부터 그래왔던 것 같다. 어릴적의 식사시간을 떠올리면, 내가 그렇게 먹을 것에 보였던 집착, 충분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의욕 같은 것이 떠오른다. 형제라고는 남동생 하나였지만, 나는 늘 경쟁적으로 먹었다. 경쟁적으로 먹었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먹을 당시의 기분도 그랬지만, 내가 자주 체했기 때문이다. 먹고나면 포만감에 괴로웠고, 급히 먹어서 자주 체했다. 먹을 것이 그리 부족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먹는 것으로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었던지.



어린시절 형성된 먹는 습관은 커서도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허겁지겁 먹지도 않고 체하는 일도 거의 없기는 하다. 하지만 음식을 보면 드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내가 이것을 끝내야겠다'는 생각, '이 음식은 오롯이 내 뱃속에 들어가야한다'는 생각. 그래서 남편과 과자 한봉지를 뜯어서 같이 먹다보면, 남편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도 내 손은 계속 과자를 향한다. 얼마나 남았는지를 생각하고, 앞으로 남은 즐거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과자봉지를 향한 집착은, 마지막 과자가 입으로 들어갔을 때에야 끝나는데, 채우는 행위가 끝났음에도, 무언가 덜 채워진 것 같은 아쉬움이 나를 슬프게 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쉼 없이 뱃속에 뭔가를 채우고 있는 나는 사실 주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줘야하고, 필요한 것을 신경써 줘야하고, 보살펴 줘야하고, 관심을 줘야하고 사랑을 줘야한다. 사랑은 줄 수록 늘어난다고 하던가. 하지만 아이들이 좀 더 사랑해달라고 할때면, 난 가진 게 없는데 뭘 달라고 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사랑을 줄 줄 모른다. 사랑받는 느낌이 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사랑을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린시절에는 그저 배만 배불리 채워졌던 것 같다.  



내 배가 셋째 아이로 점점 불러오는 요즘, 나는 배 말고 다른 것을 채우는 법을 배워야할 것 같다. 알고 싶다, 내 안의 사랑은 어떻게 채우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을 주면서 내 안에도 사랑이 채워지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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