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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04. 2024

나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병원을 꺼리는 나에 대한 변명.

나는 오늘 치과에 가야한다. 어제 과자를 먹다가 뭔가 딱딱한 것이 씹혔다. 처음에 하얀 쌀알 쪼가리같은게 입에서 나왔을 때는 이빨조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혓바닥으로 어금니를 훑었을 때 전에 좀 썩어서 틈이 벌어져 있던 이빨 사이로 새로운 이물감이 느껴져서 뭔가 아차 싶었다. 치실로 빼내어보니 이빨조각이었다. 이빨조각을 빼고나니 그간 썩어온 이빨이 텅빈채로 구멍이 나있었다. 순간 치과를 가야한다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치과를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정말 치과가기가 꺼려진다. 사실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그렇다. 내 몸에 관한 것인데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게 내게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치과에서 처음으로 큰 공포를 느꼈던 것은 맨 처음 금니를 씌울 때였다. 대학교때 학교 근처에 있는 치과에 다녔다. 몇년을 오가며 차분히 잘 치료를 받은 곳이라 신뢰하고 있었다. 그날은 이빨이 많이 썩었다며 이전까지 처럼 윗부분을 좀 때우는 것과는 달리 '금니'를 씌워야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설명없이 뭔가로 이를 갈아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동안의 징징징, 드르륵 드르륵 이빨 가는 과정이 멈추고 입을 헹군 뒤 혀로 그부분을 느껴보았을 때, 거의 멀쩡하던 이빨이 밑둥만 조금 남은 채로 다 갈려나간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의사가 "금니를 씌운다"라고 한 말에는 그렇게 '이빨이 다 갈려나갈 것'을 뜻한다는 것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많이들 받는 치료라 누구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거 받은 충격은, 나의 몸 어느 한부분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데서 왔다. 다시 원래대로 복구할 수가 없다는 점 말이다. 나는 이빨 하나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왜 그렇게 충격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치과에 가야할때면 그런 일이 또 생길 것이 두려워진다. 치료를 받고나면 그럴듯한 가짜 이빨이 나의 식사를 도울 것이고, 그것은 꽤 유용할 것이다. 초반에 한동안은 그 이물감을 느껴야할테지만 말이다. 그 이물감이 나를 두렵게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어느새 있는지도 모르게 나는 그 가짜이빨에 적응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몸은 신기하게도 인위적인 것들 속에서 적응하는 법을 빨리 터득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은 새 안경을 쓰면서도 늘 느끼는 것일 다. 



금니를 씌울 때의 이물감을 두려워하는 것이 나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는 이런 나를 고지식하다고 이야기한다. 수능을 마치고 대학생활을 시작할무렵 엄마가 내게 여러번 요구한 것이 쌍커플수술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의 외모에 대해서 딱히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내게 엄마의 이런 권유는 새로우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외모를 꾸미는 것에도 크게 관심이 없던 나이기에, 쌍커플 수술을 할 의향은 더더욱 없었는데, 엄마가 의외로 끈질기게 내게 권유를 했다. 엄마가 내게 "쌍커플 수술을 해라"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너는 못생겼다"로 들렸다. 못미더운 의사가 내 몸에 칼을 댄다는 것도 싫은 일이지만, 그간 익숙했던 내가 아닌 른 외모의 내가 된다는 것이 내게는 큰 공포로 다가왔다. 당연히 나는 수술을 받지 않았고, 시간이 흐른 뒤 엄마는 더이상 성형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와 다른 딸래미가 나중에 커서 얼굴을 고치고 싶다고 하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할지 고민해야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고지식함이 드러나는 또 하나의 사례는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다. 4년전쯤 둘째 임신 중에 뱃속에 종양이 발견되었다. 크기가 5센치가 넘었고 배꼽 주변에 있었기에 아기 초음파를 볼때마다 자궁 바로 위쪽에서 보였다. 아이가 뱃속에서 꽉 찰 때쯤에는 자궁을 압박하는 것 같아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산부인과 담당의사는 제왕절개를 하면서 종양을 떼어날 수 있으면 해보겠다고 했지만, 절개 부위와는 멀어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종양은 악성도 아니었고 커지지도 통증을 유발하지도 않아서 임신기간은 잘 넘길 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 수술해야지, 막연히 생각했는데, 모유수유를 해야하고 누군가에게 어린 아기를 맡기고 수술하러 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 수술은 또 미뤄졌다. 결국 출산 후 14개월이 흐르고 나서 이제는 해결을 해야겠다고 다시 병원을 알아보고 이런저런 검사도 자세히 받아보았다. 



수술날짜를 잡으려 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영 미덥지가 않았다. 의사는 내게 '데스모이드 종양'이라고만 적힌 쪽지를 주면서 내 종양이 이것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적어준 이유는 스스로 인터넷으로 더 알아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의사는 종양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니 왜 생겼는지, 어떻게 없어지게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의사가 아는 것은 수술해서 떼어내는 것이었는데, 종양의 크기보다 훨씬 더 넓게 잘라내야하고, 배가 벌어지지 않게 꽉 잡아주는 무언가로 고정해야하고, 그렇게 해도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의사가 행할 수술의 전후 과정중에 어떤 것도 확신하는 것은 없어보였다. 그런 의사에게 나의 몸을 받기고 싶지 않아서 나는 수술을 받지 않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암 치유에 대한 책을 찾아보다가 채식과 녹즙으로 치유한 다양한 사례를 만나게 됐고, 그뒤부터 채식을 하게 되었다. 다시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아보지 않아서 종양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뒤로 자라지도 않았고, 채식한지 반년쯤 뒤에 산부인과 진료보면서 확인한 바로는 크기가 좀 줄었다. 지금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으니 그냥 없어졌나보다 생각하며 지낸다. 



내가 옳은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암이었다면, 이렇게 책을 찾아보고 채식을 시도하는 것은 그냥 낭만적인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몸에 대해서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불로장생의 명약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것이 그런 것이지만, 그것이 치기어린 위험한 생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치과에 가는 것이다. 구멍난 이빨을 회생시킬 방법을 안다면 좋겠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그저 평범한, 조금 고지식한 인간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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