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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03. 2024

우리는 괴산으로 간다.

셋째를 가진 이유.


난 요즘 좀 우울한 것 같다. 임신 6주차부터 시작한 입덧이 장기화되니 지친다. 누구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임신 소식을 밝혔을 때도 기뻐하는 사람은 시어머니 정도였다. 나의 아빠는 "나는 모르겠다. 니가 알아서 해라."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셨고, 엄마는 말이 없으셨다. 전부터 셋째를 계획했고, 아이를 낳으러 갈때는 입원중인 일주일동안 남은 아이 둘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기에 엄마에게는 임신 전에 미리 도움을 청했었다. 엄마는 처음엔 네 건강을 생각해야하지 않냐며 셋째는 갖지 말라셨고 다음번에 물어볼때는 당신의 몸이 예전같지 않다며 힘들어서 못 본다고 하셨다. 엄마는 여전히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가 다 되도록 공장에서 몸으로 일하시는 분인데 몸이 힘들어 아이들을 못돌본다니 의아했다. 애들은 이제 어린이집을 다녀서 평일에는 등하원과 아침저녁 정도만 차려주면 되는데 말이다. 난 엄마의 말을 듣고 많이 서운했고, 엄마와 거리감이 많이 느껴졌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게 나에 대한 갑질인가 싶었다.



내 뱃속엔 3년쯤 전에 발견된 정체모를 종양이 있다. 종양이 발견되고 수술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채식을 시작해서 관리하고 있다. 둘째 임신 중에 발견되어 임신정기검진 때마다 보이던 5센치 넘는 그 종양은 지금은 어디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외에도 첫째때도 그랬고 둘째 수술할때도 의사가 나의 자궁벽이 너무 얇아서 아이는 많이 낳지 말라고 경고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난 셋째를 원했고 다른 의사에게 가서 물어보니, 원래 아이를 낳을 수록 자궁벽은 얇아지는 거라면서, 자궁벽이 얇은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셋째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 건강문제도 어느 정도는 의지에 달린 거라고 믿고 있고, 그러길 바란다.



셋째 아이를 원하는 나의 마음은 순수하지만은 않다. 물론 내가 형제도 없고, 교류하는 친적과 지인도 없기에 아이들에게 형제라도 많이 만들어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다른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제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데, 경제적인 문제로 아이를 하나 더 낳는다니 의아할 것이다. 남편은 결혼하면서 이직한, 이전보다 돈을 거의 두배로 주는 직장을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한달만에 그만두었다. 그뒤로 어떤 일을 해서든 생활비는 꼬박꼬박 만들어서 갖다주었지만, 계속 직장을 옮기거나 정해진 직장없이 단기 일을 했다. 일은 열심히 했기에 돈을 못번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은 돈이 모일만 하면, 차를 산다던가, 새로운 사업을 벌인다며 형편에 안맞는 큰 지출을 했고, 그 투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일년에 그런 일이 한두번은 지속되다보니 우리의 가정경제는 늘 휘청거렸다. 남편 따라서 이사도 많이 다녔다. 서울에서 살다가 음성으로 가고, 다시 직장때문에 서울로 갔다. 이러다가 계속 남편따라 이사만 다니겠다 싶어서, 친정 가까운데로 집을 사서 들어갔던게 지난해 4월이었다.



직장도 불안정하고, 이사도 많이 다니면서 우리 수중에 돈이라고 모이는 것은 없었다. 결혼할때도 빈털터리였지만, 결혼하고도 아둥바둥이었다. 그런 우리가 유일하게 지켜낸 돈은 나라에서 아이들 앞으로 나온 돈이었다. 그돈을 겨우 모아서 지난해 집을 사고 간단히나마 리모델링을 할 수 있었다. 남편은 내게 늘 생활비만 주고 남은 돈은 본인이 알아서 쓰니, 내게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돈이 돈을 모을 유일한 수단이었다. 나는 절실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 불안정한 삶을 바꾸고 싶었고, 그래서 셋째를 결심했다. 임신 사실을 앎과 동시에 출산장려금이 큰 지역중에 하나인 괴산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아이앞으로 나온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작은 부동산 임대수익이라도 만들어보고 싶은게 내 바람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잘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왜 맞벌이를 하지 않느냐고, 혹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맞벌이를 하기에는 주변에 육아를 도울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고, 난 아이를 남의 손에 하루종일 맡기고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차라리 사교육을 안시키고, 내가 좀 더 오래 돌보는 쪽이 낫겠다 싶다. 무엇보다 난 돈버는 주변머리가 없다. 돈벌기 싫어서 결혼한 사람인데, 육아를 하면서 돈도 버는 재주가 어디있겠는가.



다시 이사를 해야한다니 마음이 무겁다. 가족들은 크게 반기지 않는 셋째라 모든게 내가 혼자 다 감내해야할 일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어쩌다 난 이렇게 혼자가 되어버렸을까. 내가 도움을 청하지 않아서일까, 다들 애들은 알아서 큰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를 돕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만이라도 많은 사랑을 주면 좋을텐데, 그러면 아이들이 내게 매일 사랑을 더 달라고 하지 않을텐데 아쉽다. 우울한 마음이 입덧탓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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