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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09. 2024

이사를 가야한다.

나의 첫 경매이야기.

저 말은 최근에 나를 짓누르는 문장이다. 때가 되면 생각보다 덜 어렵게 일이 진행될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걱정이 많은 편이다. 이사전에 준비해야할 일들이 많이 있고,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된다.



제작년과 작년에 내 기존의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일을 했다. 바로 경매로 낙찰받아 집을 마련한 일이다. 태어난지 39년만에 나는 내 이름으로 된 부동산 하나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나는 물건을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는 편이었다. 더구나 내가 갚을 능력이 될지도 알 수 없는 큰 금액을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산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20년 가까이 서울이나 제주도에서 자취를 하면서 늘 월세를 살았지 하다못해 대출을 받아 전제로라도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의 부모님도 잘 모르는 부분이었고 누구에게 배워본적이 없었다. 그러던 내게 부동산의 세계에 대해 알려준 것은 남편과 남편의 가족이었다. 남편은 20대 초반에 경매로 집을 수 채 구입하고 그것으로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그돈이 다 어디갔냐고 물으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잘못된 투자로 큰 손해를 보면서 경제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다. 시댁의 상황도 비슷하다. 시부모님은 기존에 물려받은 땅이 많으셨고 새롭게 구입도 하시면서 부동산 자산을 늘리셨지만, 그것이 남편대에 와서 유산이 분배되면서 상당부분은 없어져버렸다. 어느 집이나 물려받은 유산을 공중분해시키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결론적으로 남편에게도 시댁에도 부동산 자산은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남은 것은 '경험'뿐이었다. 부동산 투자를 많이 해온 분들이라 남편이나 시댁식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나도 투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남편은 내게 일일히 뭘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경매나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것은 책을 찾아보거나 유튜브를 통해서 접했다. 경매 책을 읽고, 수업을 듣고, 경매사이트에 매일 들어가서 유심히 매물을 살펴보았다. 그러기를 수개월을 해봤지만, 수익이 날 것 같은 매물들은 대부분 그림의 떡이었다. 서울 내의 매물은 투자금이 턱없이 부족했고, 지방에 투자할만한 곳은 아이들 어린이집에 간 사이인 9시부터 4시 사이에 임장을 하든 경매 법원이든 다녀와야하는데, 거리상 제약이 많았다. 게다가 임장을 하고 낙찰을 받을 때만 그지역에 가야하는게 아니었다. 낙찰 받고나서는 세입자를 내보내는 '명도'라는 것을 해야하고, 그 다음에는 집을 수리해야하고, 그 다음에는 집을 임대해야하니 수십번을 왔다갔다 해야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거리상 먼 곳은 제외되었고, 수도권 내에서 내 투자금으로 가능한 곳을 보게되었다. 그래서 자연히 지역은 내게 친정에도 가깝고 전철로 이동이 가능한 '동두천'이 되었던 것 같다.



낙찰을 받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기뻐서가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이다. 동두천에 19평의 방 세개짜리 낡은 아파트가 경매에 나온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력을 보니 2년 전이던 2020년에 경매로 나왔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매절차가 중단되었다가 2022년에 다시 재개된 것이다. 그리하여 감정가는 2년전 시세 그대로였다. 난 이 점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방 세개라면 우리 식구가 살기에 괜찮을 듯 하고, 가격도 내가 감당할 수준이었다. 동두천은 전에 남편과 다른 매물을 보러 몇번 왔던터라 친숙하다고 착각을 했다. 거리가 멀고 입찰날짜가 하루앞으로 다가와 나는 임장도 가보지 못하고 법원으로 갔다. 2년전 시세라 싸다고만 생각했고, 낙찰을 받으면 들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최저가보다 500만원이나 더 써서 입찰을 했다. 낙찰이 되고자 하는 나의 강렬한 바람은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최고가로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나와 꽤 차이가 나는 차순위의 금액을 들으니 아차 싶었다. 낙찰을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법원에서는 무를수가 없다. 그렇게 얼떨결에 나는 가보지도 못한 집을 덜컥 낙찰을 받게 된다.



그뒤로 내가 헤쳐나간 일들은 소위 '경험'이라 부르기 적합했다. 왜 2년간 경매절차가 미뤄졌나 했더니, 소유자는 사망했고, 그의 어머니가 상속을 받았는데, 그분은 연로하셔서 요양원에 계셔서인 것 같다. 사망이후의 상속절차가 이루어지는 바람에 시간이 오래걸린 모양이었다. 상속인이 요양원에 계시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 나는 수소문하여 가족들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낙찰을 받느라 체납 관리비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상당히 큰 금액이 나왔다. 가족들과 합의하여 순조롭게 명도를 진행했지만, 관리실과 밀린 관리비에 대해서도 협의를 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내용증명을 몇번을 보내고 소통하면서 일이 진행되어가는 것을 느낄때 기쁘긴 하였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소유자가 사망하고 상속인이 살았던 짐 그대로를 놓고 요양원에 가면서 집은, 마치 조금전까지 누가 살다 잠시 자리를 비운 듯 했다. 집을 넘겨받는 것에만 몰두해서, 비번을 알려준다는 말에 더이상 뭘 요구하지 않기로 가족들과 합의를 봤는데, 남은 짐처리가 생각보다 골치아픈 일이었다. 돈을 들여 유품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부르면 간단할 일이었는데, 우리가 스스로 해결하자고, 같이 도울 시간도 없는 남편의 말을 따르는 바람에 나와, 그리고 딸의 고생을 두고볼 수 없었던 부모님은 짐을 치우느라 말그대로 개고생을 해야했다.



짐을 다 치우고도 집을 고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이것도 우리 스스로 하자는 남편의 말에 따르고 보니 결국 나 혼자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는 걸 곧 깨닫게 됐다. 근처에 사시는 아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단열재, 타일 등 무거운 자재를 구입해서 갖고 오는 것 부터가 내가 할 수 있는일이 아니었다. 단열재는 내가 혼자 붙이고, 미장이나 조적일을 해보신 아빠는 타일 붙이는 걸 해주셨다. 커터칼로 3.3센치 두께의 단열재를 자르는일은 만만치 않았다. 단열재, PVC몰딩, 걸레받이 모두 커터칼로 자르고 붙이느라 손가락이 얼얼했다. 통증으로 견디기 힘들다 싶을 때쯤 마무리가 되었다. 이사날짜를 정하고, 화장실과 도배장판은 업체에 맡겼다. 시간이 얼마 안남아 애가 탔다. 문짝을 수십번 측정해서 5개를 주문을 하고, 기존 문을 떼어내고 일일히 달았다. 문짝에 비해 노오란 문틀도 필름지를 사서 붙였다. 현관과 신발장에도 필름지를 붙이니 깔끔해졌다. 조명을 사다 갈고, 콘센트며 스위치도 일일히 떼어 달고, 잘 모르는 내가 하다보니 전기에 문제가 생겨서 기술자를 불러 세세한 것은 해결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부족해 마무리가 덜된채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것이 작년 4월이었다. 그외에도 현관문이 긁히는 소리가 나서 힌지도 갈고, 싱크대 배수구에 물이 새서 그것도 갈고, 싱크대 수전도 불편해서 그것도 갈고, 셀프로 한 것들이 많다. 잡다한 집수리 전문가로 나가야 하나 싶지만, 마무리가 모두 허술하다.



이사 이후에 싱크대도 필름지를 붙이려고 했는데, 아직도 진행을 못했다. 그 외에도 수리가 덜된 부분이 많다. 이사전에 마무리하고 가려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사를 아이들 유치원 입학 일정과 맞추어 2월 말로 정했는데, 당연하게도 그때는 이사철로서는 가장 피크라고 한다. 작년 이사할때의 금액보다 두배가 넘는 금액을 부른다. 작년에 이사전까지 매번 내가 짐을 싸서 이사를 했는데, 이번에도 비싸다고하니 남편이 우리가 짐을 싸서 이사를 하자고 한다. 여기서 '우리'란 역시 '나 혼자'를 의미할테다. 집에도 잘 못오는 분이 어떻게 짐싸는 것을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자가로 짐을 싼다고 해도 최소 5톤 탑차를 불러야할텐데, 이사한다고 하면 돈을 준다고 해도 선뜻 온다고 할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남편은 이런 곤란한 일을 스스로 알아보지 않고 나한테만 시키고 결과를 가지고 이렇쿵 저렇쿵 잔소리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집수리도 마무리하면서 짐까지 쌀 엄두는 나지 않기에 최대한 금액이 맞는 업체를 찾아보려 한다.



이사를 한다해도 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부동산을 처분하는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계속 갖고 있으면서 소소한 임대수익을 얻을 수도 있을테지만 확신하지 못하겠다. 이런저런 당면한 과제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하지만 한가지씩 해결해보려고 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데드라인은 힘을 발휘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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