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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19. 2024

작품의 수준과 작가의 인간됨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나의 인생'을 읽으며

전쟁이 끝났어도 한동안 폴란드에서 살았던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사회주의 진영에 속한 나라라서 이념적으로 대립적인 나라에 대한 것은 금기시 되기도 했고, 폴란드의 사회 분위기 자체가 억압적이고, 전범국가인 독일에 비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다가 그만두었다는 이유로 공산당에서 낙인이 찍혀 직장을 잃었던 그는, 1953년이 되자 개인적으로 투고하며 살던 삶도 이어나가기 어렵게 된다. 어느 순간 출판사와 잡지사들은 그의 글을 거절했고, 알고보니 당에 의해 그는 출판금지가 되었던 것이다. 왜 그러한지, 누구에게 물어야할지도 알 수 없어서 그는 관련기관에 여러군데 문의해서 어렵게 그의 글이 출판 됐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 이유는 듣기 어려웠다. 그의 글이 출판 금지 당하자 그는 자유롭게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없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출판한다던가, 라디오방송 같은데서 본인 소개를 하지 않고 방송을 하는 등으로 근근히 일을 해야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다시, 그의 글이 여전히 출판금지인지를 알아보는데, 어렵게 연락이 닿아 면담을 갖게된 담당부서 관계자는 그의 글을 검토하더니, 그가 출판금지가 되었던 것은 순전히 오해였다며, 더이상의 출판금지는 없다는 말을 듣는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독재와 억압 속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익숙한 일이다.


그는 독일어에 능했고, 동독 출신이긴 했지만 독일작가의 작품들을 주로 다루었기에, 동독의 작가들이 폴란드에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그 작가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는 등의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몇몇 작가들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적었는데, 바로 작가는 그가  작품을 비평가만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그는 'Siebten Kreuz'를 썼다는 작가 Anna Seghers에게서 느꼈다. 그녀와 인터뷰 하면서 그녀가 친절하기는 하지만 대화가 겉고, 라이히라니츠키가 감명을 받았던 그녀의 작품 'Siebten Kreuz'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비슷한 예로 리차드 슈트라우스를 들었다. 그가 'Elektra'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앞의 작가도 이 음악가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비평가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철처하게, 꼼꼼히 살펴봐야한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말한 것은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특별히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내가 당시에 배운 것이 있다 : 세상에는 비평이 없는 문학은 존재할 수 있지만, 문학이 없이 비평이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 야만이 있고 난 뒤에야 윤리가 있는 것이고, 시가 있은 다음에 시론이, 문학이 있은 다음에 그에 대한 비평이 있다는 것이다. (Erst kommt das Fressen und dann die Moral, erat dir Poesie und dann die Theorie, erst die Literatur und dann die Kritik)


⁠fressen이 문맥상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먹는걸 'essen', 동물이 먹는걸 'fressen'이라고 한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fressen이라고 하면 동물처럼 개걸스럽게 먹는 느낌인 것 같고, 뒤에 도덕이나 윤리를 뜻하는 말인 'Moral'이 왔길래 '야만'이라고 번역했다. 아시는분 알려주면 감사할거 같고.


이렇게 작가의 작품성과 그것을 써낸 작가가 같은 수준으로 호응하지 않는 경우의 예를 책에서 또 들고 있는데, 바로 베르톨 브레히트이다. 1950년대 초반에 앞서도 언급했듯이 폴란드에서 독일 작가들에 대한 생각은 나치와 연결되어 부정적이었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브레히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다만 동독의 작가들은 같은 이념의 나라인 폴란드를 종종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그래서 브레히트도 폴란드를 찾게된다. 그를 맞기 위해 폴란드 인사들과 식사자리를 마련하려고 하지만, 독일인에게 부정적인 폴란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자리를 거절했고, 브레히트는 그것에 크게 실망을 했다고 한다. 라이히 라니츠키는 그 식사자리 후  바르샤바의 영향력있는 신문에 브레히트에 대해서 긍정적인 글을 썼고, 그 글이 마음에 들어 브레히트는 라이히라니츠키를 자신이 머무는 호텔에 개인적으로 초대를 했다고 한다.


초대된 사람이 자신뿐인 줄 알고 가보니, 막상 그곳에는 브레히트와 만나기 위해 줄지어선 사람들이 꽤 되었다고 한다. 그의 호텔방에 들어가게 됐을때는 커다란 그릇에 당시 바르샤바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베를린에서나 공수해왔을 법한 오렌지, 바나나, 포도 같은 과일이 잔뜩 있었다고 하는데, 초대받은 이들에게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먹고 난 과일 껍질이 의도한 듯 테이블에 놓여있는 것으로 그는 브레히트가 연극을 하고 있는 듯한, 꾸며진 상황인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라이히라니츠키는 브레히트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지는 못한 모양이다.


글의 말미에 브레히트의 특별한 아우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라이히라니츠키는 브레히트의 일기장에 쓰인 글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비밀이 없는 곳에는 진실도 존재할 수 없다." 아마도 브레히트의 카리스마있는 아우라는 사실 설명할 수도 정의할 수 없는 비밀에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천재의 비밀에 말이다.



그리고 나는 당시에 이미 알고 있었다. : 그에게 계급투쟁이 중요했기에 그가 자신의 생에 동안에 연극에 몰두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그것을 자신의 작품을 위한 동력과 주제로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에 몰두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자로서 브레히트가 연극과 시가 필요했던 게 아니고, 연극인이자 시인인 브레히트가 변혁과 막시즘을 관념적인 기초와 목적으로서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이해한대로 번역을 했지만, 오역의 위험이 있으니 정확히 알고 싶은 분은 한국어본 책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사실 나는 브레히트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에 작가가 경험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저 상상해볼 뿐이지만, 비슷한 사례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스크린에서 본 배역에 매혹되었던 배우나 아니면 음악에 빠져들게 한 가수의 민낯을 보게 되었을 때 느끼는 그의 작품과 그의 인간됨의 괴리 말이다. 어떤 느낌일지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성과를 존중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도 전해진다.  


반대의 사례가 다음 글에 나온다. 라이히라니츠키가 작가가 창작한 작품의 작품성은 높이 평가하지 않지만, 그 사람됨은 높이 평하가는 작가의 예 말이다. 그것이 바로 하인리히 뵐이다. 그 역시 동독에서 활동하던 작가로 바르샤바에 방문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그곳에서 교회에 가보고 싶다고 하고, 바르샤바의 폐허가된 모습을 보고싶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 참혹한 모습에 마음아파한 것 같다. 그 인연으로 라이히라니츠키는 하인리히 뵐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그가 서독을 방문하고자 할때 독일에서 그가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백방으로 노력해준 사람도 하인리히 뵐이고, 1958년 결국 폴란드를 떠나 독일로 가고자 할 때도, 독일의 누군가 생활비를 대준다는 경제적인 보증이 있어야 했는데, 그것을 해준 이도 하인리히 뵐이라고 한다. 그리고 독일에 도착해서도 그는 라이히라니츠키에게 경제적인 상황은 어떤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신경써주었다고 한다.


하인리히 뵐은 라이히라니츠키에게 그렇게 인간적으로 신경을 많이 써주었지만, 막상 그는 하인리히 뵐의 작품에 대해서는 신랄한 평가를 많이 내린 모양이다. 그것으로 그는 하인리히뵐에게 상처를 주었을거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2년에 스톡홀롬 왕립아카데미에서 누구에게 노벨문학상을 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당연히 하인리히 뵐을 추천했다고 하는데, 이부분이 좀 의아했다. 그가 추천하지 않았더라도 하인리히 뵐에게 상이 주어졌을 거라고도 하니, 그가 노벨상감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찾아보니 하인리히 뵐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 같다. )


그 이후에도 그의 하인리히뵐의 작품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이어졌고, 그때문에 한동안 둘의 사이는 서먹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하인리히 뵐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악수를 하는듯 하더니 귀에다 뭐라고 속삭였다고 하는데, 바로 "Arschloch!"이다. '항문'이라는 뜻인데, 한국어로 하면 '개새끼야'정도 되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 나서 웃으면서 "이제 다 괜찮아졌네요." 하면서 안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인리히 뵐을 통해 깨달은 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나는 뵐을 통해서 많은 것은 배웠다. 작가와 비평가 사이에 평화, 혹은 더 나아가 우정이라는 것은 비평가가 그 작가의 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당사자가 그것을 영구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가능하다는 단순한 통찰을 포함해서 말이다.


재밌으면서도 소위 웃픈 문장이다. 하인리히 뵐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는 초반에, 라이히라니츠키가 뵐은 지인일 지언정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작가라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훌륭하지 않을지라도 작품은 훌륭할 수 있고, 작품이 훌륭하지 않을지라도 인간으로서는 존경받을만한 사람일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글이었다.


55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하루 열페이지 정도씩 읽고 있다. 간만에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사실 독일어로 읽고 있으니 뿌듯함은 그 이상이다. 다른 어려웠던 책을 펼치면 여전히 어려운 것을 보면 내 독일어가 늘어서가 아니라 그의 글이 쉽게 읽히는 것인가보다. 쉬운 글이라는 것은 대중에게 잘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글의 가치는 쉬울 뿐 아니라 진실되고, 다른 사람이 지나치기 쉬운 디테일을 집어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그의 경험 자체의 특수성도 한몫하지만 말이다. 그는 작품성과 작가의 인간됨이 같은 수준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글 자체에서만큼이나 그의 인간됨에 반하게 된다. 읽을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기쁘기는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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