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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20. 2024

성인이된 자식을 성인으로 대하기.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오늘 아침 일어나서 아이들과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있는데 이모에게 문자가 왔다.

"엄니 안성 지나고 있는 중."


문자를 보니 엄마와 함께 괴산으로 가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괴산은 다음달에 우리가 이사갈 임대주택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이사를 한다고 하니 엄마는 늘 그러셨던 대로 다니는 절(이라지만 점집같은 곳)에 가서 우리가 그쪽으로 24년 초의 시점에서 이사를 하는 것이 괜찮으냐고 물어보셨던 모양이다. 이사를 하면 좋을 날짜를 알려주셨고, 또 24년도에는 우리가 남쪽이로 이사하는 것이 좋지 않으니 음력으로는 23년이라고 할 수 있는 구정 전에 마치 우리가 약소하게 이사를 했다고 할 수 있게 간단히 살림살이를 몇가지 가져다 놓아야 한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엄마가 나 몰래 나에 대한 것들에 관여를 하신다는게 달갑지가 않다. 절에 가서도 그런것을 물어보지 않으셨으면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드리면 상처를 받으실 것이기에 따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면 엄마의 바람을 굳이 거절하고 싶지는 않아서 웬만하면 따라드린다. 이사 날짜라고 받아온 날은 손 없는 날이기에 이사비용이 비쌀 것이기에, 우리는 그 날짜를 피해서 이사를 해야한다는 뜻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외에 구정전에 괴산에 이사할 집에 한번 다녀오는 것은 우리도 어차피 집을 보지 않은 상태라서 이사전에 어차피 다녀와야 했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기는 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엄마는 '엄마됨'을 한번 더 발휘한다. 우리의 짐을 굳이 본인이 가져다 놓으시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사할 집을 본인이 보는 편이 좋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여기까지도 내가 크게 반대할만하지는 않은 요청이다. 우리가 가야할 날에 같이 가면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어제는 계획에 없이 일을 하러가지 않게 되셨다며 사전에 말도 없이 괴산에 가져다 놓을 짐을 챙기러 오셨다. 집안일을 끝내고 점심식사를 마친 뒤, 아이들이 하원하기 전까지의 내 황금같은 자유시간인 1시부터 4시까지를 고스란히 엄마와 이모와 보내야 했던 것은, 어차피 할일 없는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을 엄마와 이모의 무심함에서 비롯된 결과일테지만, 사람으로서 굳이 불만을 토로할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짜증이 좀 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는 오늘 이른 아침, 엄마와 이모는 내게 말도 없이 내가 가보지도 않은, 우리 가족이 곧 이사할 집에 먼저 가보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엄마는 원래 좀 그러니까'라면서 모르는 척 넘어갈 일인지, '아직도 나를 세살배기 어린아이 취급을 하시네'라면서 화낼 일인지 생각해보는 중이다. 이러나 저러나 엄마에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언짢은 티를 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어떻게보면 엄마가 그렇게 나 몰래 나에 대해서 좋다고 하는 쪽으로, 엄마의 노력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것은 나의 번거로움을 배려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자식인 나를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나에 대한 '소유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비슷한 것을 시어머니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남편은 효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원가족에게 맺힌게 많기에 엄마인 시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언성이 높아지는게 다반사고, 그래서 시어머니는 남편보다는 나와 남편에 대한 일을 상의하려고 하신다. 사실 들어보면 남편에게 몸에 좋은 도가니탕이나 도라지차 같은 것을 만들어서 먹게 하라거나, 보약을 지어 보낼테니 챙겨주라거나 하는 사소한 것이기는 한데, 남편이 그런 것을, 시어머니가 보냈다고 하면 더더욱 먹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에게 그런 것을 먹게 하는 것은 사실상 너무도 어려운 요구가 된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뿐 아니라 나의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몸에 좋다는 한약이나 음식같은 것을 먹기를 요구하시는데, "저는 그런거 잘 안먹어요."라면서 분명히 말씀을 드리고 여러번 거절을 해도 계속 먹으라고 간절히 요구를 하시는 것을 보면, 내가, 아이들이, 남편이 한약을 먹는 것 같은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어진다.


나의 엄마나 시어머니가 자식들의 '싫다'는 거절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제시하는 것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줄 거라는 확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절에서 들은대로 행동을 한다면 우리에게는 '좋은 운'이 따를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리라고 엄마는 믿는 것이며, 한약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기 때문에 한약을 먹으라고 강요하시는 걸게다.  안타까운 점은 나의 부모가 '좋은 방법'을 알려줄 생각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줄 생각을 하신다는 점이다. 그렇게 성인이 됐음에도 아직도 엄마들이 자식에게 좋은 결과를 떠먹여주려 한다는 사실이 자식들을 얼마나 무력하고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지를 그분들은 모른다는게 나를 화가나게 하는 점이다.  


엄마든 시어머니든 어른이 된 자식들의 삶에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말씀드린다 해도 기분이 상하실뿐 고쳐질것 같지는 않고, 나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내가 본 어른들처럼 대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성인이 되었든 안되었든 '싫다'는 자식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식을 자신과는 분리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존중의 시작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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