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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Dec 20. 2023

육아 속의 기억상실증, 나는 무엇을 좋아했던가.

나에게 조차 잊혀져가는 나를 기억해내기

어린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지금까지의 40년 내 인생의 절반이상의 시간동안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음악이었다. 초등학교때는 3학년 올라가면서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 4-5년 정도 배웠고, 그것을 계기로 음악시간에 음악부장을 하며 반주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장래희망을 써내라면 나는 늘 작곡가 같은 것을 써 낼 정도로 음악은 나의 정체성이었다.  



사실 클래식이 내게 그리 가깝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배우는 것 외에 달리 클래식을 들을 기회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엄마가 가끔 베토벤 등의 클래식 테이프를 사다주셨고 나는 그것을 즐겨 듣는 정도였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나의 음악듣기는 좀 더 주체적이 되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음악잡지가 있었고 잡지를 통해 음악가들을 알게되었다. 당시 학생들이 볼만한 음악잡지란 대중음악을 다루었기에 그렇게 깊이가 있는 음악가를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팝송을 들으며 음악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좋았다.



설날에 세뱃돈을 받으면 돈을 가지고, 당시 포천의 어느 시골에 살았던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큰 시내였던 의정부에 갔고, 그곳의 레코드가게에서 그간 메모해 놓았던 관심가는 가수들의 테이프를 구입해서 들었다. 내가 또한 즐겨했던 것은 테이프의 자켓사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음반을 고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산 음반들이 성공적인 경우도 많았다.



당시에 어떤 음악을 들었었는지 세세하게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중학교때는 아마도 유행하던 팝송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기억나는 밴드는 Third eye blind 였고, 그들의 앨범을 여러장 갖고 있지만 데뷔앨범이었던 동명의 'Third eye blind'를 가장 좋아한다.


https://youtu.be/rE1oIhSgTgI?si=k3slqTy-f2EBcJ6L

Third eye blind - How's it going to be


지금보면 뮤직비디오는 좀 촌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 감동은 여전한 것 같다. 놀라운 것은, 나는 이들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지금 처음 본다는 것이다. 이제껏 자쳇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을 뿐, 공연을 본다거나 공연 영상이라도 볼 기회가 없었기에 그들은 내게 소리로만 존재했었고, 그것도 내게는 충분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때 좀 특이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음악취향은 긴 머리에 화려한 화장, 강렬한 카리스마의 X-Japan이나 무한히 반복되는 Paul Van Dyk같은 트랜스 음악이었다. 일본문화에 대한 끌림은 한동안 계속되었던 것 같다. 많은 일본만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종말을 덤덤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카페알파'와 같은 만화는 내 정체성과 삶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수없이 읽고, 지인들에게 전체 시리즈를 선물로도 주었던 책들. 나중에는 표지가 좀 바뀌어서 출간되는데, 나는 이 이전 표지가 더 좋다.



대학교에 들어서면서 나는 나의 음악과 영화 경험에 관해 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인터넷이라는 것은 잘 모르고 살았던 나는, 대학교때 인터넷에서 (불법 다운로드였지만) 받은 파일을 통해 많은 음악과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달랐던 점은, 당시에는 음악이나 영화 자체보다 그것을 올리는 사람을 알게되고, 나의 취향과 맞는 사람을 발견해 그로부터 내가 좋아할만한 새로운 음악과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내게 가장 커다란, 그리고 독보적인 영향을 준 유일한 한 사람은 '맥거핀'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던 이였다. 실제로 몇번 만나기도 했지만 실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를 통해 나는 재즈를 알게되었다. 유튜브에 재즈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카페음악'류의 재즈나, 흑인이 연주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고전적인 재즈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자유롭고 넓고 깊은 세계의 재즈였다. 그것이 어떤 재즈장르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유럽쪽 음악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것은 내게 새로운 세계 이상이었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난청 때문이었는지 원래 성격이 그랬는지 알수 없지만, 평범한게 불편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왁자지껄 노는게 불편하고, 좀 소외되고 어둡고 남들과 다른, 특이한, 어쩌면 좀 변태적일 수 있는 세계에 끌렸다. 그런 맥락에서 대학교때 끌렸던, 굳이 그렇게 극단적일 필요는 없지만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성스러운 피', 혹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 같은데서 보여주는 세상 같은 것 말이다.



보통때는 사람들앞에서 숨겨야하는 나의 이런 세계에 대한 끌림은, 재즈의 세계 속에서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재즈의 세계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꼈던 감정들, 들었던 생각들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정상인이 될 수 있었다.



 당시 맥거핀에게 받은 음악을 나는 씨디로 구워놓았다. 늘 그에게 음악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음악가 이름을 기억한다던가 하는 노력은 하지 않았었다. 그는 매달 상당한 양의 새로운 음반을 구입했고, 그가 전해주는 파일 양도 상당했다. 그것을 다 듣고 내게 좋은 음악을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그가 주는 모든 음악이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충 파일을 받아놓고, 어느정도 구워놓고,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들으며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그는 홀연히 인터넷 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에게 연락을 해볼 노력을 했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그의 성격상 그렇게 홀연히 떠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이상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 내게 상당한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음악에서와 비슷한 방법으로 나는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는데, 예전에는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를 올리는 이를 발견하면, 그가 올린 다른 영화들도 다운을 받아서 볼 수 있었다. 그중에 '(피곤할때 피해야할) 고전명작방' 비슷한 이름이었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영화를 시대순으로, 감독에 따라, 배우에 따라, 혹은 장르에 따라 분류를 해놓고,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이름과 걸맞는 피곤할때는 피해야할 고전영화가 잔뜩 있는, 말그대로 영화 광산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1900년대 초의 영화부터 해서 영화 마니아라면 봐야할 유명 감독의 영화나 잘 알려지지 않은 소위 '예술영화' 등 다양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은 영화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1900년대 초의 영화를 보는 경험은 놀라웠다. 그것은 당시에도 100년도 전의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해놓은, 다큐멘터리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는 영화였다. 1950년대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에서 만들어진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런 영화들이 주는 영화 이상의 진실에 기초한 실제성은 내게 설명할 수 없는 멜랑콜리를 불러일으켰다.



영화 속에는 정말 다양한 세상이 있었다. 음악에서 만큼이나 영화에서도 나만의 세상을 발견해나갈 수 있었다. 파일로 받아서 뿐아니라, 직접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가서 보는 일도 많았다. 서울아트시네마나 그 옆에 있었던, 지금은 이대근처로 옮긴 (아직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름포럼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매주 찾아가던 극장이었다. 필름 포럼은,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당시 금요일 일이 끝나면 상영 프로그램을 알아보지도 않고 찾아가서 그 시간에 가능한 영화를 보곤 했다. 람이 적어서 어느 때는 완전히 혼자서 영화를 관람하는 일도 있었던 그곳, 겨울에는 중간에 난방을 멈추는 것인지 영화를 보다보면 점점 추위에 각성하게 되는 그곳이, 나는 종종 그립다.



나는 영화가 주는 새로운 세상에 푹 빠져들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예술'의 세상이었다.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예술에 대해 적은 "예술은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신호등 같은 것이다"와 비슷한 말이 기억이 난다. 음악과 영화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나는 그 세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진을 길을 선택한 게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나 내가 영화를 보던 파일박스 같은 곳들도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여러 OTT가 난무하는 지금은 내가 좋아하던 그 곳은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러면서 넷플릭스가 파일박스를 대체해가던 그 시긴에 맞물려 나는 결혼을 했고, 육아에 집중을 하는 사이 그나마도 내 기억속에 저장되어 있던 내가 좋아하던 음악, 영화들은 하나 둘 씩 희미해져갔다. 지금은 막상 음악을 들으려 해도 무엇을 어떻게 들어야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유튜브를 열면 검색어를 지정해야하는데, 내가 좋아하던 음악가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영화속에서 감동받던 그 복잡한 감정을 떠올려보려고 하지만, 제목도, 배우 이름도, 장면도 떠오르지 않는다.



또 한가지 상실의 원인은, 대학교 3학년 무렵부터 10년이상 운영해온 내 개인 홈페이지를 결혼하면서 폐쇄한 것이다. 10년이상의 내 사진, 영화 감상, 생각 등의 기록, 찾아온 사람들이 남긴 기록 같은 것들이 남아있던 곳이었는데, 점점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이젠 과거와 작별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서버비용등을 갱신하지 않고 그냥 사라지게 내버려두었다. 사실 나는 결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이전의 나를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육아를 하면서 내게 가장 힘든 점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나의 세상에 대한 상실이다. 나를 존재할 수 있게 해준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의 세계의 상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잊어버리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어버린다. 나는 좀 더 풍성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아이들을 돌보는 지금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 해야할 일, 하면 안되는 일을 지정해주는 교관과 같이 따분한 사람일 뿐이다. 로봇처럼 '이거 해야돼' '그건 안돼'라는 말을 반복할 때면 화가 날 때가 있다. 영혼 없이 껍데기만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 같은 시간. 나조차 잊어버린, 음악과 영화속의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즐기던 예전의 나는 누가 기억해줄까.



육아 속의 우울감은 이러한 '기억상실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다시 '찾는' 노력, 나를 다시 '기억해내는' 노력을 해야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해내야 한다. 그래야 나는 이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내 기억속에 남은, 내가 좋아하던 재즈음악을 링크해본다.



https://youtu.be/fMwa12fc4-A?si=6oQI2miiEQxQHlXl

Rigmor Gustafsson - Winter doesn't end


맥거핀에게 받은 음악 중에 정말 좋아해서 많은 들었던 곡 중 하나. 근데 씨디로 구워서 듣느라 제목도 음악가 이름도 모르고 멜로디만 알고 있던 곡인데. 정말 어렵게 찾았다. 외장하드엔 씨디로 구운걸 다시 파일로 만드느라 Audio Track 4번으로 되어있었고.. Shazam이라는 핸드폰 앱에 들려주어 찾을 수 있었다. 사운드헌트로는 잘 안되었는데.. 이제야 이 곡을 누가 불렀는지 알게되었다..



https://youtu.be/1vUY_CY0zag?si=nF8Y9fkoW4hwZ855

Ola Kvernberg - Liarbird


위에 적은게 음악가 이름이 맞나 모르겠다. 아마 바이올리니스트 같은데. 맥거핀으로부터 알게된 음악은 아니지만, 마음에 들어서 다행히 유튜브 재생목록에 추가해놓은 거라 언제든 들을 수 있다. 영원히 헤엄치고 싶은 재즈의 세계이다. 노르웨이 음악가 같은데, 종종 마음에 드는 재즈음악가가 노르웨이 사람인 걸 발견한다. 나중에 노르웨이에 음악기행 같은 것을 떠나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맥거핀이 사라진 세상에서 내가 그나마 좋아하는 재즈음악을 발견할 창구로 겨우 찾은 곳이다. 바로 Soma FM의 Sonic Universe다.

https://somafm.com/sonic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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