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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Dec 15. 2023

나는 어떻게 채식주의작가 되었나

라면먹는 채식주의자의 고백

내가 내입으로 말하기도 멋쩍지만 나는 사실상 채식주의자다. '주의자'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좀 강한거 같아서 채식인이라고도 하겠다. 여튼 나는 2021년 8월부터 모든 육식을 끊고 채식으로 전향했다. (사실 그 사이 고기를 아예 먹지 않은건 아니지만, 안먹었다고 해도 무방할정도의 소량이다.)


내가 나를 채식인이라고 하기 멋쩍은 이유는, 나는 40인생을 살면서 내가 한번도 채식을 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기를 특별히 좋아한 것도 아니지만 즐겨 먹었거니와 음식에 대해서 무엇보다 나는 채소의 팬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대학교때, 전에 어느 글에서 언급한 나와 생일이 하루 차이나는, 나는 라이벌로 생각하기도 한 선배이자 친구가, 자존감 높은 태도로 채식을 하는 모습은 내 기억속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식사자리에서 육류를 거르고자하는 그녀의 태도는 당당했고, 그녀에게 채식을 해야하는 당위성이 너무도 단단해보였다. 나는 그게 참 멋있어보이기도 했지만, 나와는 먼 일이었다.


그런 내게 나의 인생을 바꿔놓을만한, 개인적으로는 큰 위기가 발생하는데, 바로 내 배에 5센치가 넘는 크기의 종양이 생긴 것이다. 종양을 발견한 것은 둘째를 임신하고 얼마 안있어서이다. 누워서 배를 만져보는데 무언가 동그란게 만져졌다. 산부인과 진료를 볼 때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초음파에서도 동그란 덩어리가 보인다며 외과를 찾아가 진료를 받아보라고 권하셨다.


그뒤에 대학병원까지 찾아가 임신한 배를 찔러서 조직검사도 받아봤는데, 악성이 아니라는 것과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애매한 진단만 들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그때는 임신 중이라 더 커지거나 통증이 없기를 바라며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양은 커지지 않았지만 작아지지도 않았다. 산부인과 담당선생님은 제왕절개를 하면서 종양을 떼어내는게 가능하다면 시도해보겠다고 하셨지만, 절개부위와는 멀어서 하지 못했다. 나중에 따로 수술로 떼어내기로 하고 또 다시 시간은 흐른다.


당장 아이가 나온 상황에서 24시간 아기에게 묶여있기에 수술을 받으러 가는게 불가능했다. 수술을 받는다면 최소한 며칠은 입원을 해야할텐데 모유수유를 하는 와중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종양이 커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 단유까지 기다리며 1년 2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젖을 끊을때가 되기도 했고, 종양을 발견한 이후로 거의 2년이나 지나버렸기에 이제는 본격적으로 해결을 해야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단유를 하고, 비교적 큰 외과병원으로 진료를 받고 CT도 찍어보았다. 종양은 여전히 5.5센치 크기로 그 자리에 있었다. 배 안쪽이 아니라 배 바깥쪽의 근육에 묻혀있는 상황이었는데, 의사의 말로는 재발을 막기 위해 종양의 크기보다 더 많이 잘라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배가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늘어나지 않는 무언가로 배 근육을 잡아놓아야 한다고 했다.


환공포증이 있는 사람으로서 뱃속에 5센치 이상의, 지름 7센치? 혹은 그 이상의 구멍이 생긴다는게 우선은 너무 꺼림직했다. 그리고 당시에도 셋째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혹시 근육이 벌어지지 않게 붙잡아 놓는다면 임신을 다시 할 경우 배가 불러올 때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의사에게 이 부분을 물으니, 마치 선택은 당신의 몫이라는 듯 "걱정되면 셋째 낳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이 의사도 종양의 정체는 모른다고 했다. 악성은 아니지만 재발을 할수도 있다고도 했다. 의사는 종양을 어떻게 줄어들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못했다. 그가 아는 것은 오히려 떼어내는 방법이었고, 그것이 나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구체적으로 아는 것 같지도 않고, 관심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이런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마음에 드는 답변을 줄 의사를 만날 때까지 찾아다닐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때 내게 그럴 여력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에 아이들은 둘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내가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라, 매번 누군가에게 맡기며 병원을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2년 넘게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통증도 없는 이 종양이라는 녀석은, 어쩌면 내 몸에 어떠한 해를 가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책을 찾아보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보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암 치유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었다. 내 종양이 암은 아니지만 비슷한 방법으로 접근하면 될 것 같았다. 암을 수술하지 않고 치유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식이요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바꿈으로 해서 질병에서 벗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제일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녹즙'이었다.


먹는 것으로 몸을 건강하게 한다는 데에 내가 수긍이 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나의 종양이 먹는 것 때문에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였다. 내 몸에 예전엔 없던 종양이 생긴 이유는 분명히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 몇년간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출산을 한 것 이외에, 출산하면서 나는 우유를 '너무나도' 많이 마신것이 기억이 났다. 영양플러스를 받으면서 우리집엔 늘 차고 넘치게 우유가 있었고, 건강을 회복하려면 하루한두잔 우유를 마시라는 권고를 나는 너무도 착실하게 따랐던 것이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듯,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체질이다. 20대에 거의 처음 우유를 마실때는 뱃속에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출산 이후 우유를 마시는 것도 속이 편안하진 않았지만, 계속 마시니 적응이 되는 것도 같았다. 건강을 회복해야한다는 열망은 무엇이든 소화시킬 수 있을 것처럼 열성적으로 우유를 마시게 했다. 우유가 내 종양을 만들어냈는지는 알길이 없다. 하지만 먹으면 늘 속이 불편했던 식품이 내 몸에 좋을리는 없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채식에 관한 책 중에 가장 강렬했던 것이 고 이문현 회장의 '난치병혁명'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은 녹즙과 채식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 정도가 아닌 질병을 치유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치유방법은 비교적 상세히 나와있었고, 다양한 치유사례도 있었다. 그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무엇보다도 야채가 주는 좋은 성분을 익히지 않은 신선한 상태에서 먹어야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녹즙이며 현미 생채식이었던 것이다. 생으로 먹어야 하는지 이유는, 야채는 익히는 순간 좋은 영양소가 파괴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의 내용으로만 보면 맞는 말인지 아닌지 알길이 없었다. 내가 직접 시도해보고 내 몸의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는 수밖에.


그게 2021년 8월이었다. 녹즙기를 구입하고, 밥은 현미로 바꾸었다. 시어머니댁에서 몇달 머무르던 때라 텃밭엔 싱싱한 오이가 늘상 주렁주렁 열리던 때였다. 매일 신선한 채소를 따서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녹즙은 당근을 위주로 하고, 거기에 오이 등의 남는 야채들을 추가했다. 과일도 많이 먹고, 육류와 익힌 음식, 맵거나 조미료가 들어가거나 기름진 음식도 걸렀다. 다만 현미는 생쌀로 먹기를 추천했으나 거기까지는 적응하지 못하고 쌀은 익혀 먹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식사를 바꾸니 한동안은, 생각보다 오랜시간 몸은 힘들어했다. 이것을 책에는 명현현상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나쁜 것이 몸에서 제거되고 좋은 것에 적응하면서 나타나는 몸의 반응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명현현상을 꽤나 길었다. 녹즙과 채식을 시작하고 1년 넘게 내 아랫배는 생리통을 앓는 것마냥 알싸한 경우가 많았다. 심하진 않지만 지속적인 복통이 있었기에, 나는 내가 다른 질병이 있는 건 아닐지 걱정에 시달려야했다. 아랫배가 아프니 대장암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육식을 끊은 초반에는 어지럽고 몸에 힘이 없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다. 몸이 날아갈 것 같고 건강해지는 느낌은 사실 별로 받지는 못했다. 그랬더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권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련스럽게도 채식과 녹즙을 지속했다. 다양한 채소를 먹으며 생채식 분야로치면 권장할만한 채식을 한 것은 아니어도 녹즙을 하루 두잔이상씩 꾸준히 마시고, 식사는 대부분 현미밥과 생야채였다. 2년을 거의 그렇게 지속해온 것은 엄청난 노력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녹즙을 마시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야채를 씻고 갈리기 좋게 자르고, 나는 씨앗이 좋다고 해서 다섯가지 불린 씨앗을 함께 갈아서 녹즙을 내리는데, 내 녹즙기가 씨앗즙도 갈 수 있는게 아니기에 잘 갈리지 않아, 갈린 찌꺼기를 다시 넣어 두번을 갈아야 했다. 이 과정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준비부터 갈기까지 매일 30분을 투자해야하는 일이다.


그뿐 아니라 마시는 것도 시간이 든다. 자주 내리기가 번거로워 한번에 6-700미리리터 정도를 내리는데 한번에 마시기엔 불가능한 양이다. 한시간 이상에 걸쳐서 나누어 마시고, 마시고나면 금방 화장실에 가야하기에 녹즙을 마시는 시간동안에는 길게 외출하기도 어렵다.


만들고 마시는데도 번거롭고, 몸에는 특별히 나아진다는 느낌도 없는 것을 나는 왜 2년 넘게 하고 있는 것일까? 내 몸 자체에는 눈에 띌만한 변화는 없어보였는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녹즙과 생채식은 소화가 잘된다는, 그냥 잘되는게 아니라 '아주' 잘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육식을 다시 해보면 알게 다. 고기 뿐아니라, 내가 끊었던 것들, 매운음식, 조미료 들어간 음식, 튀긴음식, 밀가루 음식 등 건강함과 먼  음식을 먹어보면, 소화가 잘 안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몸에 잘 받지 않기에 나는 계속 고기를 잘 먹지 않고 채식을 지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가 우려하던 명현현상도 어느새 없어졌다. 참으로 오래도 걸렸지만 이제는 어지럽지도 않고, 허한느낌도 안들고, 배도 아프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1년 전쯤엔가 다른 검사를 받으러 산부인과에 갔을때 종양의 크기도 체크해주셨는데, 3센치 정도로 많이 줄어 있었다. 의사는 초음파로 보는 크기는 정확하지 않기에 실제로 줄은건지는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셋째를 임신하고 있는 지금 초음파를 보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임신 전까지만해도 손으로 만져졌기에 아예 없어졌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초음파에도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무의미한 크기로 그것은 줄어들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채식을 결과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순전히 뇌피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2년이상 채식을 지속해오던 나를 문득 돌아보니, 삶의 꽤 많은 부분에서 대학시절의 그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아 썩 유쾌하진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유를 따라 여기에 이르렀을 뿐, 내길이 다른 누군가와 교차가 된다해도 그게 오리지널인지 아닌지 의구심을 품을 이유가 있으랴. 단지 그녀와 내가 닮은 데가 많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현재 나의 채식은 벽에 부딪혀 있다. 특별히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채식이 계속 지속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고기도 야채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탄수화물을 좋아한다. 빵을 좋아하고 면을 좋아한다.  식사시간이면 고기가 먹고싶은 것은 아니어도, 나는 면을 포기할 수가 없다. 내가 거의 매일 먹는 것은 라면이다.


채식주의기 때문에 구색을 맞추려 야채한가지를 넣어서 끓이긴 하지만 말이다. 채식주의라 그냥 라면이 아니라 비건라면을 먹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라면을 먹는다. 라면이 고기를 먹는 것에 비해 얼마나 더 건강할것인가. 더구나 나는 임신중인데.


그렇다. 나는 라면먹는 채식주의자다. 라면뿐아니라 칼국수, 잔치국수, 스파게티 등 온갖 면을 좋아한다. 다만 입덧 중에 다른 면은 잘 안땡기기에 요즘은 라면만 먹고 있지만 말이다..


내가 언제까지 채식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이상적인 식사와 맛있는 식사사이에 나는 늘 고민을 거듭한다. 나의 식사가 다른 이들보다 건강한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도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건강하게 해먹이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고기를 주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해줄 수 있고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해줄 뿐이다. 사실 나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어떻게 먹는 것이 정말 건강한 것인지를.


한가지 확실한 점은, 나는 앞으로 남은 삶 동안 이 고민을 안고 살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먹는 것이 건강한 것일까?" 가장 건강한 것을 먹고 살지 않아도, 확실히 건강에 나쁜것을 거르고 산다면 적어도 우린 적당히 건강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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