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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bolee Dec 24. 2023

왜 안 돼? 내가 입고 싶은데!

내 몸은 얼마나 자기 검열을 받아왔는가.  

173kg에 49킬로. 프랑스에 온 지 한 달 만에 얻어낸 쾌거는 중학생 때 이후로 볼 수 없었던 몸무게 앞자리 숫자 4를 만난 것이었다. 코로나가 끝물이던 시기에 프랑스에 왔던 나는 타향살이 2개월 차에 코로나에 걸렸다. 처음에는 현기증이 조금 나나 싶었던 증상이 당장이라도 눕지 않으면 바닥으로 고꾸라질 거 같은 증상으로 심화가 되면서 이거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나선형 계단의 손잡이를 붙잡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3층까지 올라온 나는 공용 화장실에 가서 설사와 토를 하고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죽은 듯이 하루가 지나고 뭔가 심상치 않아 한국에서 가져온 자가 테스트기를 사용했다. 희미하지도 않고 선명한 두 줄. 그렇게 일주일 간 오렌지 주스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했다. 두 다리를 바닥에 딛고 설 수 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몸무게를 재는 일이었다. 앞자리 수가 바뀌어있었다. 49킬로.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 보는 숫자. 내 키 172에 48은 어쩌면 적색경보가 울릴만한 숫자였지만 나는 쾌재를 불렀다. 아싸. 살 빠졌다! 



기세에 힘입어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계속 열심히 식이도 하고 운동도 하고 거의 살 빼기 위해 하루를 살아갔다. 매일이 좋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행복했다. 거울을 볼 때 가장 행복했다. 군살 없는 몸매가 최고의 미덕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잘했다고, 예쁘다워 보였으니까. 파리 시내에 나가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었다. 크롭탑만 입었다. 선명하게 새겨진 복근과 아무리 허리를 굽혀도 잡히지 않는 뱃살이 나의 숨통이었다. 나는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거식증이 나를 서서히 찾아올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지하철에서 쓰러졌다. 눈을 뜨니 나의 팔다리를 주무르는 할머니와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저씨가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역 관리인들이 왔다. 나에게 걸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고 걸어봤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말하면서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물 한 병을 달라고 했다. 그들이 건네준 수돗물이 든 구겨진 페트병을 받고 몇 모금 마신 뒤 나는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피검사를 하고 철분제를 먹고 이런저런 약도 먹었다. 그 뒤로 초콜릿 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야만 조금 힘이 났다.  한국에서 닭가슴살만 먹던 내가 그제야 파티시에의 나라의 정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달콤한 디저트가 주는 행복을 알아가면서, 신이 났고 동시에 두려웠다. 이래도 되나? 케이크를 한 입 먹고 토를 하거나 미친 듯이 뛰고 저녁을 걸렀다. 가차 없는 형벌에도 끊을 수 없는 입맛에 얄팍했던 배에 두툼한 살점이 붙었다.  앉아있으면 허벅지 위로 살짝 얹히는 뱃살이, 잠시 1년 숨어있던 존재가 잘 지냈냐며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가져왔던 옷과 정반대의 옷을 사야만 하는 상황 덕에 배를 감추기 위한 펑퍼짐한 바지와 긴 상의를 사고 또 사면서 옷장은 만원 상태였다. 


그 지옥의 문을 열 시간이 왔다. 6개월 간 집을 비울테니 옷 정리를 최대한 해놓아야 마음이 놓일 거 같았다. 옷장을 열고 헤집기 시작했다. 마무리하기 위해 옷장을 헤집었다. 덜어내고 덜어냈다. 지금으로서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었다. 사이즈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건 그때마다 고역이라 냅다 눈을 감고 쓰레기통으로 내던지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짐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를 모은 봉지가 벌써 두둑하다. R을 다급히 불렀다. 당장 버려달라고 말했다. 


“ 보고 있으면 괴로워.” 


옷장 정리를 완료하고 런던에 가져갈 캐리어도 한결 가벼워졌다. 모든 게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캐리어에 넣었던 밤색 슬랙스를 꺼냈다. 기모가 들어서 꽤 따뜻하지만 이건 살이 찐 탓에 배 부위가 조여와서 근래 들어 통 입지 않는 거였다. 이걸 가져가면 짐일까 아닐까?  현관에 쓰레기봉투를 질질 끌고 가던 R이 부산스러운 나를 보고 묻는다. 

“ 나 내려간다? 버린다?”  
“ 아직! “ 


슬랙스를 입었다. 역시나. 복부가 꽉 조인다. 게다가 하이웨스트라 위장까지 눌리는 거 같아 매일 소화제를 들고 다녀야 할 것 같은 공포의 바지. 이게 이렇게 무서웠나? 뱃살을 만지작댔다. 아직은 조금 말랑한 걸로 보아 내장지방까지는 안 갔고 조금 러닝을 하다 보면 금세 빠질 거야. 요즘 식욕도 없어서 잘 안 먹기도 하잖아. 혼자 생각한다. 


“예쁘네. 난 좋아.” 


R이 말한다. 원래 사랑에 빠지면 뭐든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이니까, 색안경을 쓴 자네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네. 하지만 본성이 팔랑귀인지라 귀를 팔락이며 슬며시 용기를 내 거울 앞에 섰다. 앞모습은 그럴싸한데 옆모습을 보고 절로 웩 소리가 났다. 


“튀어나왔어. 그것도 볼록이 아니라 뽈록! 말도 안 돼” 


나는 왼쪽 오른쪽 돌아가며 모양을 살폈다. 바지를 벗어던졌다. 팬티바람으로 걸치고 있던 헐렁한 잠옷 상의를 올려본다. 선명했던 11자 복근이 사라졌다. 이제는 정말 흔적도 없다. 그래도 최소한 한 달 전까지는 아주 희미하게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보였단 말이다! 머리로 계산을 했다. 내가 프랑스에 온 지 1년 반이 되었으니까 6개월을 잘 유지했는데, 1년 만에 원상복귀가 된 것이다. 몸무게를 쟀다. 57킬로가 됐다. 이경규가 나와서 몰래카메라였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한때는 58킬로만 돼도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보다 가벼운 무게여도 좀처럼 흡족스럽지 않다. 버림받을 것만 같은 공포에 손과 발 끝이 시려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왜 이렇게 뚱뚱해?라고 말하자 R이 말한다. 아니야. 너 하나도 안 뚱뚱해. 그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도 한때는 깡말라 인간이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지를 결국 가방에 넣었다. 기모 바지라고는 그거 하나였으니까. 앞으로 런던에 가서 어차피 제대로 밥을 못 먹을 테니 살이 더 빠질 거고 한 달 정도 지나면 편안하게 입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 이거 왜 버려?” 


이제야 진짜 쓰레기를 버리려고 현관을 나서던 R이 말했다. 쓰레기봉투 맨 위에 있어 눈에 띌 수밖에 없던 옷을 꺼내 내게 보여준다. R과 만나던 초기에 자주 입던 크롭 흰색 니트다. 안 예쁘니까,라고 대답하자 R이 나는 좋은데 하고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입으면 배가 드러나. 사람들이 쳐다볼 거야. 이제는 못 입어.” 


내 말을 들은 R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별 말없이 봉투를 들고나갔다. 상황이 달라져서,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때는 맞으니까 자주 입었다, 맞아. 예뻤어. 그때는 말랐으니까. 그래도 됐으니까. 그럴 자격이 있었으니까. 한국에서 사 온 그 옷을 한국에서 한 두 번 입었을 때 나는 나를 쳐다보던 모든 시선들을 몸으로 기억한다. 모두들 소리 없는 동의를 해 보였다. 음, 괜찮아. 입어. 너는 입어. 말랐으니까 입어도 돼. 그렇게 이곳 프랑스에 와서도 자주 입었다. 내 얼굴에 잘 받는 색이었고 정확히 11자 복근이 보이는 지점에서 커팅이 되어있어 은은하게 몸매를 자랑할 수 있었다. 아무렴 1년간 식단에 운동에 공들여 가꾼 몸매인데. 보여줘야지, 썩혀서 뭐 해? 하는 생각으로 파리의 이곳저곳을 뽈뽈 거리며 돌아다녔다. 더 깊이 생각해 본다. 그때  그런 짧은 기장의 옷을 입은 사람이 나 하나뿐은 아니었다. 거리의 수많은 이들이 입었었다. 그들이 말랐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안 본 것이었다. 그들의 옷을 봤다. 예쁜 옷에 눈길이 갔다. 어디서 샀을까? 잘 어울리네.라고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나도 그들을 단죄했을까? ‘보는 눈도 생각해야지’라는 폭력적인 언사를 속으로라도 했을까?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나는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었음을 인지했다. 여기는 프랑스였다. 여기서는 나는 나에게도 그리고 남에게도 그러한 잣대를 드러내지 않았다. 이 많은 물건들에 짓눌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거대한 미로에 갇혀 울었지만 희망을 버리는 건 싫었다. 그 흰색 크롭 니트. 그건 추억이 깃들었고 해방의 역할을 했었다. 그걸 잊었다. 뱃살에 대한 집착으로 그 옷을 삭제했다. 


“미안해. 생각이 바뀌었어.”


건물 0층 쓰레기장에 버리고 빈손으로 집에 온 R을 보자마자 그에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흰색 크롭 니트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그는 웃었는데 왼쪽 손에 옷이 들려있었다. 뭐야. 내 말을 안 들었네? 반사적인 생각이 입 밖에 튀어나갈까 봐 자제하느라 혼났다. 


“뭐야? 쓰레기 봉지에 넣은 건데.”
“나는 너를 알아. 너 이 옷 좋아하잖아.” 


나는 옷을 받아 들고 냄새를 맡는다. 쓰레기 냄새는 안 배었다. 다행이다. 이 옷도 캐리어에 넣었다.  입을지 안 입을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넣는다. 여전히 나는 '군살하나 없는 몸매'를 욕망한다. 배를 문질렀을 때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입어도 됐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란 건 확실하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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