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34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성경 구절에서 일상의 언어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감동을 받는다. 온갖 미디어들이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언하며 불안을 재촉하고, 그 재촉을 좋아요와 구독으로 연결 지으려는 이 시대에, 2천 년 전에 쓰인 성경의 한 구절은 전혀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미디어들은 떠든다.
'내일을 염려하고, 내년을 염려하고, 노후를 염려하고, 죽은 뒤를 염려하라'
라고.
생각해 보면 나는 내일에 대해서, 그게 온다는 것을 제외하면 자신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유튜브와 뉴스 헤드라인을 장악한 사이비 예언자들을 물리치고 오늘 점심 메뉴, 저녁 약속,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바라보려 한다.
일요일. 나는 지금 거실에 놓인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월요일인 내일은 교무실에 앉고, 또 교실에 서서 분필을 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순간의 경험과 감정은 무엇이 될지 지금은 아무리 상상해도 알 수 없다.
내일 잡을 분필이 아니라, 지금 내 손끝에 닿아 있는 키보드의 질감에 집중하고, 마우스의 딸깍거림에 귀기울이고, 창밖에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분주함을 엿보아야겠다. 그리고 내일 올릴 글이 잘 다듬어졌는지 한번 더 살펴봐야겠다.
휘몰아치는 유튜브 영상의 편집이 아니라, 내 호흡에 따라 넘겨지는 책을 읽어야겠다. 오래 전에 사서 책꽃이 한 켠에 놓아 둔 소설책을 집어 들어야겠다. 압도하는 시각의 자극이 아니라 언어의 묘사를 영상으로 바꾸어 스스로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렇게, 일요일 한 낯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