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짖궂었으면 좋겠어.
'교실붕괴'라는 말이 유행한 때가 있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엎드려 자고 있는 풍경을 묘사한 말이었다. 경쟁 중심의 교육이 만든 피해 학생들이다, 학교 수업의 질이 낮아서 그렇다, 밤에 학원을 다니느라 그렇다, 교사의 권위가 추락한 결과다... 심지어 '공부해서 뭐하냐'라는 말 까지, 이에 대한 해석도 참 다양했다. 지금은 붕괴된 교실이 재건(?)되었을까. 안타깝지만 붕괴된 교실 풍경은 여전한 것 같다. 여전히 학생들이 잠자고 있다. 하지만 잠의 질이 다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처음으로 교실 붕괴라는 현상이 일어날 때 나는 학생이었다. 아마 붕괴된 학교의 한 조각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누워있지는 않았지만, 길고 긴 학교 생활에 지쳐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잠자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거짓말처럼 일어나 단 10분 만에 매점도 가고, 옆반 교실도 가고 복도를 뛰어다니며 모아두었던 에너지를 방출하곤 했다.
오늘의 교실은 다르다. 수업시간에 붕괴의 한 조각을 담당했던 학생들 중 상당수가 쉬는 시간에도 같은 모습이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지도, 다른 반에 가지도 않는다. 심지어 체육대회나 축제 처럼 들뜨는 행사가 있는 날에도 마치 100년은 된 느티나무처럼 자리에만 앉아 있다.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져 있고 휴대폰 화면 속에는 릴스나 쇼츠, 또는 게임 화면이 어지럽게 띄워 져 있다. 딱히 불만도 외로움도 느껴지지 않는, 교직생활에서 처음 만나 보는 아이들. 뭐라고 해야 할까. '새로운 붕괴의 파편'이라고 하면 될까. 이 아이들을 꿰뚫는 말이 하나 있다면 단연, '무기력'이다. 그것도 '강한 무기력'.
잠과 휴대폰 사이만을 오가던 아이들을 가끔 불러서 이야기를 해 본다. 대화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휴대폰을 들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집어 넣는 아이들. 그래도 다행히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화할 때의 예의는 지켜 준다. '밤에 무얼 하냐', '누구와 친하게 지내냐', '점심때 밥은 먹냐'... 이 세 가지 정도가 단골 질문이다. 대부분의 무기력한 아이들이 '휴대폰을 하거나 아무것도 안 해요', '딱히 친한 친구 없어요', '점심 잘 안 먹어요'라고 대답을 한다. 이 세 대답 사이에 어떤 심리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대답이 이렇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무얼 할 거냐.'라는 질문에는 대부분 '잘 모르겠어요'가 돌아온다. 미래는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도 내 진로를 모르겠는데, 학생들이라고 뭐가 다를까. 하지만 이 학생들의 '모르겠어요'는, 다른 학생들의 '모르겠어요'와는 느낌이 다르다. 무기력한 학생들에게 던지는 미래에 대한 질문은 마치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에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 모양새다. 일단 시동을 걸고 세상을 보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
요즘 학교에는 '에듀테크'라는 말이 유행이다. 학생들이 스마트기기에 익숙한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이기 때문에 학교 교육도 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에듀테크의 핵심 논거다. 그 현실적 적용은 이런 식이다. 학생들이 직접 말을 하는 것을 어려워 하기 때문에, 교실 앞에 있는 큰 화면에 패들릿같은 걸 띄워 놓고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생각을 쓰게 한다는 식이다.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 하지만 이 수업에서도 (내 경험일 뿐이지만)무기력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쓰지 않는다.
오늘의 무기력은 무겁고 수동적이다. 말하거나, 걷거나, 뛰지 않고, 보거나 듣거나 잠을 잔다. 과거에 수학과 영어와 국어에 흥미가 없어서 눈을 감던 학생들과 쇼츠나 게임 같은 메타버스 속으로 이주해버린 오늘날의 학생들은 전혀 다른 존재다.
학교는 지금 또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중이다. 이들과 새로운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그리고 갈 곳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