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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게 휴식을 허락하기

걱정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발가락에 집중해보자

by 소소인

2월 초의 하루.


거실에 앉아 눈내리는 창밖을 보며 글을 쓴다. 람에 날려 휘몰아치는 거실에서 보면 아담한 풍경이다. 미끄러운 눈 위의 조마조마한 출근, 운전중에 날아오는 버스를 놓쳤다는 연락, 지각생 처리 회의가 없 아침.


2월 초의 한낮. 거실에 앉아 좋아하는 차를 마시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분명 큰 혜택이다.


교사들은 12월이 아니라 2월이 연말이고 3월이 연초다. 2월 초에 1년 농사가 마무리되고 3월에 새로운 1년이 시작된다. 회사들에서는 12월 말에 종무을 하지만 학교는 졸업식을 치르는 2월이 종무식이다.


한시도 조용하지 않았던 학교에서 빠져나와 고요한 거 실에 앉아 하고 싶었던 말을 글로 쓰고 듣고 싶었던 말들이 담긴 글을 읽어 본다. 아, 어떤 이야기가 읽고 싶었더라. 어떤 영화가 보고 싶었더라.. 1년동안 가졌던 어려 '싶었더라'의 목록을 들추어 보면서 지금 해볼 수 있는 것들을 골라 본다. 막상 들여다 보니 떡히 2월이라 해서 할 수 있어진 일들도 별로 없다. 그래도 괜찮다. 어지럽게 날아드는 눈바람을 직접 맞지 않으며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거면 됐다.


마음 한켠에 두려움이 생긴다. 이 휴식이 곧 끝날거라는 생각. 그리고 곧 새로운 1년이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 작년에 저질렀던 실수들, 부족함들이 올해에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거라는 두려움. 매 년 다른 모습인 학생들 앞에서 새롭게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무엇보다 이제는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내 수업이 두려움의 발원지다. 내 수업은 항상 같은 표정을 짓는 교과서와 매일 달라지는 아이들 사이의 어딘가에서 끝없이 방황한다. 올해에는 어디 쯤에서 헤메이고 있을지, 걱정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가득하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면 잠시나마 이 두려움이 사라질까.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계획과 여유는 없다.


어떤 책에서 두려움은 선사시대 인류의 생존 전략이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미래의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거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한 전략.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 멸종했을 거라며, 당신이 느끼는 그 불편한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위로. 불안과 두려움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게 해서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그럴듯한 격려까지.


어렵지만 두려움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해보기로 했다.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맨발의 감촉을 느껴보기로 했다. 눈이 이렇게 오지만, 거실에서 노트북을 두드릴 수 있잖아. 공문도, 학습자료도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잖아. 책꽃이에는 내가 읽으려고 사모은 책들과 우리 집 아이의 동화책들 뿐이야. 조용한 거실의 공기와 맨발의 감촉에 집중해보자.


두려움을 잠시 잊자. 맨발의 감촉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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