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 연수에 다녀와서
이틀간 교육청에서 주관한 영재교육 연수에 다녀왔다. 카이스트 영재교육원에 계신 교수님을 비롯해서 현직 교사까지, 영재교육에 관한 일을 하고 계신 다양한 분들이 오셔서 유익한 강의를 해 주시고 연수에 참여한 여러 선생님들과 직접 PBL(프로젝트 수업)형식의 수업을 설계해 보는 시간도 가져보았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인문사회팀을 구성해 주셔서 감사하게도 나에게까지 참여의 기회가 주어졌다.
일반적으로 '영재'라고 하면 대부분 영재 발굴단 같은 TV프로그램에 나올만 한, 정말로 특출한 0.1%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영재교육 기관이나 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영재들은 대부분 학업 성취가 상대적으로 우수하거나 특정 분야에 깊은 흥미와 호기심을 가진 학생들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앞으로 영재교육의 방향은 이런 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장되지 않을까 한다.(바람이 섞인 전망)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영재의 개념을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 한정해서 보는 경향이 크다는 점이다. 여기에 음악이나 미술, 체육을 비롯한 예체능 분야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수학이나 과학이다. '5살에 미적분을 풀고 있어요!'처럼, 기적적인 풍경들 말이다. 오늘날의 세상을 이 두 학문이 이끌고 있으니 교육에 대한 관심사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인문, 사회분야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걱정이 교차한다.
인문학은 '인간 이해'를 핵심에 둔 학문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응용도 종국에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과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과거에도 컷지만 오늘날에는 그것이 매우 의도적이며, 적극적으로 추구되어지기 때문에(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과학을, 기업들을 중심으로 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사고와 이해는 과학을 탐구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소크라테스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의 철학 사조를 일일이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지, 왜 인간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며 그 방법은 무엇인지와 같은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 여러가지 주장들과 증거등을 가지고 탐구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가 공동체의 지원으로 길러준 영재성이 그 개인과 더불어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도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껏 계발한 영재성이 인간을 해치는 쪽으로 사용되거나 개인의 이기심만을 위해 발현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비도덕한 엘리트를 육성하는 일에 다름 없다.
과거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매우 뛰어난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히틀러의 독일이 자행한 학살과 전쟁에 필요한 과학기술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제공했다. 그 과학자들은 뛰어난 물리학자이자 생명공학자였고, 지금의 용어로 치면 수학, 과학 영재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졌던 인간에 대한 관점은 인종주의와 파시즘이었다. 이들에게 다른 민족들은 지구상에서 제거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공동체의 붕괴가 매우 빠른 나라에 속한다. 아파트나 빌라처럼 이웃과 단절된 생활공간, 결혼과 출산의 감소로 인한 1인가구의 증가. 물리적 환경과 사회구조적 변화가 모두 가족과 이웃의 해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영재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영재성을 어떻게 발휘하는 것이 좋을지. 그 자신과 우리 공동체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인문학인 요소가 꼭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영재들이라면 공동체의 회복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또 그것을 구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