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에 실패하고...
새 식구가 생겼다
지난 봄..
고양이 한마리가 다녀갔다.
오래 같이 살 줄 알았는데
우린 처음이었고
부족했다.
결정은 남편이 먼저했다.
데려온 곳으로
다시
데려다 주자고 했다.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울었다.
눈물속에 절망이 담겨 떨어졌다.
절망감.
실패했다는 절망감.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책임감.
고양이 키우기가 무슨 프로젝트도 아니고
데려온 고양이를 데려다 주는 게
며칠을 심난해 할만큼 어려운 일인 것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절망감 실패감 해내지 못했다는 책임감이라니
내 감정에 내가 더 신기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아프도록 싫었다.
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이 그렁했던 것 같다.
어렵게 꺼낸 말에 남편이 놀리듯 말했다.
-너 여기서 울면 못난이다.. 어.. 진짜 울겠네.. 괜찮아.. 살다보면 실패할수도 있고.. 못할수도 있고.. 큰일 나는거 아니잖아.. 사랑하다 헤어지고.. 결혼해도 이혼하고.. 괜찮아.. 괜찮아..아이고 슬펐구나.. 내가 너 잘 데리고 살께.. 넌 나랑은 이혼 못하겠구나...
찔찔짜고 있는 내 앞에서
그가 놀리듯 웃었다.
아니라고,
실패하면 큰일 난다고.
실패는 더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고
실패는 상대방을 실망시키는 것이며
실패는 내가 엉망진창이라는 뜻이라고..
사랑하는데 어떻게 헤어지고
결혼했는데 어떻게 이혼하냐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처럼
나도 소리치고 싶었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내 앞에는,
10여년전 어느날
난 엉망진창이라며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 됐다며
전화기를 붙들고 생각을 퍼붓던 나에게
나즈막히 내 이름을 부르며
.. 괜찮아.. 괜찮아.. 너가 엉망진창이어도 널 사랑해.. 라고 말하던,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똑같이 괜찮아 괜찮아 말하면서...
그날밤 나는
실패가 싫었던 나를
실패가 절망이었던 나를
온 몸으로 안아주었다.
실패해도 괜찮아
엉망진창이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면서..
그렇게 나는
첫사랑에 실패했다
다시 말을 꺼낸 건 남편이었다.
..고양이 다시 데려오면 좋겠어?
기억이 잘 안난다.
그러자고 했는지
말자고 했는지.
기억하는 건
다시 사랑이 시작될 것 같은
기대감이었다.
남편의 말은
봄날, 흙속에서 발견한 새싹 같았다.
.. 응, 다시 하면 잘 할 것 같아.
어쩌면 그 순간 난,
실패했던 사랑을
떠나가던 그 사랑의 뒷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
.
.
'그리고 이 남자가 왔다'
시간이 좀 걸렸다.
공부하고 준비하고..
우리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과
우리가 원하는 것과
고양이들의 특징과
여러가지를 비교하고 따져봤다.
우리에게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고양이 품종을 찾고 브리더와 연락하고 몇날 며칠을 유투브를 보고 책을 읽고...
지난 금요일,
드디어 새 식구를 만났다.
하얀색 고양이,
털이 정말 부드러웠다.
손 끝에 만져지는 그 부드러움을 느끼며
이 고양이가 선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반지도 핸드백도 그 어떤 것도
시간이 지날 수록 기쁜 마음이 사라질거고
시간의 흐름을 당해내지 못하겠지만
고양이는 다르겠구나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또다른 기쁨을 알게 될거고
시간의 흐름을 타고 같이 흘러가겠구나
오늘과 내일이 다를거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기를 기대하겠구나
날마다 다른 모습을 만나겠구나
사랑이구나..
했다.
생명이 이런 거구나..
사랑이 이런 거구나..
좋은 선물은 이런 거구나..
그런 사랑을 하는구나
그런 선물을 받았구나..
했다.
..자기는 나에게
내가 모르고 살던 세상을 보여주는 구나.
자기를 안 만났으면 모르고 살았겠다
좋다고. 고맙다고. 그런 뜻이야..
남편에게 말했다.
첫사랑에 실패했기에
또다른 사랑을 만났다.
첫사랑은 부족했기에
또다른 사랑을 채워가고 있다.
실패는 여전히 쓰디 쓰지만
남기고간 선물이 꽤나 달콤하다.
남편, 고마워~
Hello, My new kit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