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입원기-6, 갑작스러운 고백 그리고 삼각관계(?)
내가 입원하던 날, 3호실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게 한 남자아이를 조심하라고 했던 일이 마침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그 아이는 내 주변을 맴돌다가 다가와 "우린 운명이야."를 시전 했다. 그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했다. 특정 유명인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하기도 하고, 눈만 보면 마음을 알 수 있다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맞추려고 했다. 눈을 보는 것 만으론 내 생각을 맞출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내가 아니라고 부정해도, 그 아이는 꺾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 아이의 생각으론 나와 그 아이가 타고난 운명이자 한 쌍이고, 이 병원을 나가서도 꼭 만나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예쁘다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가, 다른 환자들에게 나를 좋아한다며 나를 잘 지켜달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처음엔 병동 사람들 모두 그 아이가 조현병인줄 알았다. 자신의 세상에 너무 몰두해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친구가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에 그냥 내버려 두었고, (사실 조현병이 맞다면 같은 병동 환자들은 그 아이를 내버려 두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를 좋아해 주는 마음은 그저 병의 일환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별 탈 없이 친구처럼 잘 지냈다. 같이 탁구도 쳤고, 종이접기도 하면서 그 아이는 실제로 나에게 꽤나 의지가 되는 좋은 친구가 돼 주었다.
그러나 나의 인생은 그런 작은 에피소드 같은 것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간과했다. 같은 병동의 40세 여자 조현병 환자(A 씨)의 세상에선 A 씨와 그 남자아이가 한 쌍이었나 보다. 나는 그 사이에 낀 불청객이었다. A 씨는 그 아이를 바람피운 남자친구 취급했다. 나를 굉장히 질투해서 째려보거나 욕설을 하기도 했다. 그 남자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내버려 두기만 했지 그가 바라는 대꾸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한 번은 그 아이가 “나는 노력을 하는데 누나는 왜 노력을 안 해?”라고 서운함을 토로했는데, 나는 “내가 왜 노력을 해?”라고 대답해서 한동안 그 아이가 삐쳐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A 씨는 내가 계속해서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집적대는 사람으로 보였던 건지, 어느 날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대충 대꾸한 후 무시했다. 그날 밤, 일이 터졌다.
A 씨는 내게 갑자기 엄청난 욕설을 해댔고, 내 이성의 끈은 끊어졌다.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움이 벌어지려던 찰나, 간호사 선생님이 달려와 A 씨의 손목을 낚아채 진정실로 끌고 들어갔다. 정말이지 살면서 그런 스피드는 본 적이 없다. 나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께 이런 취급받으며 여기 있기 싫다고, 퇴원시켜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참,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삼각관계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