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물을 너무 사랑해서 전생에 물고기가 아니었을까, 진심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캐비닛에 붙어 있는 사진 속 나는 지금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린 얼굴을 하고 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채 밝게 웃으며 금메달을 이로 물고 있는 열여섯 살의 송윤아. 찰나의 영광이 십 년의 절망을 빚어냈다.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켠다. 모서리부터 타오르는 사진은 훌륭한 장작이 되어 불꽃을 일으킨다. 평생을 바쳤던 물과 정반대인 성질의 것. 그 낯선 것의 시작부터 사그라지는 마지막까지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봤다. 나는 물속에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불처럼 꺼지는구나.
예전부터 결정된 은퇴였기에 한숨은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수영복과 수영모, 수경 등을 제외하면 짐이랄 것도 거의 없었기에 크로스백은 가벼웠다. 수영장 밖으로 나갈 때까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일부러 사람이 없을 시간에 찾아온 것이니 다행이었다. 떠오르기 시작한 해가 서서히 세상을 밝힌다. 그 아래로 차들은 매연을 뿜으며 바삐 달려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발을 굴린다. 오직 나만이 제자리에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토록 바랐던 여유인데 달갑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캐비닛을 싹 비우고 나왔는데 자꾸만 잊어버린 물건이 있는 기분이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어서 바로 앞까지 가는 버스가 드물었다. 28분 남았다는 안내는 별로 놀랍지도 않아서 크로스백을 품에 안은 채 멍하니 도로 바닥을 노려보며 몸을 앞뒤로 살살 흔들었다. 어릴 때부터 가만히 있지 못하던 게 습관이 되었다. 엄마는 정신 사나우니 버릇 좀 고치라고 여러 번 호통을 치곤 했다. 그래놓고 자식에게 끝도 없이, 남들보다 빨리 움직여야 하는 종목을 시키다니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데 주머니에 진동이 울린다. 휴대폰을 꺼내 발신인을 확인하자 지금껏 무언가를 잊어버린 듯한 느낌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이제 오늘부턴 못 보겠네.’
‘잘 가. 그래도 넌 영원히 내 히어로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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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매니저를 하겠다 들어온 여자애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좋아했으며 경기도 직접 보러 다녔다고 했다. 수줍은 얼굴로 내게 다가와선 사실 나의 오래된 팬이라고, 내가 나오는 경기는 다 봤다며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다고 인사했다. 난 그 애가 내 모든 경기를 봤다는 사실이 껄끄러웠다. 그야 한 번의 금메달 이후, 경기 결과가 좋았던 날이 없었으니까. 나로서는 창피했던 나날들인데 그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게 기쁘진 않았다.
자기 이름은 김하연이고 나와 동갑이니 편하게 대해달라던 그 애는 매니저가 아니라 꼭 소개팅을 나온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서 나는 괜히 표정을 굳히고 난 친구 만들 생각으로 여기 있는 게 아니니 너도 네 할 일을 제대로 해달라는 못된 말이나 던졌다. 그 애, 하연이는 잠깐 상처받은 듯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이는 매니저로서 손색이 없는 애였다. 누구보다 일찍 수영장에 출근해 선수들 스케줄을 체크하고 코치에게 보고해야 할 연습 기록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재활치료 일정도 놓친 적이 없었다. 걔는 하다못해 운전도 잘해서, 걔가 모는 차를 타고 병원에 갈 때면 어딘가 몸이 나른해져 쉽게 잠들었다. 5년째 먹고 있는 수면제가 허무했다. 처음엔 텃세를 부리던 녀석들도 시간이 지나고서는 하연이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중 한 명은 걔한테 간접적으로 고백을 한 적도 있다던데 돌아오는 대답이 시원찮아서 아무래도 까인 거 같다고 말했다. 난 달리 해줄 말이 없어서 그저 녀석의 넓고 단단한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기만 했다.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은 탓인지 누군가의 시선을 알아차리는 데에 도가 텄다. 어깨가 결리듯이 무언가 신경 쓰여 뒤를 돌아보면 그 끝에는 항상 하연이가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티 나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아무래도 첫날 내가 했던 말을 의식한 듯했다. 몇 번 무시하다 나중에 가서는 연습이 끝나고 대기실에 나와 걔만 남았을 때 대놓고 물어봤다.
“나 왜 자꾸 쳐다봐.”
“그야 넌 선수고 난 매니저니까. 열심히 봐야지.”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거 아닌데.”
너도 의중을 알지 않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하연이는 그제야 고개를 푹 숙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냥… 네가 수영하는 거 직접 보는 게 신기해서. 매니저 시작한 지 한참 됐는데 아직도 신기해? 그 시절의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은퇴를 결정했기에 수영하는 내가 멋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게 뭐 좋다고 뚫어져라 보는 건지. 그러나 하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숨 쉬는 게 버거울 만큼 힘들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네가 금메달을 딴 경기를 봤어.”
물살을 가로지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네가 멋있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한동안 똑같은 경기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봤어. 단순히 재밌어서 이러는 줄 알았는데, 내가 너의 성취를 통해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어. 나도 너처럼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게 무엇이든. 너는 나한테 꼭 히어로 같은 사람이야, 윤아야. 그래서 아직도 네가 수영하는 걸 보면 가슴이 뛰어.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계절에 상관없이 팔토시나 소매로 가려져 있는 하연이의 왼쪽 손목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티끌 하나 없이 밝아 보여서 상상도 못 했는데. 나는 걔의 말을 듣고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내가 별 얘기를 다 하네, 아무튼 그냥 내가 너 팬이라서 그래. 부담스러웠으면 앞으로 안 그러도록 노력해볼게.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하연이를 껴안은 건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이 불편하지도 않은지 하연이는 꼭 이 순간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곧장 나를 마주 안았다. 나보다 한 뼘은 작은 손바닥이 내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주던 감각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치 그 애가 지금 날 안아주는 것처럼.
하연이는 내게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나 또한 왜 이러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우린 그렇게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서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떨어져 인사도 건네지 않고 나가는 나를 하연이는 질책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만났을 때도 평소처럼 웃으면서 말을 걸어줬을 뿐이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린 여전히 매니저와 선수라는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관계였고, 하연이는 잊을 만하면 남자애들의 수작질을 감당해야 했으며 나는 묵묵히 바닥을 향해 가는 기록을 보며 종결의 날을 기다렸다. 은퇴 결정은 감독과 코치를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연이에게도. 그래서 걔는 내가 떠나기 일주일 전이 되어서야 코치에게 전해 듣고 왔다. 물 위로 얼굴을 내민 채 수경을 위로 올리자 앞에 쭈그려 앉은 하연이가 보였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아무 말 없이 날 내려다보는 그 애가 낯설었다.
좌절, 분노, 동정, 그 애의 표정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이 빚어낸 감정은 상실감. 하연이도, 나도 말을 꺼내지 않았으니 우리 둘 사이는 정적이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까지 조용했던 적이 있을까. 세상은 늘 시끄러웠기에 그걸 피하고 싶어서 물에 들어갔다. 지금은 물에서 나왔는데도 지나치게 조용했다. 근데 어째서 반갑지 않을 걸까. 소음을 피하기 위해 귀가 아플 정도로 이어폰을 꽂고 다녔는데 오히려 하연이가 만들어 내는 소음이 듣고 싶었다.
하연이는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물에 손을 담그더니 불시에 내 얼굴 위로 물을 튀겼다. 눈에 들어간 탓에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감았다. 손으로 눈꺼풀 위를 거세게 문지르고 나서 다시 앞을 보았을 때 하연이는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저만치 가고 있었다. 성난 걸음걸이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동시에 왜 그런지 알 것도 같았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그 애가 매니저를 선택한 건 오로지 나 때문일 테니. 선택의 이유가 사라지겠다는데 화가 날 법도 했다. 그러나 하연이 때문에 결정을 번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리는 딱 그 정도의 사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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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본 순간부터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이미 두 대나 지나갔지만 전부 놓쳐버렸다. 우리는 그 날 이후로 말 한 번 섞은 적이 없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하연이가 날 일방적으로 외면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서운한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형식상 건네준 작별 인사를 그 애한테서는 못 받는 게 이상하긴 했다. 그 정도로 화가 났나,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했던 걸까. 생각해봤자 의미 없는 것들을 머릿속 한 켠에 가둬두고 겨우 나왔는데.
넌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을 전하고 싶었구나. 엄지로 천천히 하연이가 보낸 메시지 위 글자를 쓰다듬었다. 이제야 내가 저 수영장 안에 두고 온 게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