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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Sep 26. 2020

빈대떡과 막걸리, 그리고 빨간 장미

바람 불어 좋은 오월 어느 날

부산에 바람이 분다. 이틀 동안 내리던 비는 그쳤다. 오후에 밀려왔던 먹구름은 이내 바람에 밀려 멀리 물러났다.


'빈대떡에 막걸리 한 사발 어떨까?'

'코~ㄹ'


오후 늦은 시간 느닷없는 내 메시지에 후배 L이 흔쾌히 응했다. 사무실을 나서는데 직원 Y와 K는 사직구장에서 벌어질 거인과 호랑이의 야구시합을 볼 거라며 잰걸음으로 횡단보도를 총총 건넌다.


중앙역에서 전철을 타고 부산 초량 두 역을 지나고 부산진역에서 내렸다. 칠 년 전 옛 기억을 더듬어 좌천역을 지나 범일동 빈대떡을 파는 그 식당으로 갔다. TV 먹방 프로그램에 소개된 탓인지 식당 내부는 예전보다 더 넓어졌고 열 대 여섯 개 자리는 빈 곳이 거의 없다.


식당 안쪽 깊숙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L과 반갑게 악수했다. 테이블마다 두서너 명씩 마주 앉아 소주나 막걸리를 반주 삼아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여유롭고 정겨워 보인다. 막걸리에 빈대떡과 파전을 한 접시씩 주문했다.


부산은 둘 모두에게 집 떠나온 객지다. 빈대떡에 시큼한 금정산성 막걸리가 호젓한 봄날 저녁 객수를 잊기에 제격이다. 서로의 근황과 함께 일 취미 동문 은퇴 건강 등 여러 주제의 살아가는 얘기가 안줏거리로 더해졌다. 접시에 남은 몇 조각 파전과 빈대떡을 뒤로하고 불룩한 배를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뒤쪽 비탈진 골목과 계단을 올라 이중섭 거리를 둘러보았다. 평남 평원 출신으로 소를 즐겨 그렸고 가족을 사랑했던 이중섭. 그는 서울 원산 부산 제주 통영 대구 등지를 전전하며 40세 인생을 뒤로하고 망우리에서 영면하고 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처럼 천재 화가의 생전 삶도 그랬나 보다.


철길 육교를 지나 좌천 전철역에서 악수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목련꽃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버린 사월은 잔인했지만 전 세계가 주목한 남과 북의 만남은 온 국민을 희망과 기대로 부풀게 했다.


그 사월도 시간 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이제 바야흐로 오월이다. 장미가 숙소 앞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꽃을 활짝 피웠다. 어둠이 짙어 가는데 바람은 여전히 그치질 않는다. 바람에 마음도 살랑대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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