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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Nov 15. 2020

한강기맥을 걷다

농다치 고개에서 청계산까지

한강기맥은 오대산 두로봉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분기해서 계방산, 발교산, 용문산, 청계산 등을 거쳐 양평군 양수리 두물머리까지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며 이어지는 167km 산줄기다.

야탑 종합버스터미널로 갔다. 이른 아침부터 도시를 출발하여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로 생기 차다. 터미널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타지로 떠나는 사람에겐 시발역이요 타지에서 도착하는 사람들에겐 내려야 할 종착지다.


로마의 기차역 '테르미니'에서 어린 집시 도둑떼를 만나 지갑이 털린 적이 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추억이지만 당시는 피렌체로의 남은 여정과 브뤼셀로의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황망한 처지에 놓였었다.

기차표를 사면서 짐 보관소에 맡겨둔 배낭과 그 속의 필름 기념품 등도 도둑맞은 지갑 속의 짐 표로 그들이 깡그리 찾아가 버려 2박 3일 동안 로마여행의 추억도 모두 앗아가 버렸다.

자신들이 행한 일을 스스로 한 번쯤 참회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이 난 김에 시간 속에 묻혀 잊었던 그들을 마음으로 용서해 주고 싶다. "저들은 저희 죄를 알지 못합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버스는 지하의 플랫폼을 벗어나 목적지 양평으로 향한다. 아직 바깥은 어둠과 빛이 섞여서 옅은 잿빛이고 멀리 동녘 남한산성 산줄기 위로는 태양의 붉은 기운이 꿈틀거린다.

좌석의 2할가량을 채운 버스는 팔당대교를 건너 한강변을 따라 양평으로 난 국도를 달린다. 한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그 길을 감추었다 드러냈다 한다.


신양수대교를 지날 때 안개가 다리 난간 너머 강 위를 온통 뒤덮었다. 내가 탄 버스의 종착지는 홍천이지만 중간에 들르는 양평 터미널이 내겐 종착지다.


양평 읍내를 가로질러 시장터를 지나 전철역으로 가는 거리와 높고 낮은 아파트 상가 주택들이 모두 안개의 바다에 잠겼다. 그 바다는 무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오히려 솜털처럼 포근한 느낌이다.


양평역에서 H와 M을 만나서 택시로 20여분 만에 농다치 고개에 닿았다. 새색시가 혼수를 짐꾼에게 지워 좁은 이 고개를 넘으면서 장롱이 길 옆 바위에 부딪칠까 '농 다칠라 농 다칠라'해서 붙었다는 이름, 이제 농다치 고개는 아스팔트가 깔렸고 차량이 질주한다.


농다치고개에서 동쪽으로는 소구니산-유명산-어비산-용문산이 우뚝 서있고, 우리 일행이 갈 서쪽으론 말머리봉-청계산-형제봉-부용산이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산행은 해발 420m 농다치에서 시작하여 658m 청계산 507m 형제봉 366m 부용산 등 두물머리 쪽으로 고도를 낮추며 길로 이어졌다.


말머리봉 청계산을 지나면 두물머리 쪽으로 형제봉과 부용산이 자리하고 있다. 청계산과 형제봉은 능선으로 연결되지만 부용산과 형제봉은 깊은 골이 서로를 갈라놓았다.


형제봉과는 달리 청계산에 딸린 봉우리이기를 마다하고 '鷄口無牛後'라는 듯 부용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남한강을 굽어보며 스스로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형제봉의 가파른 내리막은 샘골 고개에서 끝이 나고 다시 부용산의 만만찮은 오르막길이 막아선다. 부용산 정상은 연꽃 형상의 표지석을 이고 있고, 신원리 쪽으로 내려서면 금빛 관세음보살상이 인상적인 부용사(芙蓉寺)가 산 허리에 안겨있다.


다른 일정에 쫓기는 M은 부용산 정상에서 경의-중앙선 양수역 쪽으로 서둘러 향하고, H는 부용사를 둘러본 후 다시 부용산 정상을 거쳐 두물머리로 길을 잡았다.


나는 신원역에서 양평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남한강과 마을을 덮었던 안개는 말끔히 사라지고 플랫폼 건너 강 너머로 정암산과 해협산 능선은 하늘과 선명한 경계를 보여준다.


양평 버스터미널, 내가 타고 온 버스의 종착지였던 이곳은 이제 시발점이 되어 물안개 농다치 청계산 부용사 등 새로운 기억을 담고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의 쓰린 옛 기억도 추억하며 버스를 타고 출발점이었던 그곳 터미널로 향한다. 20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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