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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Nov 15. 2020

용문산의 구름바다

한강기맥은 오대산 두로봉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분기해서 계방산, 발교산, 용문산, 청계산 등을 거쳐 양평군 양수리 두물머리까지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며 이어지는 167km 산줄기다.

사월 첫날 봄비가 내렸다. 지난주까지 가지만 앙상하던 아파트 화단 목련들이 거짓말처럼 앞다투듯 하얗게 꽃을 만개했다. 산수유는 목련보다 먼저 가지마다 온통 노란색 꽃을 피웠다. 나무들은 때를 잊는 법이 없다.


올해 들어 세 번째 양평행. 이른 아침 읍내는 예전처럼 온통 물안개에 쌓였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기차로 온 준과 만나 세수골 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자연휴양림 초입 세수골 도로 옆에 대웅전과 함께 용신각(龍神閣)이 있는 아담한 약수사가 있어 둘러보았다.

산행은 백운봉으로 직진하는 길 대신 오른편의 두리봉으로 올라 백운봉, 구름재, 여우봉, 함왕봉, 장군봉을 거쳐 용문산 최고봉인 가섭봉을 지나 용문사로 내려가는 코스다.

사월 첫날 어제 내린 녹지 않은 잔설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산행 초입에는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피웠고 진달래 몇 그루도 때 이르게 연홍빛 꽃망울을 터뜨렸다.

눈이 내리고 꽃이 피는 이 짧은 시기는 가는 계절과 오는 계절이 소리 없이 서로 다투며 교차하는 때다. 안개는 계곡과 마을을 뒤덮었고 제 스스로의 무게와 힘겹게 씨름하며 능선을 타고 산정까지 삼키려 든다.

지난가을 떨어진 낙엽은 온전히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무슨 미련이라도 남았는지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도는 영혼처럼 산길을 덮었다. 여기저기서 제철을 만난 새들은 지지지 깍깍 베베 요란스레 봄맞이를 하고 있다.


한국의 마터호른이라 불린다는 백운봉에 올라서기까지의 여정은 녹록지 않다. 그 정상에 서니 사방은 온통 운무로 뒤덮였고 멀리 몇몇 봉우리들만이 바다에 솟은 섬들 인양 안개 위로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다.


세상에 둘도 없을 듯한 장관을 한참 동안 감상하고 장군봉으로 가던 중 여우봉에서 배낭을 내리고 점심꺼리를 펼쳤다. 지나던 여성 산객 두 분에게 오렌지를 건넸는데 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장군봉과 가섭봉에서도 마주쳤다.


곳곳에 나자빠져 길을 가로막은 고목들은 스헬더 강변에서 통행세를 요구하던 괴수 안티곤처럼 산객들에게 몸을 낮추어 기어서 지나거나 우회하기를 강요한다.


보랏빛 현호색은 바위틈에서 얼굴을 내밀었고 도낏자루 하기 안성맞춤이라는 물푸레나무는 물이 올랐고 특유의 얼룩무늬는 더욱 선명하다. 별다른 특징이나 전망이 없이 밋밋한 해발 1065미터 장군봉을 지나면 온통 통신시설들로 가득 찬 용문산 정상이 앞을 버티고 서있다.


군 시설이 차지한 정상 백여 미터 아래 산허리를 끼고 오른쪽 방향을 온전히 한 바퀴 돌아 산정으로 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인심 쓰듯 산객에게 내어준 능선 한편에 서 있는 해발 1157미터 용문산 정상 표지석이 맞이한다.


경기에서 화악 명지 국망봉 다음으로 높은 용문산은 경기의 금강산으로도 불린다. 649년 신라 진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용문사, 그리고 그 뜰에 서있는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는 은행나무로도 유명하다.


일망무제 一望無際, 그 정상에서 사방으로 갈래갈래 뻗어 내린 산줄기들과 운무에 휩싸인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눈 아래에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다.


가섭봉에서 용문사로 내려가는 길은 지나온 길과는 달리 거리가 짧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깨진 바윗조각들이 길 위에 널려있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어제 내린 눈과 비 때문인지 계곡 물줄기는 제법 굵고 기운차다.


용문사로 내려서니 수령 1100살 밑동 둘레 15.2미터의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가 위용을 자랑하며 지친 산객을 맞아준다. 마의태자는 해마다 나무를 보려 몰려드는 사람들 모습에 흡족해할까.


대웅전 마당 축대 앞에 새겨진 '자비 무적 慈悲無敵', 부처님의 자애로움 앞에는 적이 없을 터인데, '인자무적 仁者無敵', 어진 사람에게도 딴지 걸거나 해코지하려 드는 적이 없을까? 

너른 대웅전 앞마당 위를 봉축등이 가득 채웠다. 경내 약수터 돌거북은 끊임없이 약수를 토해내며 산객의 갈증을 달래준다.


시간에 맞게 들어온 용문사에서 용문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줄지어선 승객을 태우는데 거의 만원이다. 용문터미널과 양평터미널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가섭봉으로 가던 길에 본 바위 절벽에 뿌리내린 식물, 마치 '승천하는 용'을 닮은 그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 2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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