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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Sep 07. 2020

단양, 소백산, 그리고 구인사

산행, 추억과 세월을 잣는 물레질

네 시경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켜 어제저녁에 챙겨둔 생수 과일 등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예전 시골 작은 농촌 마을에서 살 때에는 문 밖에서 짹짹대며 지저귀는 참새 소리에 아침잠을 깨곤 했었다.


아파트를 나서 벌말육교를 지나 송현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친구 H의 차량 뒷좌석에 올랐다. 앞 조수석엔 M이 함께 타고 있다. 성남에서 광주 여주 원주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은 평평한 대지 위에 나직하고 넓게 펼쳐져 고여 있는 호수 인양 평온하여 그 흐름을 읽을 수 없다.

얼마 전 개통된 광주-원주 고속도로는 남해 다도해에 떠있는 섬들처럼 끊어졌다 이어지며 끝없이 늘어서 있는 산 봉우리들 사이로 시원스레 뚫려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친구들 마음은 벌써 소백산에 안긴 듯 그 산에 얽힌 옛 추억들을 쏟아 놓으며 한껏 들떠있다. 고향인 소백산 북쪽 단양과 그 남쪽 풍기에서 각각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옹달샘이 있는 비로봉 아래 눈 덮인 주목나무 군락 아래에서 친구들과 라면을 끓여 먹던 일, 시멘트 공장 은퇴 후 후유증 보상금 때문에 집이 아닌 병원에서 돌아가신 외숙부, 어린 나이에 동네 부역을 나갔던 일,...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단양과 풍기로 고향을 달리하는 두 친구가 들려주는 공통분모가 많은 옛 추억들은 아련하고 애잔하다.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태백 황지연못에서 멀지 않은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먼 길을 달려온 남한강은 단양의 황홀한 풍광을 둘러보며 잠시 쉬어가려는 듯 단양 시내를 S자로 굽이굽이 휘돌고 나서 충주 쪽으로 흘러나간다.

북단양 IC를 빠져나오면 제천 호명산에서 발원한 매포천이 남한강으로 안겨드는 곳 잔잔한 강물 한가운데에서 단양 8경의 으뜸 도담삼봉이 반긴다. 동상 기단 위에 앉은 삼봉은 잔잔한 물 위에 자신의 모습을 또렷이 비추고 있는 세 개의 봉우리와 정자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단양 시외버스터미널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두 친구는 부근 식당에서 아침을 들기로 했다. 각종 약초가 든 술병과 유명 인사들의 싸인 액자가 벽면을 빼곡히 채운 대교 식당에서 올갱이국을 두 그릇 시켰다. 아욱과 다슬기를 넣고 끓여낸 단양의 국밥 맛이 궁금도 했지만 간단히 요기를 했던 터라 몇 술 권하는 만에게 손을 내저었다.


남한강을 건너 솔티천을 따라 천동계곡 입구로 달리는 택시 차창 밖으로 녹음에 둘러싸인 소백산 자락의 멋진 풍경이 스쳐간다. 그 길은 4~5억 년에 걸쳐 석회암과 지하수가 어울려 빚어낸 고수동굴과 천동동굴이 자리하고 있다. 건축의 필수 재료인 시멘트는 석회암을 주성분으로 하지만 종유석이나 석순 같은 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지는 못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가 아깝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성형미인이 넘쳐나는 외모지상주의 풍조는 풀이 꺾일까. 인간 생활을 왜곡시키고 불평등과 사회악을 초래한 문명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위대한 사상가 룻소의 주장이 소생하여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천동관광지에 이어 나오는 다리안 관광지가 산행의 기점이다. 높은 산에 골이 깊은 다리안 계곡은 오랜 가뭄에도 수량이 풍부하여 등산로 초입부터 산 허리까지 산객을 따라오며 시원스러운 물소리를 들려주고 넓게 잘 다듬어 놓은 등산로는 넉넉한 그늘과 서늘한 바람을 안겨준다.


30여 년 전에 놓였다는 천동계곡을 따라 난 길은 벌목을 위해 놓인 것이라는 준의 설명이다. 어렵던 시절 우리 부모들처럼 소백산도 자신을 수탈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길이 놓이는 것을 소리도 내지 않고 감내했을 터이다. 옛일들을 생각할 때면 스메타나의 교향시 '아름다운 몰다우'를 듣고 있을 때처럼 가슴에서 올라온 눈물이 미어져 나오곤 한다.


해발 300여 미터 다리안 계곡에서 잘 다듬어 놓은 등산로를 따라 1400미터가 넘는 능선까지 오르는 길은 넉넉히 세 시간의 오르막 길이다. 수건을 머리에 둘러 얼굴로 흘러내리는 땀을 차단하고 888 고지 이정표를 지나고 한참만에 전망이 탁 트인 천동 쉼터가 나온다.


계곡 물소리가 멀어져 들리지 않는 천동 쉼터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는 길에 약수터에서 목을 축였다. 구한말 명성황후의 추종자들이 그녀의 피신처로 비밀리에 세웠다는 민백이 대궐터도 스쳐 지났다. 8시경 시작된 산행길은 정상으로 오르는 산객이 대부분이지만 배낭도 없이 이른 새벽에 정상을 밟고 내려가는 산객들도 적지 않게 만난다.


해발 천 미터 이상으로 고도가 높아지면서 나무들은 듬성듬성하고 푸른 초장이 펼쳐져 왼쪽으로 비로봉이 손에 잡힐 들 보이는 능선에 올라서면 천상의 목장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그 능선을 북에서 남으로 타고 넘는 바람은 목덜미가 시리도록 차갑다.


능선에 올라선 산객들은 소백산의 주능선이 펼쳐놓은 장관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발걸음을 쉬이 옮길 줄을 모른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에서 각각 설치한 해발 1439 미터 비로봉 표지석 주변엔 사진을 찍으려는 산객들이 줄을 서있다 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누군가의 부탁으로 스마트폰의 셔터를 눌러주고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기념사진을 남겼다.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능선길 풍경도 지루해하거나 힘들어할 겨를을 주질 않는다. 그저께 내렸다는 전례 없이 큰 우박에 철쭉이 꽃잎과 잎사귀를 깡그리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모습이 아쉬울 뿐이다.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봬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찌할꼬
- 퇴계 이황의 시 -


국망봉에 닿기 전에 퇴계 이황 선생이 다녀갔다는 소백 산성 터 안내판과 돌로 된 성의 잔해가 보인다. 퇴계 선생의 시처럼 그가 간 길은 우리 눈앞에 또렷하다. 다만 우리가 그 길을 외면할 뿐. 비로봉과는 달리 해발 1420미터 국망봉은 산객들 발길이 뜸하여 한산하다.


마치 서로 키 재기라도 하는 듯 정상 바로 밑 부분에 송이버섯 모양의 바윗돌이 우뚝 솟아 있는 상월봉을 좌로 비껴간다. 상월봉을 휘돌아 가는 길바닥은 우박에 무차별 포격을 당한 철쭉이 수확한 녹차 잎을 건조하려 널려놓은 것처럼 잎사귀를 떨구어 놓았는데 우박에 찢기고 망신창이가 된 잎들이 뿜어내는 엽록소 내음이 코끝에서 진동한다.


한 시경 상월봉과 신선봉 사이에 있는 늦은맥이재를 지나쳐 신선봉으로 가는 능선에 좌판을 틀고 배낭을 내리고 점심을 들었다. 돌아보면 신선봉으로 난 길은 신선이 아닌 사람에겐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험해 보인다.


정상에 큰 바위 세 개가 또렷이 보이는 신선봉 허리를 좌로 돌아가는 길은 좁고 가파른 비탈이다. 넓고 비스듬한 비탈길 곳곳에 바위 아래로 쓸려 내려왔는지 콩알보다 큰 우박이 녹지 않고 개구리 알처럼 수북하게 낙엽에 덮여 있다.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해발 1361 미터 민봉에 올라서서 지나온 비로봉 국망봉 상월봉과 그 봉우리를 잇는 능선의 수려한 모습을 조망해 본다.


날머리 구인사까지는 아직 먼 길인데 민봉에서 뻗어 내린 아곡문봉 밤실문봉 여의생문봉 뒤시랭이문봉 등 아홉 봉우리와 그 봉우리 사이의 여덟 골짜기, 즉 소위 '구봉팔문' 가운데 하나인 뒤시래기문봉이 자리하고 있다.


구봉은 평소 안갯속에 감춰져 있어 조망하기 어렵다고 소문났다는데 날씨가 맑고 쾌청하여 뒤시래기문봉 좌우로 예각 삼각형 모양의 뾰쪽한 정상을 가진 여의생문봉과 덕평문봉 모습은 또렷하다. 뒤시래기문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거의 수직에 가까워 올라가려고는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다.


간간이 놓인 밧줄과 나뭇가지에 의지하여 신선들도 혀를 내두를 가파른 그 길을 내려오면 구인사 초대 종정 상월원각 대조사의 열반 안식처 적멸궁이 있는 영주봉이다. 지나온 험한 산행길과 달리 영주봉은 잘 정돈된 부처의 세계로 산기슭 좁은 골짜기를 따라 구인사가 길게 들어서 있다.


구인사 경내까지 가는데 몇 분에 닿을 수 있냐는 질문에 영주봉에서 구봉 쪽을 관조하듯 조망하던 젊은 보살은 '뭘 그렇게 조급해하냐'라고 반문한다. 그 보살님은 구인사에서 단양을 거쳐 동서울로 가는 막차 시간에 쫓기는 산객의 마음을 알리가 없을 것이다.


전국 140여 개 절을 관장하는 천태종 총본산으로 1945년 상월 원각스님이 창건한 구인사는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5층짜리 법당을 비롯하여 전국 제일 규모다. 마침 5층 법당에서는 수백 명의 여 불제자들이 불공에 여념이 없다.


골짜기를 따라 늘어선 사찰 건물들을 지나서 일주문으로 빠져나오는 길은 이루기 힘든 불도의 길처럼 가파르다. 막차 출발시간을 십여분 남기고 구인사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단양 경유 동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산행이 당초 예상보다 길고 힘들었지만 예전 산행 때와는 달리 소백의 속 모습을 조금 더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단양에서 내리는 H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눈을 감았다. 언제 또다시 소백의 품에 안기는 꿈을 고대하며... 20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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