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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Sep 08. 2020

눈 오는 날, 팔당과 예봉산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천지를 하얀 설국으로 만들었다. 어제 아침에 이사 온 아파트 앞 화단을 따라 난 길을 경비실에서 빌린 싸리 빗자루로 쓸었는데 밤에 다시 눈이 왔다.


이틀에 걸쳐서 눈이 내린 것도 근래에는 드문 일이었지만 기상청이 경기 북부지역에 내린 대설 주의보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정말로 드문 일이 아닌가 싶다.

성남에서 들어선 외곽순환도로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제한속도가 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통이 원활하다. 중부고속도로를 경유해서 하남으로 빠져나와서 팔당대교 쪽으로 향했다.

눈 앞에 팔당대교가 나타날 즈음 한강 위를 상류 쪽에서 하류 쪽으로 이쪽의 검단산과 다리 너머 저쪽의 예봉산, 예빈산, 운길산 군락들 사이 한강 위로 운무가 연기처럼 몰려 내려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영화 '실스 마리아의 구름 (Clouds of Sils Maria)'에 나오는 '말로야의 뱀 (Maloja snake)', 스위스의 작은 마을 실스 마리아의 깊은 알프스 협곡을 따라 호수에서 생긴 안개구름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경이로운 모습처럼...


남양주 역사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산에서 출발하여 파주 일산 용산 청량리 팔당 양평 등을 거쳐 용문까지 이어진 경의-중앙선 팔당역에서 오늘 산행 동료들을 만났다.


서울 쪽에서 도착한 전철은 제법 많은 승객들을 쏟아 내려놓고는 운길산역 쪽 터널을 향해 쏜살같이 멀어져 간다. 영하 8, 9도의 아침 한강변 겨울바람은 매섭지만 그들 십중 두셋은 두터운 등산복에 귀마개가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배낭을 멘 등산객이다.


예빈산으로 오르는 들머리로 가며 거쳐 지나는 마을 한편에서는 이 추위에도 인부들이 장작불 주위에서 몸을 녹이며 끝난 듯싶은 콘크리트 바닥 공사에 이어서 벽 쌓기 공사를 시작할 모양이다.


해발 590미터 직녀산은 한강 쪽으로 나란히 솟은 같은 높이의 견우산과 함께 예빈산으로 불린다는 H의 설명이다. 두 봉우리가 바로 옆에서 사이좋게 나란히 어깨를 하고 있으니 일 년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는 하늘의 견우성 직녀성보다는 행복하다고 할까나.


산행 중 비껴 지나며 마주친 어떤 등산객은 등산로 곳곳에 깊이 쌓인 눈이 '장난이 아니다' 라며 혀를 내두른다. 그쳤던 눈이 산행 중에 다시 간간이 가늘게 흩날렸는데 파란 하늘 속살이 비치고 태양빛도 투과시키며 너울너울 춤추듯 내리는 모습이 '장난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예빈산 율리봉 예봉산은 서로가 각기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높이를 달리하며 솟아 있다. 산행 중의 첫 봉우리는 의욕과 남아 있는 에너지로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는데,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2번째, 3번째,... 이어지는 봉우리들은 갈수록 버겁다.


자칭 낙천가에 궁금한 것 많고 이곳저곳 기웃거리기 좋아하는 탓에 남들보다 느린 소걸음 인생이지만 산행 중에는 동행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힘든 고비에서도 고삐를 당겨야만 하는 때도 있다.


그렇지만 때때로 온몸으로 느껴오는 버거움은 어리석게 온 몸으로 맞서 싸울 일이 아니라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틈틈이 쉬면서 숨을 돌리고 피로도 늦추며 달래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M과 H처럼 배려심 많은 동행과 함께하는 산행은 행운이다. 어디 산행뿐이랴!


예봉산 정상은 동에서 서로 굽이쳐 펼쳐진 한강 그 너머 마주 보며 누워 있는 검단산, 산자락에 안긴 와부, 그리고 짙고 옅은 무채색 실루엣으로 적갑산과 운길산을 보여준다.


일행의 체력, 코스별 예상시간, 그치지 않는 눈발... 이런 것들을 대중했는지 여섯 시간 눈길 산행은 운길산과 수종사를 다음 기회로 미루게 하고 적갑산을 거쳐 새재 고개 사거리에서 세정사가 있는 진중리로 내려가는 길로 마음을 이끈다.


고개 사거리에서 세정사까지 내려가는 길은 금세 운길산로를 만난다.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운길산로는 10여 리에 걸쳐 세정사 주필 거미박물관 동국대 운길학관 등을 품고 운길산역을 지나 한강북로와 만난다.


해는 예봉산 자락 능선 위로 걸렸고 여우비 같이 흩날리던 눈발은 팥고물처럼 굵어졌다. 2~30분 간격의 열차 시간이 다가오자 운길산역 플랫폼에는 산행객을 비롯해서 남녀노소가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들이치는 굵은 눈발을 피하고 있다.

장어를 먹으러 왔다는 중년 여성 둘은 세파 탓인지 말씨가 걸걸한데 내리는 눈을 보며 들떠 재잘대는 모습은 소녀 같다.


운길산역에서 탄 전철이 예봉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한참만에 빠져나와 팔당역에 정차했다. 산행을 함께한 고마운 친구들과 작별했다. 산에 들에 강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 눈이 내린다. 오랜만에 세상을 포근히 덮은 눈처럼 사람들 마음에도 가끔 포근한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20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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