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인산 Dec 17. 2022

부산 서설(瑞雪)

발령지로 부임하던 날 회상

7년 전 주말마다 신세를 졌던 경부선에 또다시 신세를 지게 되었다.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야탑 터미널에서 트렁크와 이불 보따리를 들고 승차장으로 갔다. 승객이 달랑 3명인 15:45발 부산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과 달리 어제 남부지방엔 눈이 많이 내렸단다. 고속도로변 산과 들이 녹지 않은 눈으로 머리 틈의 새치처럼 온통 희끗희끗하다. 십 년 만에 큰 눈이 내렸다는 부산, 그곳 직원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 환호하며 눈을 맞이했더란다. 내일 날짜 부산 발령을 축원해 주나 보다. 바람은 차가운데 차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은 따갑다.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은, 그곳에 가서 지내야 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그 설렘의 감각도 나이가 먹을수록 무뎌지나 보다. 마음만은 젊다고 스스로 애써 강변하며 마음에 이는 작은 설렘도 병환으로 누워계신 노모와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가 눈에 밟혀 사그라들려 한다. 익숙한 번잡함을 벗어나 부산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도 아득하다.

선산휴게소에서 환승객 1명을 태운 버스는 네 시간 여만에 노포터미널에 도착했다. 완곡히 사양했는데도 발령부서 김 계장과 진 반장이 차를 몰아 마중을 나왔다. 노포에서 숙소가 있는 연산동까지는 생각보다 먼 거리다.

낯익은 숙소의 옛 기억을 더듬으며 전임 B 과장이 쓰던 306호로 짐을 들였다. 직원들이 짐 빠진 방을 미리 깨끗이 정리해 두었다. 발령받아 부임하는 신임 과장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고맙고 감사하다.

직원들이 돌아가자 옷 이불 노트북 세면도구 등등 짐을 풀어 있을 곳에 부렸다. 방은 화장실 책상 TV 냉장고 싱크대 옷장 등 필요한 것들이 잘 갖춰져 있고 난방이 잘 되어 방바닥도 따스하다.

북경에서 같이 근무했던 UNEP 산하 부산연구소의 중국인 친구 N, 어떻게 알았는지 부산 입성 환영 메시지를 보냈다. 멀어지게 되는 것들은 아쉽지만 가까워지는 친구가 있고 한울타리에서 시간과 공간을 함께 감내할 동기 선후배 직원들도 있어 큰 위안이 된다.

오늘 하루 고된 삶의 짐을 끌며 들며 고달팠던 몸을 따스한 숙소 방바닥에 누인다. 십여 년 만에 눈 다운 눈이 내리고 한파찾아왔다지만 마음에는 천천히 따스함이 스며오는 듯하다. 18-01

매거진의 이전글 관악산과 배나무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